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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復旦大學 生活과 工夫'에 해당되는 글 77건
2012. 3. 20. 17:00
지난 6일 지도교수와 만나 논문방향에 대한 협의를 긍정적으로 마친 뒤, 자체적으로 2주 좀 안 되게 방학을 가졌다. 여러가지로 생각을 만져야 할 것들이 있어서였는데, 때문에 딱히 볼 일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방에서 거의 나가지 않으며 시간을 보냈다. 이번 학기 공식적인 출타계획은 하나 남은 화요일 오전 수업 하나이다. 원래 저녁수업을 신청해 2주 듣다가 지난 주 수강과목을 변경한 것이다. 요즘 밤낮이 너무 심하게 전도되어 수업 나가는데 애로사항이 좀 있는데 월요일 수면시간을 좀 줄이던가, 아니면 되도록이면 다시 늦어도 10시~11시 즈음에 하루를 시작하는 형태로 다시 노력을 해보던가 할 참이다. 늦은 밤이라는 시간이 주는 장점과 단점이 있으니 적당히 조절하면 되겠지. 한 가지 기다리고 있는 게 있는데 결과가 나오면 생활을 좀 더 확실하게 굴릴 수 있을 것 같다.

학위논문 제목은 그대로이고, 방향은 power, autholoty, influence를 결합한 형태와 사회적 구성주의의 틀로 가기로 했다. 이것을 활용하여 쓰겠다고 했더니 지도교수도 나름 참신하다(?) 생각했는지 꽤 흥미있어 하는 눈치였다. 사실 선생 만나기 며칠 전만 해도 뭘 들고 가야 하나 꽤나 고민스러웠는데, 만나기 3일 전이던가 한 밤중에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현재의 사고 수준에서는 나쁘지 않은 소스이고, 앞으로 다루면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여튼 카이티 하는 과정에서 살짝 탈선했던 라오반과의 관계는 한동안 순탄대로를 달릴 듯 싶다. 단 시시콜콜 간섭만 심하게 않는다는 전제하에... 그리고 기간은 논문의 적정 질과 여러 현실적 상황을 감안해서 한 학기 연장한 내년 하반기 졸업을 얘기했는데, 지도교수는 지난 겨울에 이어 상반기 졸업을 다시 고집한다. 뭐 늦출수록 더 늦어지는 법이니 그런 마음가짐으로 쓰라는 얘기인 것 같다. 앞으로 품질과 속도를 조화시키면서, 결코 4년을 향해서 가지는 않으리라는 각오로 임해야 할 듯 싶다. 아래 <더보기>는 지도교수 보여줬던 공식적 내용은 아닌데, 지도교수 만나기로 해놓고 시간 남아 문과도서관에서 잠깐 시간 때울 때 그냥 생각나는 대로 대충 잠깐 메모했던 내용이다. 아마 후기나 서문에 조금씩 섞어 사용할 것 같다. 메모 내용은 좀 두리뭉실해서 보면 뭐 할려고 하나 싶을텐데 그래도 대강 이해는 할 듯 싶다.
논문의 본격적인 시작은 4월 10일 졸업시험 이후로 미뤄두고 있다. 앞으로 남은 기간은 이 시험준비를 좀 하며 보낼 생각이다. 한참이나 짧은 영어와 중국어 작문실력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게 다소 걱정인데 뭐 어찌 되겠지. 다른 과는 이런 시험 자체가 없는데 왜 우리 학원만 이런 게 있냐고... 
어젯밤에는 졸업하는 데 요구하는 논문 3편 가운데 2편을 좀 줄여서 다듬었다. 최종교정을 친구한테 좀 봐달라고 메일로 보내놓은 상태다. 주위에서 소개받은 한 곳에 투고하려고 하는데 그나마 돈 주고 싣는 곳에서는 저렴하다고 소문도 났고, 중문 4,000자 이내(600위안?)로 줄여서 2편을 실으려고 하는데 나온 걸 봤더니 아무리 돈 주고 탑재하는 곳이라 해도 조금 너무한다 싶더라. 가난한 학생들 의욕대로 실으려면 더 많은 돈을 내야 하고, 돈을 좀 아끼려면 각주나 참고문헌, 그리고 기존에 썼던 내용들까지 다 쳐내야 하는 시스템이라 그냥 이번엔 한 편만 낼까 생각도 하고 있다. 이걸 학술논문이라 할 수 있을까 싶지만, 여기 문화가 그렇고 정작 하는 입장에서는 스트레스가 좀 덜하니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도 아니면 아직 시간이 있으니 두 편은 학위논문 쓰면서 나오는 것들을 활용해서 내고, 또 기회가 닿으면 게재료도 안 내고 좀 수준되는 곳에 한 편 정도는 올리고 싶은 열망은 있다.

날이 다소 풀리긴 했는데 그래도 아직 운동은 엄두낼 수는 없고, 실내가 여전히 쌀쌀해서 책을 읽던가 작업을 할 때는 에어컨을 줄기차게 틀어놓고 있다. 담배는 그동안 점차적으로 절반 이하로 감연해 왔는데, 최근 방학을 가지면서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아직까진 담배라도 안 피우면 무슨 낙이 있을까 싶은 미련을 못 버리는 것도 잘못이다.  그나마 조절하는 것에 꽤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이 소득인데, 좀 더 추이를 지켜보며 더 노력해야 할 듯 싶다. 얼마간 쉬면서 내 블로그 링크를 제외한 바깥세상의 블로그들을 우연히 유람할 기회가 있었는데 꽤 괜찮았다. 전문성과 심도있는 포스트들을 본다는 건 유익한 일이다. 사실 이 블로그는 당초 전문성보다는 대중성을 표방하고 있고, 아울러 제목처럼 관계지향적이고 소통의 역할을 담당하고 싶었는데 그 취지는 많이 퇴색했다. 오히려 공개된 일기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졌고, 복단대 대학원 유학정보의 요람이 될 가능성은 급속도로 커진 것 같다. 블로그란 매체에 애정은 참 많지만, 그렇다고 블로그를 좀 더 키우고 싶은 욕심은 또 없으니까 걍 이렇게 소소하게 지내는 것에 만족한다. 뭐 기실 대단한 블로그를 만들 번뜩이는 깜냥도 되지 않고... 요즘 대화를 나눌 사람이 거의 없어서 대신 여기에 쏟아 놓는다.
2012. 3. 3. 23:13
In vino veritas! Plurimos annos.
2012. 3. 2. 04:35
달리고 싶다.
걷는다.
합리적이고 싶다.
비합리적이다.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언어는 매우 비과학적이고, 비언어는 심히 과학적이다.
욕망, 이성, 그리고 영혼의 질주라고 모겐소와 내가 말한다.
2012. 2. 22. 00:52
1. 오늘 낮 2시 비행기로 상하이로 돌아간다. 한 40일 넘게 푹 쉬었다 간다. 집에서 푹 쉬면서 먹고 싶은 것도 적당히 먹었고, 적당히 만나야 할 사람들도 만났다. 상하이로 돌아갈 준비를 다 마치고 나니, 올 한해가 녹록하진 않겠다는 생각이다. 뭐 그래도 여기 있는 동안 그만큼 마음의 준비도 했으니 잘 될거다. 다만 다시 해야 하는 자취활동은 절로 어휴~란 소리가 나온다. 혼자 밥 먹고 사는 것은 꽤나 질렸는데, 이번 학기는 밖에서 먹는 비중을 좀 늘려야겠다. 몇 가지 새로운 생활지침을 마련했으니, 3분의 2만 실천해도 좋을 듯 싶다. 그리고 무엇 보다도 담배를 끊는 큰 일이 남았다. 1월 말부터 감연법을 시작해서 지금 일 8개피로 절반 이상 줄였는데, 앞으로도 완전히 끊으려면 한 달 가까이 걸릴 듯... 담배 안 태우는 것만으로도 건강에 큰 도움이 될테니 한 번 끝까지 가보자. 

 2. 책 몇 권 읽었는데 그 중 요즘 한창 4쇄까지 찍은 정덕구씨의 '한국을 보는 중국의 본심'을 은사의 추천으로 보게 되었다. 주위의 도움을 꽤 받아 쓴 책이라 그런지 정보 면에서는 어느 정도 충실한 것 같았는데, 오히려 읽고 난 뒤 책 이름이 잘못됐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중국을 보는 한국의 본심'이라 하는 게 타당할 정도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몇몇의 사례들은 일반화가 너무 심한 것 같아 독자로 하여금 중국을 오독하게 하는 영향을 줄 것 같다. 그리고 미시적으로는 책을 내는 데 있어 세심하지 못했다. 소제목과 내용이 정반대인 경우도 있었고, 갑자기 얘기가 산으로 가는 경우도 있었다. 학술서라기 보다는 교양서에 가깝고, 교양서로서의 가치도 약간은 과대 포장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시각은 보수적인데, 객관적으로 서술하려는 시도를 하다 보니 결국 이도저도 아닌 제안으로 나간 것 같다. 잘못된 것들은 내 논문에 좀 반영할 생각이다.

3. 하루키의 책은 예전에 상실의 시대 좀 보다 만 게 전부다. 소위 신드롬에 가까운 저자의 책은 잘 안 보는 편인데, 왜 이런 저항심리가 생겼는지 모르겠다. 여튼 누군가 그의 '걸작단편선'이 아주 재미있다고 해서 동네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게 되었다. 그 중 '빵가게 습격'과 '빵가게 재습격'이 꽤나 재미 있었다. 전편은 어느 젊은 남자가 친구와 자취를 하던 중 한밤에 극심한 공복감을 느끼게 된다란 얘기로 시작한다. 돈이 수중에 거의 없고, 집에 먹을 것도 없던 그들은 고민 끝에 빵가게를 습격해서 빵을 실컷 먹기로 결의를 하게 된다. 그래서 칼 하나를 들고 빵가게에 가서 기회를 엿보다 주인을 협박하게 되는데...주인은 오히려 황당한 제안을 함으로써 그들을 당황케 한다. 바로 바그너의 음악을 가만히 들어주면 빵을 배터지도록 먹을 수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들은 주인의 제안을 받아들여 바그너의 음악을 들으면서 빵을 먹고 조용히 나왔다는 것이 전편의 전체 내용이다. 후편은 주인공이 결혼을 한 다음의 이야기이다. 이 때는 돈을 버는 직장인이라 돈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마찬가지로 심야에 결혼한 지 2주 정도 지난 와이프와 동시에 극심한 공복감에 잠을 깨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집에는 맥주 몇 캔 정도가 전부였고, 그것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맥주를 홀짝이다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아내에게 털어놓게 되는데...아내는 그것을 저주받은 것이라 규정. 다시 빵가게를 제대로 털어야만 이 공복감의 저주를 풀 수 있을 것이라 얘기하고는, 산탄총 하나를 가지고 심야에 차를 몰고 외출한다. 그러나 그들은 심야영업을 하는 빵가게를 도저히 찾을 수 없었고, 궁여지책으로 맥도날드를 털기로 결의. 맥도날드를 털면서 30개의 빅맥을 요구하고, 콜라값은 깨끗하게 지불하고 나오는 황당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들이 조용한 곳으로 차를 몰고 가 몇 개의 빅맥을 먹으면서 아침을 맞는다는 것이 이 단편의 마지막이다. 하루키의 다른 소설들을 읽지 못해서 제대로 평을 할 수 없겠지만, 이 단편들이 모두 이후 장편의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80년대 단편들의 재기발랄함을 읽을 수는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첨언하자면 빵가게 같이 털 수 있는 정도의 의리가 있는 배우자를 만나야 겠다는;;; 

3.  올해 방송된 컬투쇼를 좀 다운 받아 담아간다. 가끔 심심풀이로 좀 들을 만할 것 같다는;;; 
   컬투쇼는 감질나는 대사에 상상하는 묘미가 있어 더 웃기다.
오늘 '32살 자취생'이라는 이야기 하나 더 남기고 간다.





4. 대전시 유성구 노은동 미용실 '아술(azul)' 대리 홍보

후배가 대전시 유성구 노은동에서 하는 미용실이다. 개업한 지 1년 1년 반 가까이 되어가는 것 같다. 지금은 꽤 입소문이 나서 어느 정도는 정착이 된 듯 싶어 다행이다. 평수에 비해 인력이 적어(원장 1명, 일본인 여성디자이너 1명), 예약하고 가는 것이 필수임. 음..후배가 일본 현지 일본인미용실에서만 6년 이상 근무하고 돌아옴. 가격은 거의 동네 가격이지만, 실력만큼은 강남 부럽지 않은 곳이다. 대전에 살거나 다른 곳에서 오셔도 환영. 외지에서 오는 손님도 있다고 함. 다른 사항은 아래 지역정보 링크 참고.

http://map.naver.com/local/siteview.nhn?code=19582310 
2012. 1. 12. 02:55
상하이에서 생활한 지 어느덧 1년 반이 훌쩍 가려고 한다. 앞으로 20시간이 채 안 된 시간에 한국에서 대학원 선후배들과 저녁을 먹고 한잔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11개월 만에 가는 한국이다. 나처럼 오랫동안 집에 가지 않는 유학생이 별로 없어서 어떤 느낌인지 물어볼 기회가 없었는데... 사실 잘 모르겠다. 한국에 간다는 실감도 잘 나지 않는다. 1년 전 한국에 갔을 적에는 6개월 만에 갔었다. 아마도 생활의 중심이 확실히 이곳으로 옮겨진 탓일지 모르겠다. 그도 아니면 한국에 가서 해야 할 숙제와 학위논문에 대한 고민이 많이 쌓여 있다는 것, 처리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3학기가 끝났음에도 3학기가 끝난 것 같지 않다. 올해는 작년보다 체류일자가 더 길 것으로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작년처럼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쉬었다 오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 하나는 위로가 된다. 부모님은 늘 걱정 뿐이지만, 뵙고 잘 지내고 있음을 가식적이라도 보여드려야 또 1년을 잘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몇몇 정말 보고 싶은 사람들. 1년 만에 가니까 그래도 좀 반가워해주진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다. 

3학기에 대한 소회를 정보로 남겨야 이 곳에 유학 올 특정 후학들에게 도움이 될텐데 오늘은 살짝 술 한잔 걸치고 들어온 것이라 길게 남길 수는 없다. 그저 한 마디 보태자면 1년 6개월 정도가 되면 정말 일상 속에 잠재되어 막상 꺼내보기가 두려운 고독에 친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학기에 처음으로 몇몇 한국 사람들과 꽤 친해지기도 했지만, 대부분 이 곳을 떠나고 결국 남는 사람만 쓸쓸할 뿐이다. 어차피 이 곳에서 많은 인연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이 곳에서 내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한 두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나 역시 나와 친해지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거리를 둔 적도 많으니까... 그래도 막상 갈 때가 되니까 소소하게 즐거운 일들이 많다. 지난 주에 이어 오늘은 상해2공업대학 2학년 친구들에게 선물보다 더 소중한 수많은 편지들을 받았고, 같이 사진도 찍었다. 이 곳에 올려줘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오늘은 못할 것 같다. 좀 늦어지는 것 미안함을 전한다. 그리고 내 소중한 중국 통쉐들도 고맙다. 구체적으로 표현은 하지 않지만, 이것저것 나에 대한 걱정과 격려가 느껴진다. 국외에 있으나 국내에 있으나 사람 사는 건 다 마찬가지다. 내가 얼마나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서느냐가 중요하다. 13년 전 어학연수 때 깨달었던 진실이다. 어설픈 내 자랑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고, 문득 다시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관계에 이익과 손해계산이 들어가면 언제나 진정된 관계는 요원할 뿐이다. 나도 아직은 가식적인 부분이 많아서, 앞으로도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사는 양태만 다를 뿐, 사는 건 다 비슷비슷하다. 모두 자신의 삶이 더 치열하다고 착각할 뿐.  
2012. 1. 7. 03:15
1.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적 조건에 더 이상 번민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여전히 진행형이지만,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이 사실이다. 본질적으로는 어떤 것도 나를 혹은 내 삶을 종속시킬 수는 없다.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해 왔던 것도 사실이며, 부는 바람에 때로 흔들렸던 것도 부정하진 않는다. 단 하나의 예외조항이 있다면 그건 '자발적 종속'이다. 앞으로도 학력이 한 단계 높아지고, 지식이 아무리 쌓여간다 해도 나는 고상한 척 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또 언행이 부박한 사람도 아니었음은 자부한다. 그저 내가 아끼고, 나를 아껴주는 몇몇의 사람들과 '대화로 산을 쌓아가며 투박한 생활의 정을 나누는 정도'가 내가 꿈꾸는 가장 인간적인 가치일 뿐이다. 한 가지 더 보태자면 그런 내 삶의 소소한 부분들이 사회적 역할까지 발휘될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거니 하는 정도다. 내가 이처럼 절대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우리'이다. 내 블로그명도 그런 차원에서 생겨났던 것이다. 그러나 사고의 차이에서 공교롭게도 오인까지 발생하기 때문에 수많은 '나'들이 '우리'로 발전하는 데 그토록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내가 공부를 하고 그 안에서 좌초를 하는 때가 와도, 늘 씨익~하고 썩소 한 번 날려줄 수 있는 것도 그에 대한 열망이 아직은 식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험론 철학을 완성한 계몽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내 생각에 나는 좁은 강어귀를 지나며 많은 여울에 부딪히면서 가까스로 난파를 모면하고 나서도, 여전히 비바람에 시달려 물이 새는 똑같은 배를 타고 무모하게 바다로 나아가려는 사람과 같다. 심지어 이 사람은 이러한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지구를 횡단해보겠다는 드넓은 야심을 지니고 있다."  멋진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우리'라는 자각이 누락되어 있다. 내 개인적인 경험만 반추하더라도 열망이 주는 위대한 힘을 자각하게 된다. 허나 이 열망 속에 오욕칠정의 괴로움이 어김없이 자리할 것이다. 나는 타인에 대한 나의 피상적인 이해에서 비롯되는 오해를 하지 않기 위한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가급적이면 그네의 이면을 보고자 한다. 물론 타인도 나에 대해 그리했으면 좋겠다는 소망 역시 감추지는 못하겠다. 쓰다 보니 어려운 말을 이어가며 어느새 고상한 척 하는 부류가 되어 버렸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금까지 쓴 열 몇 줄의 문장은 사실 한 두줄로 얼마든 압축해 말할 수 있었다. 나는 왜 그랬을까. 이에 대한 설명을 언젠가 할 기회가 있으리라 믿는다. 이 곳에 마실 오는 몇몇 지인들도 그 때는 내 단절되고 불온한 새해다짐을 이해할 것이다.         


2. 지난 일 년간 스스로 알바라고 폄훼하였던 상해제2공업대학 한국어과 강의가 다음 주 수요일 두 과목의 시험만 치르면 끝이 난다. 그렇게 알바라고 불렀던 것이 못내 정이 드는 것이 싫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에게는 내가 첫 외국인 교수라 신기했었을 것이다. 난 한국에서 강의경력이 1년 있었지만, 중국인을 대상으로 가르쳤던 것이 처음이라 신기했다. 그렇게 어설프게 우리의 관계는 시작되었고, 이렇게 끝이 난다. 물론 한 학기가 지나 내가 다시 2공대에 강의를 나가게 된다면 1,2학년 학생들은 한 학년 진급한 채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다만 아래 사진 속에 등장하는 가장 정이 많이 들었던 3학년 학생들은 졸업 때문에 다시 보진 못할 것이다. 이 중 절반 조금 안 되는 인원이 3월에 한림대학교로 연수를 가게 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학생들은 실습(인턴)들을 나가게 될 것이다. 아직 어린 나이에 사회에 진출한다는 것이 나로서는 좀 애달프다. 수업시간에 떠들고 공부는 안해도 내 말을 잘 경청해주던 그들이 그리울 것이다. 아래 사진 속 엽서에 멘트가 등장할테지만, 내 중국어 실력 증진 3분의 1은 그들의 덕이다. 그들의 한국어보다는 내 중국어가 더 늘은 것 같으니... 어제 같이 사진을 찍고 돌아오면서 내가 그들을 어느덧 사랑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사랑은 언제나 한 걸음 늦다.  당분간 내 일상도 팍팍하기에 만나긴 힘들겠지만,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에게 있어 기회란 단어는 단순히 찾는 것이 아닌 실천을 전제로 한다. 그들의 청춘에 지지를 보낸다.

추억자료: 2012년 1월 4일 수요일 함께 찍은 사진과 학생들이 내게 준 고마운 선물들
     

2011. 12. 31. 23:58
정확히 1년 전 "다시는 소망하지 않기로 하며 창을 닫았었다." 그러나 나는 끊임없이 소망했다. 인간사에서 송년과 새해맞이처럼 모순적인 것도 없을테다. 사실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음에도 고작 별거 아닌 숫자에 우리는 너무나 민감하다. 모두 생성에 대한 환상과 소멸에 대한 공포에서 파생되는 것일테지만...  '새해가 뭐 별거야'라며 제 아무리 쿨한 척 한다 해도 사회 안에서 똬리를 틀고 살아가는 인간은 다 거기서 거기다. 2011년의 내 삶은 2010년과 마찬가지로 비루했다. 2009년에도 그랬고, 2008년에도, 그 전에도 계속 그랬다. 시간을 보니 한국은 이제 2012년을 12분 전이라는 숫자에 기대어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이 곳은 1시간 12분에 기대고 있을 것이다. 좀 있다 몇몇 사람들이 내 방에 모이긴 할 것 같은데 맥주 한 모금이 마시고 싶어서 매점에서 맥주 두 병을 먼저 사서 홀짝이고 있는 중이다. 왠지 맥주 두 잔에 벌써 불콰해지는 느낌이다. 2012년도 역시 제 아무리 용을 쓴다 해도 비루하고 남루함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다만 이 비루함과 남루함마저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내 생을 용기있게 마주 대할 수 있을까.


너에게

마음은 바람보다 쉽게 흐른다.
너의 가지 끝을 어루만지다가
어느새 나는 네 심장 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죽지 않는 태풍의 눈이 되고 싶다.

최승자, 『이 時代의 사랑 』, 문학과지성사, 1981.
2011. 12. 25. 01:06
걸릴듯 말듯 하던 감기에 드디어 걸렸다. 루구후에서 차가운 밤날씨 때문에 잠깐 고생했던 이후로 오랜만이다. 더 심해질지 어떨지는 모르겠는데 약 먹고 계속 잠만 잤는데 그런대로 거동할 만하고, 내일이 되어봐야 몸상태를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엉뚱한 짓을 한 가지 했는데 왠지 괜히 한 건 아닌가 싶다. 당초에는 그저 그네의 한 학기를 위로해 주고, 앞으로의 생활을 격려해주고 싶었다. 아울러 그제 빚진 밥값도 갚아주고 싶었고... 지금으로서는 내 자신도 그 이상이나 그 이하의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다. 이밖의 많은 것들을 현재로서는 명확히 규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대가 마음이 부담스럽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세상 모든 것이 이와 같음을 깨달아라.
신기루이며 구름의 성이며
꿈이며 환영과 같다는 것을 깨달아라.
본질은 없이 겉으로 보이기만 한다는 것을 깨달아라.

세상 모든 것이 이와 같음을 깨달아라.
밝은 하늘에 떠 있는 달이
호수에 들어가는 일이 없지만
맑은 물 위에 비춰지고 있음을 깨달아라.

세상 모든 것이 이와 같음을 깨달아라.
메아리는 음악과 소리와 울음 속에서 나오지만
메아리에는 선율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라.

세상 모든 것이 이와 같음을 깨달아라.
마술사는 말과 황소와 마차와 그 모든 환영을 만들지만
모든 것은 보이는 것과 같지 않음을 깨달아라.
-사마디라자수트라-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오래된 미래』,중앙북스, 2007, p.154.
2011. 12. 17. 23:07


사진설명: 기거하는 17층 중앙 창문을 통해 본 복단대와 푸동 방향 전경


삶이란 것은 이따금
하루가 일 년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일 년이 하루와 같이 짧을 때도 있다
한 달이 수 년처럼 생각되듯 십 년이 찰나 보다 못할 때도 많다
이렇듯 삶이란 자체가 암연(然)했다가 시시로 낙락(樂樂)해지기도 한다
문득 사무치고 그리워해야 한다면
기나긴 질곡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더라도 좋다 
기꺼이 울타리를 치고
세상의 온갖 만복만락(萬福萬樂)을 찬미하며
노래할 것이다 

2011. 12. 2. 03:02
두 번째 동장군이 찾아왔다. 첫 추위치고는 많이 춥다. 카이티는 그럭저럭 끝났다. 나도 불만, 보아하니 라오쓰도 조금 불만인 듯 싶다. 라오쓰가 내게 좀 자유로움을 줬으면 좋겠는데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중국 대학원 시스템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 뭐 그만큼 내가 잘 썼더라면 상관 없었겠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소리 하는 카이티 분위기도 별로였다. 같은 선생 밑에서 같이 카이티 한 중국친구는 이 날의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했다. "很失望了。“ 동감한다. 일단 심사 들어온 선생들이 제대로 읽고 오지 않은 것부터 실망이었다. 이런거야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개인적으로는 박사생 정도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생각들을 하는 것보다는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지적해 주기를 바랬었다. 그게 선생의 덕목이지 않겠는가. 선생들은 내가 그런 것들을 몰랐다고 오해했을지도 모르지만은... 선생이 많은 것을 리드하는 이 곳 분위기가 잘 맞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따라가려고는 하지만 체질적으로 거부반응이 좀 있기도 하다. 기회되면 선생과 이런 얘기도 좀 하고, 다음에는 질로 승부해서 그냥 다른 소리 나오지 않도록 해야겠다. 

이제 월요일에 '오바마정부의 동아시아경제정책'에 대한 발표 하나 하고, 이어 남은 숙제 하나 하고 나면 거의 이번 학기가 끝난거나 다름없다. 기말논문이야 뭐 1월이나 2월말에나 낼테니까 말이다. 벌써 12월이다. 다시 한 살 먹는다고 생각하니 암담하다. 한 살 더 먹더라도 아래 만화처럼 여자의 화법이나 좀 더 이해했으면 좋으련만. 남자로서는 쉽지 않다.


2011. 11. 6. 02:18
오래전 멈췄던 그래서 고장난 것이라 여기며 그냥 두었던 탁상시계가 다시 째각거린다. 창을 활짝 열어젖히고 심야의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의 소리를 듣고 있다. 비가 지난 뒤라 그런지 조금은 청량한 밤공기다. 낮에는 약간의 먹을거리를 사기 위해 장을 봤고, 기숙사를 오르내리며 담배 몇 대를 피웠다. 그 와중에 두 끼니의 식사도 했다.  "이제는 제 시간을 따라잡지 못하는 그런 바보같은 시계는 되지 말아야 해." 식후 포만감에 겨워 시계의 시침과 분침을 조정하면서 속삭였다. "난 사실 멈추었던 것이 아니야. 그것을 몰랐던 것은 그저 네 무지 때문이었지." 시계가 째각거리며 나를 조소한다. 내가 몰랐던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2011. 10. 22. 07:18
수요일 저녁 수업을 다녀온 이후 기숙사에서 만난 한국 친구들과 자정이 넘은 시간에 잠시 나가 술 한잔 마시고, 어제 점심에도 동일한 친구들과 삼겹살을 먹으로 다녀온 이후 내내 방에서 처박혀 있다. 다음 주에 지도교수에게 레퍼런스를 보내려면 준비를 좀 해야 하는데 계속 맴도는 생각들 때문에 그냥 잉여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가 이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스스로를 감옥형에 처하는 것이라 보면 된다. 걷는 일도 거의 없으며, 눕거나 책상에 앉아 그저 소일거리를 찾아 하릴없이 그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지치면 오래 잔다. 그리고 다시 반복. 아마도 월, 수요일에 아르바이트와 수업이 없었다면 몇 날 몇 일이고 이렇게 보낼지도 모른다. 어제는 집에 전화를 해서 어머니의 아픈 다리에 대한 안부를 물었고, 앞으로의 내 계획에 대해 잠시 누설을 했다. 부모님은 언제나 자식 걱정 뿐이란 것과 난 내 생각에 갇혀 있을 뿐이라는 것을 재차 확인하고는, 고등학교 친구들 가운데 한 명에게 잇달아 전화를 했다. 회식중에 술을 마시다 나온 듯 싶었는데 술이 이미 살짝 들어간 듯했다. 루구후에서 연락을 하고는 연락이 없어 죽은 줄 알았단다. 서로의 삶이 끈질기게 숨이 붙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이내 안부를 물었다. 내 졸업 이후의 이야기 조금과 지금 내가 가진 생각을 토해냈다. 평소에도 고등학교 친구들은 이쪽 분야의 상황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일단 내 얘기가 화제에 오르면 빨리 졸업해서 교수되어야지 한다. 어제도 내 근황을 좀 언급했더니 다시 똑같은 얘기다. 물론 내가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는 게 전화기 너머로 느껴진다. 그건 현재 친구가 갖지 못한 현재와 미래에 대한 투영이기도 하다. 그 친구도 같이 어울리는 11명의 고등학교 친구들 가운데 결혼을 하지 못한 3인 가운데 하나이다. 나 역시 그 중 하나이고. 그래서 이내 화살을 그 친구에게 돌렸다. 요즘 만나는 여자가 있다고 하는데 그 나이 정도면 대출없이 전셋집 하나 쯤은 마련 해놓았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 시대 평범한 여성이라 한다. 친구는 만남을 지속하고는 있지만 답답하다고 한다. "그럴거면 때려쳐, 뭐 하러 만나냐?"라고 말했지만 부질없는 소리다. 여튼 우리 고등학교 출신 3인방은 독신주의자도 아니면서 독신주의자로 몰리는 길에서 계속 엉덩이를 차이며 뒤뚱뒤뚱 걷고 있다. 주말에 심심하면 070으로 전화나 때리란 말을 하고는 끊었다. 한편, 기숙사로 들어오면서 알게 된 한국사람들의 수는 많이 늘었는데 정작 대화할 사람이 없다. 그들도 마찬가지일테지만. 이럴 때는 중국친구들이나 다른 외국유학생들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국말도 하기 싫어지기 때문이다. 어제 새벽에는 혼자 맥주 세 병을 빨리 마시고 급히 잠들었다. 긴 잠에서 깨어난 오늘 초저녁에는 좀 움직여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어 한국인 후배 한 명에게 문자를 틱하고 보냈다. 밥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냥 "好的。呵呵。”란 말로 답장을 하고 말았다. 또 밥 한번 먹어야지 줄곧 말해왔던 다른 전공의 학생에게 메신저로 말을 걸어보니 그네도 바쁜 듯 싶다. 누군가를 만나려는 계획은 이내 수포로 돌아갔다. 이렇듯 정작 누군가 필요할 때 만날 사람도 없는데, 졸업을 앞둔 박사선배는 내가 엄청난 인기남인 줄 착각하고 계시다. 나 정도 나이와 외모, 성격이면 마음만 고쳐 먹으면 어느 처자와도 시작할 수 있다고 여기신다. 서로에 대한 접근을 의식적으로 차단하지만 쉽게 외로움을 타는 유학생활 특성상 어렵지 않단다. 또 유학생사회의 비좁음으로 인한 소문확산을 두려워해서는 안되고, 여기 있을 때 누군가 만들어 두지 않으면 자기 짝 난다고 술을 같이 마실 때마다 감정이입을 시키고는 한다. 마흔 넘은 노총각 선배의 허술하게 흘릴 수 없는 조언이다. 허나 지금은 연애도 별로 흥이 나지 않는 대목이라는 게 문제다. 이 대목이 해묵은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해결책은 언제나 간단하다. 내 마음을 돌려먹으면 그 뿐이고, 적절한 것을 취하면 된다. 회피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이 모든 잉여의 시간이 발생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시간들은 독특한 내 오래된 해소 방법이기도 하다. 핀치로 스스로를 코너로 몰았다가 다시 링 안으로 자발적으로 돌려보내는 잉여의 게임. 머릿 속으로는 오늘은 좀 움직이기도 하고, 밀린 일들도 해야겠다 하지만 어떨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포스팅을 어제부터 하고 싶었는데 나의 게으름이란 정말이지 대단하다. 랭킹을 만든다면 박사과정 중에 절정의 반열에 능히 오를 수 있을 정도다. 
2011. 10. 18. 02:20
내가 공부하는 곳에 "복단대 커뮤니티"라는 네이버 카페가 있다. 주로 한국 유학생들이 이용하는 정보교류 카페인데 종종 들어가서 이용하고는 한다. 그런데 평소 성향상 그냥 지나치기 힘든 점선 아래와 같은 구인 공고 글(합격자에 한해 30위안의 전화면접비를 주는 것이 아니라 받겠다는 내용)이 올라와서 자유게시판을 이용해서 비판과 더불어 평소 하지 않던 좀 심한 막말들을 올렸다. "개소리 하지 마세요." “你去死吧” 등등.. 물론 막말을 한 것은 나 역시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당시에는 그래야 할 이유가 충분했다.

원 게시글의 학생이 내 게시물을 검색해 내게 전화를 해 사정설명을 했기 때문에 막말은 수정하고 "의사표현의 자유가 타인의 보편적인 인권을 침해한다면 지탄받아야 마땅하다"는 등의 비판의 요지들만 남겨뒀지만(http://cafe.naver.com/shaliuxue/67708), 그 학생은 내가 비난에 가까운 비판 글을 올린 근본적 의문은 해결해 주지 못했다. 그 학생 역시 아직 어린 학생이라 심정은 십분 이해되지만, 여튼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덕분에 아래 게시글을 올린 친구의 주변 친구로 보이는 이들과 게시글 하단의 댓글을 통해 입씨름을 좀 하느라 한 두시간 피곤하게 보냈다. 그 친구들은 여전히 나의 논점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아전인수에 빠져 있는 것 같다. 물론 내 험한 비난 탓에 자극을 받은 탓이겠지만 말이다.

이럴 때는 노신이 말한 喜欢看热闹的人(구경꾼)이 되는 게 나았지 않을까 싶지만, 아무 말도 못하고 30위안이란 면접비를 내야 하는 학생들이 안타까워서 그랬다.

다음 링크의 글은 자다가 잠을 설친 다음, 이른 아침에 다시 그 커뮤니티 게시판에 쓴 것이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http://cafe.naver.com/shaliuxue/67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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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다음달 개최되는 아시아전자전시회에서 통역인원을 모집합니다. 

일자: 11월 9일~11월 11일(3일간)

모집인원: 25명

페이: 80$/일

전시장소: 상해신국제전람중심

이번에는 다행히도 남성분들도 모집합니다^^ 아무래도 여성분 비율이 높겠지만
남성분들도 많이 지원해주시구요. 영어도 잘하시는분들을 우선섭외토록하겠습니다.
그리고 맡은 업체마다 다르겠지만 전자전시회같은경우 다른 전시회에 비해선 통역이 많이 까다롭다고 생각되어,
작년과 같은 방식으로
전화로 간단한 중국어 테스트를 거친후 섭외할 생각입니다.
중국어 테스트는 중국어학원 원장님 두분이 맡아주실거구요
4~50명 정도 중국어 테스트를 본후 25명만 추려서 제가 메일이나 전화로 합격하신 분들께 통보하여드릴 방침입니다.
그리고 최종확정되신 분들에 한하여 소량의 면접비를 걷어 원장님 두분께 식사와 간단한 선물을 사드릴까 합니다.
이점에 대해선 불평불만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4~50명 테스트보는데 통화비용도 만만치 않고 아무 대가없이 반나절 도와주라고
부탁하기도 그러네요^^;
이력서는.............으로 송부하여 주시구요
이력서는 이번주 목요일오전까지 받겠습니다. 그리고 전화면접은 목요일밤또는 금요일밤에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많은 신청 부탁드리겠습니다.


 
2011. 10. 12. 03:52
国务院新闻办发表《中国的和平发展》白皮书(全文)

 新华社北京9月6日电

    国务院新闻办公室6日发表《中国的和平发展》白皮书。全文如下:

中国的和平发展
中华人民共和国国务院新闻办公室
2011年9月

    目 录

    一、中国和平发展道路的开辟

    二、中国和平发展的总体目标

    三、中国和平发展的对外方针政策

    四、中国和平发展是历史的必然选择

    五、中国和平发展的世界意义

    在世界的东方,中国这个拥有13亿多人口的文明古国,正在现代化道路上阔步前行。世界对中国的关注集中起来就是,中国选择了一条什么样的发展道路,中国的发展对世界意味着什么?

    中国多次向世界宣示,中国始终不渝走和平发展道路,在坚持自己和平发展的同时,致力于维护世界和平,积极促进各国共同发展繁荣。在进入21世纪第二个十年和中国共产党成立90周年之际,中国再次向世界郑重宣告,和平发展是中国实现现代化和富民强国、为世界文明进步作出更大贡献的战略抉择。中国将坚定不移沿着和平发展道路走下去。

    一、中国和平发展道路的开辟

    在5000多年文明发展历程中,中国各族人民以自己的勤劳智慧,创造了璀璨的中华文明,缔造了统一的多民族国家。中华文明具有独特的延续性、包容性、开放性。在长期对外交往中,中华民族努力学习借鉴其他民族的长处,自强不息,为人类文明进步作出了重大贡献。

    19世纪中叶,西方列强用炮舰打开中国封闭的门户,内忧外患导致中国逐步成为半殖民地半封建社会,国家积贫积弱、战乱不已,民不聊生。在民族存亡的危急关头,无数仁人志士前仆后继,苦苦追寻变革救亡之路。1911年的辛亥革命,结束了统治中国几千年的君主专制制度,激励中国人民为争取民族独立和国家富强而斗争。然而,这些探索和斗争都未能改变中国半殖民地半封建的社会性质和中国人民的悲惨命运。中国共产党肩负民族的期望,带领中国人民进行了艰苦卓绝的奋斗,于1949年建立了中华人民共和国,实现了民族独立、人民解放,开创了中国历史新纪元。

    新中国成立60多年特别是改革开放30多年来,中国一直致力于探索符合本国国情和时代要求的社会主义现代化道路。虽然历经曲折,中国人民却孜孜以求、与时俱进,不断总结汲取本国及其他国家发展的经验教训,不断深化对人类社会发展规律的认识,不断推动社会主义制度自我完善和发展。通过艰苦努力,中国找到了一条符合自身国情的发展道路,这就是中国特色社会主义道路。

    从更宽广的世界历史视野看,和平发展道路归结起来就是:既通过维护世界和平发展自己,又通过自身发展维护世界和平;在强调依靠自身力量和改革创新实现发展的同时,坚持对外开放,学习借鉴别国长处;顺应经济全球化发展潮流,寻求与各国互利共赢和共同发展;同国际社会一道努力,推动建设持久和平、共同繁荣的和谐世界。这条道路最鲜明的特征是科学发展、自主发展、开放发展、和平发展、合作发展、共同发展。

    ——科学发展。科学发展就是尊重并遵循经济社会和自然发展规律,牢牢扭住经济建设这个中心,坚持聚精会神搞建设,一心一意谋发展,不断解放和发展社会生产力。中国把科学发展观作为经济社会发展的重要指导方针,坚持把发展作为党执政兴国的第一要务,坚持以人为本,坚持全面协调可持续发展,坚持统筹兼顾。坚持以人为本,始终尊重人权和人的价值,不断满足人民日益增长的物质文化需要,走共同富裕道路,促进人的全面发展,做到发展为了人民、发展依靠人民、发展成果由人民共享。坚持全面协调可持续发展,全面推进经济建设、政治建设、文化建设、社会建设以及生态文明建设,促进现代化建设各个环节、各个方面相协调。坚持统筹兼顾,正确认识和妥善处理中国特色社会主义事业中的重大关系,统筹城乡发展、区域发展、经济社会发展、人与自然和谐发展、国内发展和对外开放。

    ——自主发展。中国这样人口众多的发展中大国归根结底要靠自己的力量来发展。中国始终坚持独立自主,把国家发展的基点和重心放在国内,注重从本国国情出发,主要依靠自身力量和改革创新推动经济社会发展,不把问题和矛盾转嫁给别国。在经济全球化大背景下,中国只有坚持自主发展,才能更有效地参与国际分工,才能更好地同世界各国开展互利合作。

    ——开放发展。中国从自身发展经验中深刻认识到,不能关起门来搞建设。中国把改革开放作为一项基本国策,把对内改革和对外开放结合起来,把坚持独立自主同参与经济全球化结合起来,把继承中华民族优良传统同学习借鉴人类社会一切文明成果结合起来,把国际国内两个市场、两种资源结合起来,以开放的姿态融入世界,不断拓展对外开放的广度和深度,加强同世界各国交流合作,完善内外联动、互利共赢、安全高效的开放型经济体系。中国对外开放的大门绝不会关上,开放水平只会越来越高。

    ——和平发展。中华民族是爱好和平的民族,中国人民从近代以后遭受战乱和贫穷的惨痛经历中,深感和平之珍贵、发展之迫切,深信只有和平才能实现人民安居乐业,只有发展才能实现人民丰衣足食,把为国家发展营造和平稳定的国际环境作为对外工作的中心任务。同时,中国积极为世界和平与发展作出自己应有的贡献,绝不搞侵略扩张,永远不争霸、不称霸,始终是维护世界和地区和平稳定的坚定力量。

    ——合作发展。国际社会始终会存在竞争和矛盾。各国应该在良性竞争中取长补短,不断寻找合作机会,扩大合作领域,拓展共同利益。中国坚持以合作谋和平、以合作促发展、以合作化争端,同其他国家建立和发展不同形式的合作关系,致力于通过同各国不断扩大互利合作,有效应对日益增多的全球性挑战,协力解决关乎世界经济发展和人类生存进步的重大问题。

    ——共同发展。当今世界各国相互依存日益加深,只有实现世界各国共同发展,让更多人分享发展成果,世界和平稳定才有坚实基础和有效保障,世界各国发展才可以持续。因此,中国坚持奉行互利共赢的开放战略,坚持自身利益与人类共同利益的一致性,在追求自身发展的同时努力实现与他国发展的良性互动,促进世界各国共同发展。中国真诚期待同世界各国并肩携手,实现共同发展繁荣。

    沿着和平发展道路,中国经历了广泛而深刻的变革,取得了显著的发展成就,为世界繁荣稳定作出了重大贡献,与世界更加紧密地联系在一起。

    实现综合国力大幅度提升。经济总量从1978年到2010年翻了四番多,达到5.88万亿美元,占世界的比重从1.8%增加到9.3%。中国现代化建设的物质基础更加坚实,工业化、信息化、城镇化、市场化、国际化深入发展,社会主义建设事业全面推进。人民生活实现从温饱不足到总体小康的历史跨越,人均国民总收入相当于世界平均水平的比例从2005年的24.9%提高到2010年的46.8%。实现从高度集中的计划经济体制到充满活力的社会主义市场经济体制的伟大历史转折,形成公有制为主体、多种所有制经济共同发展的基本经济制度,市场在资源配置中的基础性作用明显增强,宏观调控体系日臻完善。覆盖城乡居民的社会保障体系逐步建立,文化、教育、科技、卫生、体育等社会事业全面发展。

    实现从封闭半封闭到全方位开放的伟大历史转折。从建立经济特区到开放沿海、沿江、沿边、内陆地区,从引进外资到鼓励中国企业对外投资,从敞开国门搞建设到加入世界贸易组织,中国参与经济全球化和区域经济合作,对外开放水平不断提高。进出口总额从1978年的206亿美元增加到2010年的29740亿美元。1979年至2010年,累计使用外商直接投资10483.8亿美元。迄今同163个国家和地区建立了双边经贸合作机制,签署10个自由贸易区协定,同129个国家签署双边投资保护协定,同96个国家签署避免双重征税协定,成为贸易和投资自由化便利化的积极实践者。中国根据加入世界贸易组织的承诺逐步降低关税,关税总水平从加入世贸组织前的15.3%降到目前的9.8%,并取消了大多数非关税措施。中国积极构建总体稳定、均衡发展、互利共赢的大国关系框架,促进形成机遇共享、共同发展的周边合作局面,巩固并加强了同发展中国家传统友谊和团结合作,与各国相互依存、利益交融日益加深,与世界各国交流合作更加广泛。

    为世界经济稳定发展作出重要贡献。2001年加入世界贸易组织以来,中国年均进口近7500亿美元商品,相当于为相关国家和地区创造了1400多万个就业岗位。过去10年,在华外商投资企业从中国累计汇出利润2617亿美元,年均增长30%。2000年至2010年,中国非金融类年度对外直接投资从不足10亿美元增加到590亿美元,有力促进了有关国家经济发展。2009年境外中资企业实现境外纳税106亿美元,聘用当地员工43.9万人。中国近年来对世界经济增长的贡献率均达到10%以上。在1997年亚洲金融危机引起周边国家和地区货币大幅贬值情况下,中国保持人民币汇率基本稳定,为区域经济稳定和发展作出了贡献。2008年国际金融危机发生后,中国积极参与二十国集团等全球经济治理机制建设,推动国际金融体系改革,参与各国宏观经济政策协调,参与国际贸易融资计划和金融合作,组织大型采购团赴海外采购,向陷入困境的国家伸出援手。中国认真落实联合国千年发展目标,成为全球唯一提前实现贫困人口减半国家,并根据自身能力积极开展对外援助。截至2009年底,中国累计向161个国家、30多个国际和区域组织提供了2563亿元人民币的援助,减免50个重债穷国和最不发达国家债务380笔,为发展中国家培训人员12万人次,累计派出2.1万名援外医疗队员和近1万名援外教师。中国积极推动最不发达国家扩大对华出口,并已承诺对所有同中国建交的最不发达国家95%的输华产品给予零关税待遇。

    为维护世界和平、应对全球性挑战发挥重要作用。中国是唯一公开承诺不首先使用核武器、不对无核武器国家和无核武器区使用或威胁使用核武器的核国家。中国累计向联合国30项维和行动派出各类人员约2.1万人次,是派出维和人员最多的联合国安理会常任理事国。中国积极参与反恐、防扩散领域国际合作,向遭受严重自然灾害的国家提供人道主义援助并派出救援队,为打击海盗行为向亚丁湾、索马里海域派遣海军护航编队。中国参加了100多个政府间国际组织,签署300多个国际公约,成为国际体系的参与者、建设者和贡献者。中国是最早制定并实施《应对气候变化国家方案》的发展中国家,也是近年节能减排力度最大、新能源和可再生能源研发速度最快的国家之一。中国为应对国际和地区热点问题发挥了建设性作用,在朝核问题、伊朗核问题等热点问题上坚持劝和促谈,推动形成朝核问题六方会谈机制。中国同12个陆地邻国解决了历史遗留的边界问题,坚持通过对话谈判处理同邻国领土和海洋权益争端,以建设性姿态提出“搁置争议、共同开发”的主张,尽最大努力维护南海、东海及周边和平稳定。中国通过开展双边合作并参与区域次区域合作,致力于促进亚太地区共同发展繁荣。

    新中国成立以来特别是改革开放30多年的发展历程表明,中国是国际社会的重要成员,是推动国际政治经济秩序朝着更加公正合理方向发展并努力作出贡献的国家。

    二、中国和平发展的总体目标

    中国和平发展的不懈追求是,对内求发展、求和谐,对外求合作、求和平。具体而言,就是通过中国人民的艰苦奋斗和改革创新,通过同世界各国长期友好相处、平等互利合作,让中国人民过上更好的日子,并为全人类发展进步作出应有贡献。这已经上升为中国的国家意志,转化为国家发展规划和大政方针,落实在中国发展进程的广泛实践中。

    实现国家现代化和人民共同富裕是中国和平发展的总体目标。20世纪70年代末实行改革开放后,中国制定并实施了“三步走”的现代化发展战略。第一步,实现国民生产总值比1980年翻一番,解决人民温饱问题。第二步,到20世纪末实现国民生产总值再翻一番,人民生活达到小康水平。这两步目标已经实现。第三步,到本世纪中叶中华人民共和国成立100年时,人均国民生产总值达到中等发达国家水平,人民生活比较富裕,基本实现现代化,建成富强民主文明和谐的社会主义现代化国家。“三步走”目标的核心任务是,提高人民物质文化生活水平,实现富民与强国的统一。同时,要随着综合国力的不断增强,履行相应的国际责任和义务。

    全面建成惠及十几亿人口的更高水平的小康社会是中国和平发展的中长期目标。到2020年,中国将全面建成惠及十几亿人口的更高水平的小康社会,使中国成为工业化基本实现、综合国力显著增强、国内市场总体规模位居世界前列的国家,成为人民富裕程度普遍提高、生活质量明显改善、生态环境良好的国家,成为人民享有更加充分民主权利、具有更高文明素质和精神追求的国家,成为各方面制度更加完善、社会更加充满活力而又安定团结的国家,成为对外更加开放、更加具有亲和力、为人类文明作出更大贡献的国家。

    实现“十二五”规划是中国和平发展的近中期目标。在全面建设小康社会目标指引下,《中华人民共和国国民经济和社会发展第十二个五年规划纲要》确立了“十二五”时期(2011—2015年)中国经济社会发展的指导思想、总体思路、目标任务和重大举措。今后5年,中国经济社会发展将坚持以科学发展为主题、以加快转变经济发展方式为主线,主要目标是:经济平稳较快发展,经济结构战略性调整取得重大进展,科技教育水平明显提高,资源节约和环境保护成效显著,人民生活持续改善,社会建设明显加强,改革开放不断深化。经过全国人民共同努力奋斗,使转变经济发展方式取得实质性进展,综合国力、国际竞争力、抵御风险能力显著提高,全面建成小康社会的基础更加牢固。同时,中国将积极开展国际交流合作,扩大和深化同各方利益汇合点,促进各国共同发展。

    从温饱到小康再到中等发达水平,使人民生活更加富裕,集中体现了中国和平发展的战略意图。为了实现上述目标,中国决心在以下方面作出努力。

    ——加快转变经济发展方式

    把经济结构战略性调整作为主攻方向。坚持扩大国内需求特别是消费需求,通过多种途径增强居民消费能力,调整优化国内投资结构,同步推进工业化、城镇化和农业现代化,促进经济增长由主要依靠投资和出口拉动向消费、投资、出口协调拉动转变,由主要依靠第二产业带动向依靠第一、第二、第三产业协同带动转变,由主要依靠增加物质资源消耗向主要依靠科技进步、劳动者素质提高、管理创新转变。深入实施科教兴国战略和人才强国战略,致力于建设创新型国家。坚持观念创新和体制创新,注意学习吸收其他国家的先进技术和管理经验,不断提高经济增长质量和效益。

    着力突破制约发展的资源环境瓶颈。确立绿色、低碳发展理念,以节能减排为重点,加快构建资源节约、环境友好的生产方式和消费模式。推动循环经济发展,改善环境质量,构建安全、稳定、经济、清洁的现代能源产业体系,提升资源保障程度,促进人与自然和谐发展,实现经济发展与人口资源环境相协调,坚持探索一条科技含量高、经济效益好、资源消耗低、环境污染少、人力资源优势得到充分发挥的中国特色新型工业化道路。中国经济实现全面协调可持续发展,将为世界经济发展开辟更加广阔的空间。

    ——进一步挖掘自身资源和市场优势

    中国拥有丰富的人力物力资源和比较完备的工业体系,将坚持以自力更生为主实现持续发展。预计到2015年,中国人才资源总量将达到1.56亿人,主要劳动年龄人口受过高等教育的比例将达到15%,人才资源对经济增长的贡献率将达到32%,可以为中国经济持续发展提供充足的优质劳动力。中国矿产资源和耕地面积总量居世界前列,粮食基本实现自给自足。尽管人均国内资源拥有量较低,但通过充分发挥市场配置功能和推动科技进步,可以最大限度减少中国经济社会发展对资源的依赖。中国将发挥原材料、装备以及消费品制造等产业优势,满足本国民众的物质需求,为世界市场提供更多优质产品和服务。

    人口规模和经济总量决定了中国拥有巨大国内需求潜力。随着人均收入不断增加、国内投资稳步提高、区域发展战略深入推进,中国还将形成新的经济增长极和更大的市场空间。未来5年,中国消费结构将进一步提升,居民消费潜力将得到进一步释放,国内市场总体规模将位居世界前列,进口规模累计有望达到8万亿美元,这将给世界各国带来更多商机。

    ——加快构建和谐社会

    中国将加快推进以改善民生为重点的社会建设,夯实社会和谐的民生基础。推进社会体制改革,建立健全基本公共服务体系,创新社会管理机制,提高社会管理水平,完善收入分配制度和社会保障体系,努力使全体人民学有所教、劳有所得、病有所医、老有所养、住有所居,形成社会和谐人人有责、和谐社会人人共享的生动局面,使发展成果惠及全体人民。

    加强社会主义民主政治建设,积极稳妥推进政治体制改革,发展社会主义民主,建设社会主义法治国家,保障人民当家作主。继续依法实行民主选举、民主决策、民主管理、民主监督,保障人民的知情权、参与权、表达权、监督权,扩大公民有序政治参与。继续坚持各民族一律平等和民族区域自治,依法保障人民的宗教信仰自由,充分尊重并维护公民的基本人权和其他合法权益。

    ——实施互利共赢的开放战略

    坚持对外开放的基本国策。奉行互利共赢的开放战略,充分利用经济全球化和区域经济合作提供的各种有利条件,实现对外开放由出口和吸收外资为主向进口和出口、吸收外资和对外投资并重转变,不断拓展新的开放领域和空间,完善开放型经济体系,提高开放型经济水平,以开放促发展、促改革、促创新。

    加快转变外贸发展方式。继续积极参与国际分工,推动外贸发展从规模扩张向质量效益提高转变、从成本优势向综合竞争优势转变,大力发展服务贸易,扩大进口规模,促进国际贸易收支趋向基本平衡,反对贸易保护主义,妥善处理国际经贸摩擦。

    努力提高利用外资水平。不断优化结构、丰富方式、拓宽渠道、提高质量,加快引进智力、人才、技术,引导外资投向重点领域和重点地区。保护外资企业在华合法权益,对国际资本和先进技术持开放态度,创造公平有序的投资环境。实施国家知识产权战略,大力提高知识产权创造、运用、保护和管理能力。

    更加重视对外投资和合作。鼓励各类企业有序开展境外投资和合作经营,支持在境外开展技术研发投资合作,开展海外工程承包和劳务合作,扩大农业领域国际合作,深化国际能源资源开发互利合作。大力开展有利于改善东道国民生和增强东道国自主发展能力的项目合作,尊重当地宗教和风俗习惯,遵守驻在国法律,承担相应社会责任和义务,促进驻在国发展。优化对外援助结构,创新对外援助方式,提升对外援助效果。

    有序扩大金融市场和金融业对外开放。构建服务高效、风险可控的金融体系,完善以市场供求为基础、有管理的浮动汇率制度,逐步实现人民币资本项目可兑换。既为各国对华开展贸易投资互利合作带来更大便利,也为维护国际货币金融市场稳定、促进经济全球化健康发展创造更好条件。

    ——创造和平国际环境和有利外部条件

    中国坚持在和平共处五项基本原则的基础上同所有国家发展友好合作。同发达国家加强战略对话,增进战略互信,深化互利合作,妥善处理分歧,探索建立和发展新型大国关系,推动相互关系长期稳定健康发展。坚持与邻为善、以邻为伴、睦邻友好的方针,发展同周边国家和亚洲其他国家的友好合作关系,积极开展双边和区域合作,共同营造和平稳定、平等互信、合作共赢的地区环境。加强同广大发展中国家的团结,深化传统友谊,扩大互利合作,通过援助和投资等方式,真诚帮助发展中国家实现自主发展,维护发展中国家正当权益和共同利益。积极参与多边事务和全球性问题治理,承担相应国际义务,发挥建设性作用,推动国际政治经济秩序朝着更加公正合理的方向发展。深入开展同各国议会、政党、地方、民间等各方面交流合作,扩大人文领域对外交流,增进中国人民同各国人民的相互了解和友谊。

    坚持奉行防御性的国防政策。中国有广阔的领土和辽阔的海洋,陆地边界2.2万多公里,大陆海岸线1.8万多公里。中国面临复杂多样的传统和非传统安全挑战,受到分裂势力和恐怖主义等威胁。推进国防现代化是中国合理的国家安全需求,是中国实现和平发展的必要保障。中国军队现代化的根本目的是捍卫国家主权、安全、领土完整,保障国家发展利益。中国国防开支是合理适度的,是与维护国家安全需要相适应的,中国不会也无意同任何国家搞军备竞赛,不会对任何国家构成军事威胁。中国坚持“人不犯我、我不犯人”,致力于和平解决国际争端和热点问题。中国重视加强国际军事交流,推动国际和地区安全合作,反对一切形式的恐怖主义。

    三、中国和平发展的对外方针政策

    中国作为国际社会的一员,对未来的世界怀有美好期待,坚持与和平发展相适应的国际关系理念和对外方针政策。

    ——推动建设和谐世界

    维护世界和平、促进共同发展是中国外交政策的宗旨。中国倡导并致力于同世界各国一道推动建设持久和平、共同繁荣的和谐世界。认为这既是一个长期目标,又是一项现实任务。为了建设和谐世界,应努力做到:

    政治上相互尊重、平等协商,共同推进国际关系民主化。国家不分大小、强弱、贫富,都是国际社会平等成员,都应受到国际社会尊重。维护联合国在世界事务中的核心地位,遵循联合国宪章宗旨和原则,恪守国际法和公认的国际关系准则,在国际关系中弘扬民主、和睦、协作、共赢精神。各国内部事务应由本国人民自己决定,世界上的事情应由各国平等协商,各国平等参与国际事务的权利应得到尊重和维护。

    经济上相互合作、优势互补,共同推动经济全球化朝着均衡、普惠、共赢方向发展。努力建立公正、公开、合理、非歧视的多边贸易体制,使经济全球化成果惠及世界各国。携手落实联合国千年发展目标,使21世纪成为人人享有发展成果的世纪。

    文化上相互借鉴、求同存异,尊重世界多样性,共同促进人类文明繁荣进步。大力提倡不同文明间对话和交流,消除意识形态偏见和隔阂,使人类社会一天比一天和谐和睦,让世界更加丰富多彩。

    安全上相互信任、加强合作,坚持用和平方式而不是战争手段解决国际争端,共同维护世界和平稳定。通过协商对话增进信任、减少分歧、化解纠纷,避免使用武力或以武力相威胁。

    环保上相互帮助、协力推进,共同呵护人类赖以生存的地球家园。提倡创新发展模式,走可持续发展道路,促进人与自然和谐发展。坚持共同但有区别的责任原则,加强环境保护和应对气候变化的国际合作。

    ——坚持独立自主的和平外交政策

    中国人民坚持自己选择的社会制度和发展道路,不允许外部势力干涉中国内政。坚持在和平共处五项原则基础上,同所有国家发展友好合作,不同任何国家和国家集团结盟,不以社会制度和意识形态异同决定国家关系的亲疏。尊重各国人民自主选择社会制度和发展道路的权利,不干涉别国内部事务,反对以大欺小、以强凌弱,反对霸权主义和强权政治。坚持通过求同存异、对话协商解决矛盾分歧,不把自己的意志强加于人。坚持从中国人民的根本利益和世界人民的共同利益出发,根据事情本身的是非曲直确定立场和政策,秉持公道,伸张正义,在国际事务中积极发挥建设性作用。

    中国坚决维护国家核心利益。中国的核心利益包括:国家主权,国家安全,领土完整,国家统一,中国宪法确立的国家政治制度和社会大局稳定,经济社会可持续发展的基本保障。

    中国充分尊重各国维护本国利益的正当权利,在积极实现本国发展的同时,充分顾及他国正当关切和利益,绝不做损人利己、以邻为壑的事情。

    中国把中国人民的利益同世界各国人民的共同利益结合起来,扩大同各方利益的汇合点,同各国各地区建立并发展不同领域不同层次的利益共同体,推动实现全人类共同利益,共享人类文明进步成果。

    ——倡导互信、互利、平等、协作的新安全观

    中国倡导互信、互利、平等、协作的新安全观,寻求实现综合安全、共同安全、合作安全。

    注重综合安全。在新的历史条件下,传统安全威胁和非传统安全威胁相互交织,安全内涵扩展到更多领域。国际社会需要强化综合安全观念,坚持综合施策、标本兼治,携手应对人类面临的多样化安全挑战。

    追求共同安全。在经济全球化条件下各国命运休戚与共,国际社会应增强共同安全意识,既要维护本国安全,又要尊重别国安全关切。要摒弃冷战思维和同盟对抗,通过多边合作维护共同安全,协力防止冲突和战争。充分发挥联合国在维护世界和平与安全方面的作用,建立公平有效的共同安全机制。

    促进合作安全。战争和对抗只会导致以暴易暴的恶性循环,对话和谈判是解决争端的唯一有效和可靠途径。要以合作谋和平、以合作保安全、以合作化干戈、以合作促和谐,反对动辄使用武力或以武力相威胁。

    ——秉持积极有为的国际责任观

    作为世界上人口最多的发展中国家,中国把自己的事情办好,本身就是对世界负责任最重要的体现。作为国际社会负责任的国家,中国遵循国际法和公认的国际关系准则,认真履行应尽的国际责任。中国以积极姿态参与国际体系变革和国际规则制定,参与全球性问题治理,支持发展中国家发展,维护世界和平稳定。各国国情和发展阶段不同,应按照责任、权利、实力相一致的原则,着眼本国和人类共同利益,从自身国力出发,履行相应国际义务,发挥建设性作用。随着综合国力的不断增强,中国将力所能及地承担更多国际责任。

    ——奉行睦邻友好的地区合作观

    中国同周边各国积极开展睦邻友好合作,共同推动建设和谐亚洲。主张地区各国相互尊重、增进互信、求同存异,通过谈判对话和友好协商解决包括领土和海洋权益争端在内的各种矛盾和问题,共同维护地区和平稳定。密切经贸往来和互利合作,推进地区经济一体化进程,完善现有区域次区域合作机制,对其他区域合作构想持开放态度,欢迎地区外国家在促进地区和平与发展中发挥建设性作用。中国不谋求地区霸权和势力范围,不排挤任何国家,中国的繁荣发展和长治久安对周边邻国是机遇而不是威胁。中国将始终秉承自强不息、开拓进取、开放包容、同舟共济的“亚洲精神”,永做亚洲其他国家的好邻居、好朋友、好伙伴。

    四、中国和平发展是历史的必然选择

    走和平发展道路是中国政府和人民继承中华文化的优秀传统、根据时代发展潮流和中国根本利益作出的战略抉择,是中国发展的内在需要。

    ——和平发展是中国历史文化的传承

    中国文化自古就认为世界应是一个和谐整体,这个观念深深影响了中华民族的思想和行为,成为中国人处理人与人、人与自然乃至国与国关系的重要价值观。

    中国人民历来崇尚“和而不同”、“天人合一”、“以和为贵”的理念,以和谐精神凝聚家庭、敦睦邻里、善待他人。和谐文化培育了中华民族热爱和平的民族禀性。举世闻名的“丝绸之路”是一条贸易之路、文化之路、和平之路,铭刻下中国古人追求同各国人民友好交流、互利合作的历史足迹。中国明代著名航海家郑和“七下西洋”,远涉亚非30多个国家和地区,展现的是中华灿烂文明和先进科技,留下的是和平与友谊。

    中华民族以“海纳百川,有容乃大”的胸怀,接受一切有益的外来文化,促进了中外文化融合,留下了不少对外文化交流的千古佳话。中国人民具有强烈的集体意识和社会责任感,崇尚“己所不欲,勿施于人”,尊重不同文化、不同观念,注重推己及人、将心比心,不将自己的意志强加于人。对外待之以礼,实行睦近交远。

    从5000多年文明史中走来的中国人民,继承了中华文化的优秀传统,又赋予这一文化新的时代内涵。

    ——和平发展是中国基本国情的要求

    中国人口多、底子薄,用世界7.9%的耕地和6.5%的淡水资源养活着世界近20%的人口,经济社会发展成就要由13亿多人共享,不断满足众多人口生存和发展需求是巨大难题。2010年,中国人均国内生产总值约为4400美元,居世界100位左右。中国城乡、区域发展很不平衡,经济社会发展结构性矛盾突出,资源环境等发展的瓶颈制约突出,经济增长过于依赖物质资源投入,转变经济发展方式任务艰巨。中国自主创新能力较弱,在国际产业体系和贸易分工中仍处于产业链低端。中国人民生活水平还不高,社会保障体系还很不完善,与发达国家相比还有很大差距。

    中国现代化是世界五分之一人口的现代化,这是一个很长的历史过程。这一过程中的困难和问题,无论规模还是难度,在当今世界都是绝无仅有的,在人类历史上也是罕见的。在相当长历史时期内,中国仍将是一个发展中国家,这就决定了中国必须集中力量推进现代化,集中精力解决发展和民生问题;始终需要和平稳定的国际环境,开展对外交流合作。即使中国将来强大起来,和平依然是发展的基本前提,没有理由偏离和平发展道路。基本国情、文化传统和国家根本利益、长远利益是中国和平发展的决定因素和内生动力。

    ——和平发展是顺应世界潮流的选择

    和平与发展是当今时代的两大主题,和平、发展、合作是不可阻挡的世界潮流。当前,世界多极化、经济全球化深入发展,国际体系变革的要求突出,国际社会正面临越来越多新的历史课题。共同用好发展机遇,共同应对各种风险,成为各国人民的愿望。

    经济全球化成为影响国际关系的重要趋势。不同制度、不同类型、不同发展阶段的国家相互依存、利益交融,形成“你中有我、我中有你”的命运共同体。人类再也承受不起世界大战,大国全面冲突对抗只会造成两败俱伤。

    全球性挑战成为世界主要威胁。人类共同安全问题日益突出,恐怖主义、大规模杀伤性武器扩散、金融危机、严重自然灾害、气候变化、能源资源安全、粮食安全、公共卫生安全等攸关人类生存和经济社会可持续发展的全球性问题日益增多。任何国家都不可能单独解决这些问题,国际社会必须携手应对。如果不能通过全面持续的国际合作抑制各种负面因素,世界和平与发展将面临重大障碍,甚至可能遭受更大灾难。

    世界多极化发展进程难以阻挡。新兴市场国家、区域集团和亚洲等地区力量不断发展壮大,各类非国家行为体迅速成长,借助经济全球化和社会信息化拓展影响,成为各国和国际舞台上的重要力量。

    世界潮流浩浩荡荡,顺之则昌,逆之则亡。国际社会应该超越国际关系中陈旧的“零和博弈”,超越危险的冷战、热战思维,超越曾把人类一次次拖入对抗和战乱的老路。要以命运共同体的新视角,以同舟共济、合作共赢的新理念,寻求多元文明交流互鉴的新局面,寻求人类共同利益和共同价值的新内涵,寻求各国合作应对多样化挑战和实现包容性发展的新道路。要和平,不要战争;要发展,不要停滞;要对话,不要对抗;要理解,不要隔阂,乃大势所趋、人心所向。中国走和平发展道路,正是在这一时代大背景下的必然选择。

    五、中国和平发展的世界意义

    和平发展道路是中国这个世界上最大的发展中国家探索出的一条新型发展道路,随着时间的推移,这条道路已经并将进一步显示出其世界意义。这条道路的成功既需要中国人民坚持不懈努力,也需要外部世界理解和支持。

    中国和平发展打破了“国强必霸”的大国崛起传统模式。建立殖民体系、争夺势力范围、对外武力扩张,是近代历史上一些大国崛起的老路。特别是在20世纪,追逐霸权、实力对抗、兵戎相见,使人类惨遭两次世界大战的浩劫。中国基于自己几千年历史文化传统,基于对经济全球化本质的认识,对21世纪国际关系和国际安全格局变化的认识,对人类共同利益和共同价值的认识,郑重选择和平发展、合作共赢作为实现国家现代化、参与国际事务和处理国际关系的基本途径。几十年来的实践证明,中国走和平发展道路走对了,没有任何理由加以改变。

    经济全球化和科技革命为更多国家提供了通过经济发展和互利合作实现振兴的历史条件,越来越多发展中国家走上快速发展的道路。正是因为这样,世界经济规模和发展空间才越来越大,国际社会抵御经济和金融危机的能力才明显增强,国际经济体系变革才有了更强劲的动力。中国和平发展顺应了这一世界发展大势,中国乐见并支持越来越多的发展中国家改变自身命运,也乐见和支持发达国家继续繁荣发展。

    在世界发生翻天覆地变化的今天,无论什么主义、什么制度、什么模式、什么道路,都在经历时代和实践的检验。各国国情千差万别,世界上不存在最好的、万能的、一成不变的发展模式,只有最适合本国国情的发展道路。中国的发展道路形成于、立足于本国国情。中国深刻认识到走和平发展道路的重要性和长期性,认识到国内外环境变化的深刻性和复杂性,将更加注意总结和运用自身的成功经验,更加注意学习借鉴其他国家的有益经验,更加注意研究前进道路上的新问题、新挑战,为和平发展开辟更为广阔的前景。

    中国发展离不开世界,世界繁荣稳定也离不开中国。中国取得的发展成就与世界各国友好合作密不可分,中国未来发展更需要国际社会理解和支持,我们衷心感谢所有理解、关心、支持、帮助中国发展的国家和人民。有十几亿人口的中国走和平发展道路,这是人类发展史上新的伟大探索和实践,不可能做得十全十美,我们欢迎一切友好建议和善意批评。我们真诚希望国际社会更加深入地了解中国源远流长的文明传统,尊重中国人民对国家主权、安全、领土完整和社会稳定的珍视,理解中国作为最大发展中国家需要逐步解决的各种发展难题,理解中国人民渴望彻底摆脱贫困、过上富裕日子的心情,相信中国人民走和平发展道路的诚意和决心,支持而不是阻碍中国走和平发展道路。

    回顾历史,展望未来,我们坚信,一个繁荣发展的中国,一个民主法治的中国,一个和谐稳定的中国,必将为世界作出更大贡献。中国人民愿同世界各国人民一道,为实现人类美好理想而不懈努力。

원문출처: http://www.gov.cn/jrzg/2011-09/06/content_1941204.htm

2011. 9. 27. 03:55
루구후에서 상하이로 돌아온 날, 바로 기숙사로 입주하였다. 바로 개강해서 알바하고 학교 다니느라 바쁘기도 했고, 지난 주에는 지독하게 아프기도 했었다. 이번 주만 지나면 국경절이라 좀 쉴 수 있게 될 것 같다. 기숙사 생활도 어느덧 적응이 다 되어가고, 소소하게 사람들 알아가는 재미는 있더라.

사진에 보이는 것만큼이고, 이 밖에 빨래를 널거나 담배를 태울 수 있는 작은 베란다가 있다. 17층이라 높이는 나쁘지 않은데, 북향이라 겨울에 춥지 않을까 걱정이다. 상황 봐서 다시 한 번쯤 남향으로 옮길 생각도 가지고 있다.

아래 두 개의 포스팅에는 미처 올리지 못한 루구후 사진들을 올렸다. 


2011. 9. 12. 04:48
搬到留学生公寓以后,一段时间操作不熟的缘故,不能连接了从韩国带来的070网络电话。但刚刚成功地连接好了。从此随便可以使用070电话及无线网络。呵呵。 因这个连接,1周前给有个留学生买过二手的宽带路由器。我要再卖给别人。可以叫我070天才啊。下面的标记就是070号。中秋节快乐。我希望大家今晚可以赏满圆的月亮。
2011. 9. 5. 04:09

三八”是标准的台湾“省骂,所谓“三八”,应该是专门用来骂女性的,意思是“这个女人举止轻浮,做事鲁莽、疯疯癫癫、不够庄重”

闽南一带有一句俗语“三八”。这是一句骂人的话,意思是指那些不正经或者行为、语言等方面不符合礼仪、道德规范的人。
“三八”这句俗语是怎么来的呢?
  清朝末年,八国联军侵略中国,腐败的清政府慑于八国联军的压力,被迫与八国联军签订了许多丧权辱国的条约,
并开放宁波、上海、青岛、厦门、广州等五个港口为通商口岸。
从此,外国侵略者肆意在中国土地上横行霸道。那时,厦门、泉州等地也驻有许多外国鬼子,每逢三、八的日子,
外国鬼子就成群结队到处横行,有的开着汽车在路上横冲直撞,有的拦劫妇女施以强暴,有的拿中国人作为靶子练习射击,
有的借酒疯殴打行人……真是无恶不作。中国人民对此行径非常痛恨,所以一见外国鬼子就说“三八鬼子又来了”,赶快逃避。
  后来,“三八鬼子”这句话一直流传下来,在流传过程中,人们为了简便,就缩为“三八”。
凡是遇到那些行为不端,语言粗鲁、不遵礼仪的人,人们就说:“这个人真‘三八’







보충설명 기사 링크: http://news.163.com/10/0307/02/6151TKEJ000146BB.html
2011. 8. 8. 19:04

中国人的五大特色 】 1、不愿为朋友的成功鼓掌,却愿为陌生的悲惨捐助。2、不愿为强者的坚持援手,却愿为弱者的妥协流泪。3、不愿为规则的执行所累,却愿为潜规则的适应受罪。4、不愿为共同的利益奋斗,却愿为社会的不幸怒骂。5、不愿为长远的发展谋福,却愿为眼前的小利冒险。( 改自网络贴子 )

이틀 전부터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를 시작했다. 팔로워가 달랑 한 명으로 시작했는데, 그 친구가 스크랩한 것 중에 눈에 띄는 문장이었다. 웨이보를 얼마나 열심히 할 줄 모르겠지만, 중국인들의 현재 넷심을 이끌고 있는만큼 일정한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보통 www.weibo.com으로 시나닷컴의 웨이보가 가장 광범위한 층을 보유하고 있다. 웨이보 하는 사람들이 3억이라 했던가? 팔로워도 이 정도 사람이 300만이 넘는 걸 보면..후훗. 이번 고속철도 사고처리 과정에서 웨이보의 위력이 대단했던만큼, 중국 젊은이들은 앞으로 웨이보를 통해 제한적인 출구를 찾을지 모르겠다. 원문은 여기에서 보시기 바람.

http://weibo.com/1291592332/ximhAlJO6 

韩志国란 사람인데, 넷상에서 꽤나 유명한 듯 하다. 중국 내부자만 읽을 수 있는 중국인에 대한 모습일 듯 싶다. 이 사람에 대한 소개는 아래 링크를 참고.

http://baike.baidu.com/view/838411.htm


2011. 6. 19. 04:36

방명록에 댓글을 달고 나서 글쓰기를 클릭하고는 좀 망설이다 글을 쓰고 있다. 여기는 장마기간이다. 중국 중남부를 홍수가 강타했다는데, 상하이는 삼 일째 연속 비가 끊이지 않고 내리는 것 말고는 별다른 일은 없다. 겨울에는 비가 오면서 바람까지 부는 것이 정말이지 싫었는데 초여름의 비는 오히려 이곳 날씨를 선선하게 만들어줘 봄 아닌 봄을 만끽하는 중이다. 게다가 하우스메이트도 아기 돌잔치로 한국에 가서 혼자만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렇게 비를 싫어하는 나인데도 집 밖에 잘 나가지 않는 것은 여전한데도 심리변화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한국에서의 생활보다 훨 덜하다. 환경에 따라 마음도 간사하게 움직이나 보다. 사실 봄 시작되고 이상기후로 30도 넘어가는 날씨는 이미 좀 겪은 뒤지만, 이제 다가올 두 달 남짓의 끔찍한 더위만 겪으면 벌써 만 일 년을 보내게 된다. 

많은 이들이 이렇게 얘기하겠지만, 언제나 한 것도 별로 없이 시간만 보낸 것 같다. 그래도 상해2공대는 이제 두 과목만 채점해서 성적만 올리면 9월 초 계절학기 시작 때 까지는 거의 자유의 몸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복단대 수업도 슬슬 정리가 되어가고 있다. 고급한어는 시험을 봤고, 내일 전공한어도 짧은 발표 하나와 추후 텀페이퍼만 내면 정리가 된다. 어제는 타과 과목도 정리가 되어 역시 텀페이퍼만 개강 초 전에만 내면 된다. 이제 다음 주 지도교수가 진행하는 전공 필수 수업 한 번 남았고, 일본어는 한 주 수업을 더 진행한 뒤 시험만 남았다. 물론 지도교수 수업 텀페이퍼는 봐서 학술논문 한 편으로 발전시킬까 생각도 가지고 있는지라 6월 30일 일본어 시험이 끝난 뒤 2주 정도는 이것을 하며 시간을 보내게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런 다음에는 7월 20일 직후 이사를 하려고 한다. 기숙사로 들어갈까도 고민을 했었는데 지금은 그냥 살기 괜찮은 1인실로 옮겨가 혼자 계속 살아볼까 하고 있다. 그 후 방학 한 달을 논문 주제 최종 선정에 올인하려고 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2003년 겨울에 한 번 다녀온 바 있는 운남성 루구후에 가서 피서 겸 공부를 하며 보낼까 하고 있다. 1박 2일의 기억은 8년 후의 나를 여전히 강렬하게 흡인한다. 낮에는 책 보고 저녁에는 여행 온 여행객들과 여담을 나누며 보내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 세 번 정도의 여름은 이런 식으로 보내면 어떨까 하고 있다. 물가가 너무 많이 올라서 걱정인데, 숙소는 아래의 2인실(1일 50위안 혹은 80위안짜리 방)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 공부도 좀 해야 해서 도미토리는 지양하고자 한다.
http://www.laoshay.com/hostel/lugu/lugu.html
다만 늘 걸리는 것은 경비문제이다. 좀 무리를 해서라도 다녀오면 가을, 겨울학기에 쉽게 지치지 않을 듯도 싶다. 일정은 왕복 6일의 교통시간을 포함해 만 1개월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 여행과 관련되서는 방학이 되고 구체화되면 다시 올리도록 하겠다. 아마도 여름은 윈난성의 사진들로 도배가 될 지 모르겠다.  

다음 주 목요일 마지막 수업 이후에 지도교수와 나를 포함한 박사지도학생 두 명과의 식사자리가 있고, 토요일에는 중국친구들이 광석이와 룸메이트 윤석이의 환송회를 해주겠다 해서 시간을 내야 하는 것 말고는 남은 6월은 이제 온통 일본어 모드다. 

참..휴대폰을 바꾸었다. 번호는 137 6474 7046이다. 전에 쓰던 것이 중국연통이라 잘 터지지 않고 처음에 워낙 싼 걸 구입해서 여러모로 불편했다. 그래서 중국이동으로 바꾸면서 전화기까지 한글 문자가 가능한 것으로 바꾸었다. 이곳에서 워낙 한국친구가 별로 없어 한글문자는 보낼 일이 거의 없지만, 한국에 가끔 연락할 일이 있을 때 편할 것 같아서이다. 중국에서 보내면 1위안, 한국에서 보내면 100원이라고 하더라. 001, 002 등의 국제전화번호와 국가번호 86을 누르고 휴대폰 번호를 누르면 바로 나한테 문자가 온다. 가끔 이용해 주시라.  
2011. 6. 2. 01:24

1. 지난 주가 어머니 칠순이셨다. 한 명은 호주에, 한 명은 중국에, 한 명은 서울에 있지만 부모님에게 딸린 자식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외가친지들끼리 모여 간단하게 식사하고 끝마쳤다는 부모님의 전언을 간단히 들었다. 마침 여기 일정에 잠시 숨을 돌리던 참이라 그랬는지 마음이 내내 편치는 않았다. 가족을 생각하면 해서는 안되는 공부였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철저하게 가족의 울타리 속에서만큼은 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울 수가 없다. 그럼에도 자주 가족을 잊으려고 한다. 이런 점에서는 난 매우 이기적이다. 다른 형태의 도피라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효도란 미덕도 요원한 편이다. 그나마 가장 빠른 것이 3년 안의 학위 취득이겠고, 다음은 결혼과 손주를 안겨드리는 것 정도인데 두 번째와 세 번째는 현재의 시점에서는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부모와 나의 관계가 참으로 일방적이라 깨달은 이후로는 난 그 일방성을 효과적으로 운용하기도 했다. 결국 그 일방성에 대한 그 어떤 답도 난 현실에서 부모에게 할 수 없을 것이다.
 

2. 좀 지난 이야기지만, 여기에서는 '고급한어'라는 과목에서 복단대 재학중인 같은 학번의 모든 박사 유학생들을 만날 수 있다. 석사는 이보다 훨씬 많은 숫자일테지만, 내가 입학한 해의 한국인 박사생은 모두 14명이다. 그 중 올해 서른이 된 중문과 친구가 한 학기를 마친 지난 겨울 뇌수막염에 걸려 한국에 귀국한 바가 있었다. 후유증으로는 어느 시기 이후의 기억을 잃어 중국어까지 잃었다는 후문을 겨울방학에 들은 바 있다. 그 친구 얘기를 9개월이 지나는 동안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는데, 대체로 그네를 하나의 신화로 조작되는 것과 관련되었다. 유학생 기숙사의 석사생들 사이에서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굉장히 똑똑하다", "천재이다."라는 것에서 병을 앓고 귀국을 한 이후에는 "아.역시나..." 범인과는 다르다는 뭐 이런 감탄사 등이다. 난 그 친구와 딱 세 번 여럿이서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마주친 정도에 불과하다. 내 경우 사람을 잘 못알아보는 것인지는 몰라도 그에 대해 남들과 다르다는 인상을 받지는 못했고, 그저 열심히 공부는 하는 것 같다란 인상을 받기는 했었다. 내가 좀 못내 마음에 걸렸던 것은 그는 사라지고, 이미지만 남았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좁은 유학생 사회의 쓸데 없는 입담과 고독, 한국 여성동지들의 수다에서 비롯된 조작된 동의라 본다. 일상의 변화가 없으니 무엇인가 필요했었는데, 그가 하나의 희생양이 된 셈이다. 역으로 그와 교류했던 일본 아줌마 박사가 귀국한 지 4~5달이 지난 사람과 메일 교환을 통해 최근 소식을 오늘 전해왔다. 오히려 이런 경우에는 외국인 친구가 좀 더 순수한 것이다. 물론 발병 후 귀국과정에서 한국유학생회나 주변 지인들이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다만 그네의 공부에 대한 애정, 발병에 따른 귀국에 대한 애석함은 뒤로 밀린 채 이 곳의 한국인들 대다수는 변죽만 울린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이다. 한국인 사회의 정서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이해되기도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본질이 호도되는 것을 보면 어이가 없다. 그렇게도 피해 다니다가도 어쩌다 기회가 되어 만났다 하면 외로움의 정서를 쏟아 내려는 재중유학생의 자화상이다. 


3. 강의 나가는 2공업대학은 2주 정도 있으면 학기를 끝내고, 복단대는 4주가 있어야 학기가 끝난다. 물론 뒤에 텀페이퍼 몇 개 내야 하기도 하지만... 논문 주제도 곧 확정해야 하는데 아직 학기 중이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몇 가지 생각의 물꼬를 트다 학기가 바빠 그냥 방기하고 있는데, 곧 지도교수의 따뜻한 채근(?)이 이어질 것 같다. 다음 학기에는 이른바 '카이티'라 불리우는 학위논문 프리젠테이션이 있고, 4학기에는 종합시험이 기다리고 있다. 수업은 꽤나 들은 편이지만, 3, 4학기에 각 한 과목씩 석사 비동일전공 보충과목을 들어야 하고, 박사과정에서 전공 3학점 한 과목도 들어야 한다. 이번 달은 쉽지 않은 일본어와의 일전으로 신체가 고뇌할 것 같다. 국제관계학 전공이 아닌, 다국어 전공으로서의 한 학기에도 다행히 석양이 지고 있다.
2011. 5. 14. 03:04

3주 전쯤인가, 고급한어 수업시간 대신 공청삼림원인가란 곳에 가서 억울하게 찍힌 사진 두 장 가운데 한 장이다. 아마 이 블로그에 올리는 세 번째 사진인 듯 싶다. 의도하진 않았는데 주위에 모두 우연히 우리 국제관계학원 유학생 동료들이다. 내 뒤에 보이지 않는 친구는 남자에게는 한 번도 웃어주지 않는 화인 말레이시아 친구, 우측으로 계속 화인 캄보디아 친구와 한국에 가서 한국어 좀 배우다 온 루마니아 친구이다. 유학생 동료로는 체코 아줌마 한 명, 미국 화교 형님 한 명 해서 두 명이 더 있는데 체코 아줌마는 좀 떨어져 앉아 있던 것 같고, 미국 화교 아저씨는 회사 일에 바쁜데다, 중국어 문제없는 관계로 수업은 늘 오지 않아 사진에 찍힐 기회가 없었다.

전체 24명 동기 가운데 6명의 유학생 분포인데, 화교나 화인 출신이 많은 관계로 나는 이 가운데 자칭 어학실력 4위이나 루마니아 친구가 나보다 말을 잘 한다는 이유로 중국친구들은 나를 서열 5위로 주저 앉히려고 한다. 앞으로 확고한 4위로 올라서는 것이 목표다. 뜬금없는 소리하며 사진 탑재~

2011. 5. 10. 01:07

학문을 하는 데 있어 '진지함'과 '성실'은 가장 필수적인 조건이자 덕목이다. 나는 비단 학문의 영역에만 이런 조건이 적용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일에 종사하든, 어떤 위치에 있든지 간에 삶은 이것과 유리되어서는 깨달음이나 행복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조건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부단한 타인과의 연계와 교류의 노력'이라는 사회적 차원의 조건이 반드시 호응되어야 한다.

다른 글을 읽다가, 또 생각을 하다 문득 이 부분에 다다랐다.  나는 어떨까 생각해 본다. 진지함은 있다고 해도 삶의 해학이 부족하고, 성실함과는 아직도 너무나 친하지 않다. 그리고 마지막 조건에는 아직도 가식을 채 거두지 못하는 것 같다. 부끄럽다고 쓰면 그 뿐인데 한참을 망설였다.   
2011. 5. 8. 03:45

지난 주 금요일부터 오늘까지 8일 동안 술을 마신 날을 헤아려 보니 5일을 술을 마셨다. 이런 일이 보통 많지는 않은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지난 주 금요일, 일요일에 친구들과 마셨던 술은 감기를 악화시켰고, 수요일 부터는 한국에서 손님들이 차례로 오면서 수, 금, 토요일을 마시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감기가 어느 정도 나았다. 술과 함께 감기가 술과 함께 감기가 달아난 셈이다. 

해야 할 일은 많은 요즘인데 오히려 더 게을러지는 것 같다. 해야 할 일은 해야 하지만, 그것에 연연해 하고 싶지는 않다. 일이란 게 삶의 전부도 아니고, 대부분 일을 하지 않음에서 오는 불안감일 따름이다. 게으를 때는 한없이 게으른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 내 평소의 생각이다. 

술을 마시고 들어오면 뭔가 항상 허전한 기분에 집에 와서 김치를 볶아서 렌지에 돌린 밥과 같이 마시면서 남은 와인도 홀짝 마셔댔다. 더 마시면 또 내일 하루종일 누워 있어야 할 것 같아 더 이상은 마시지 않기로 했다. 어제는 수업을 듣고, 수업을 하고 도서관에 좀 앉아 있다가 집에 일찌감치 오후 4~5시쯤 들어왔었는데 저녁을 먹으면서 미뤄두었던 '나는 가수다'를 보았다. 프로그램의 이런저런 외적인 얘기를 떠나 역시나 참 좋다란 생각을 했다. 마음을 울린다는 게 이런거지 뭐. 

 이소라의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란 노래는 그녀의 5집이 나왔을 시기에 음악에 너무 멀어져 있던 시기라 미처 알고 있지 못했던 곡이었는데,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무엇인가에는 늘 강력한 힘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겠더라. 노래를 듣고 나니 문득 너무 강렬하게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사랑하는 연인이 아니더라도, 부모님께 한 통 올릴 수도 있는 것이고 친한 벗에게도 한 통 쓸 수도 있으리라.

지난 연말에 이곳에서 연하장을 몇 통 쓴 기억 이외에 제대로 된 편지를 띄운 적이 꽤나 오래된 것 같다. 편지를 띄우는 여유와 설레임에 대해 너무 잘 알면서 너무도 쉽게 잊고 살았다. 난 여유가 없다란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언제나 여유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누구에게도 편지를 쓰진 못했지만, 엎드려 편지를 쓰면서 느꼈던 그 많은 감정들이 어제 오늘은 너무나 그리웠다.  



2011. 4. 20. 22:59

방금 한 중국사회 관련 기사를 보았다. 유선암으로 사망한 푸단대 강사와 관련된 뉴스다.
http://photo.media.daum.net/photogallery/foreign/world_0803/view.html?photoid=2892&newsid=20110420182529979&p=moneytoday

사실 나는 이 뉴스를 보기 전에 우리 반 반장이 돌린 전체 메일에서 그녀의 블로그에 들어갔었다.
그렇지만 뉴스를 보기 전에는 그 사람이 이 사람일지 미처 몰랐다.
http://blog.sina.com.cn/u/1904273792

해야 할 일이 많아서 그녀의 블로그 내용을 보지 않았다. 그저 투병일기가 시작된 시간을 좀 추산해 보고, 사망과 관련된 부고와 관련된 포스트의 댓글 수 정도를 보았을 뿐이다. 그녀는 그렇게 나에게는 한낱 가쉽거리일 뿐이다.
내 삶도 한낱 루머에 지나지 않을테고...
보아하니 힘들게 해외에서 공부하다 갓 돌아와 강사가 된 다음에 불치의 병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삶에서 우리는 무엇을 부여잡아야 하나 생각해 본다.
때로는 내가 신념을 가지고 걸어가는 길의 정당성에 대해 의심해 보기도 한다.
그래서 출발선과 달리 그 결과가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 된다면?

그렇다고 건강 잘 챙겨가며, 생활한다는 것도 힘든 세상이다.
운동을 싫어한다고 겉으로는 얘기하지만, 운동이 귀찮고 싫은 것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이다.
그렇다고 운동을 꼬박꼬박 챙겨서 하는 사람들은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일까.
그렇게 건강해서 그 어떤 것도 이 사회에 공헌할 수 없다면?
 
이 여자는 "살아 있는 것이 왕도"라는 표현을 블로그명으로 썼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살아 있는 것이 부질없을 때도, 죽는 것이 부질없을 때도 부지기수이다.

죽음과 관련하여
팔자가 그런 것이라는 동양적 사유방식이나
신이 갈 길을 정해주신 것이라는 서구적 사유방식에 대해
난 조소를 금할 수 없다.
언제나 비극은 '당사자'가 되는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난 결과나 과정보다도
어떤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오늘이 가고 있다.
더불어 평소와 달리 많았던 만남과 봄과의 조우와도
작별한다.  
2011. 4. 3. 05:55
2학기가 시작된 지 벌써 5주가 지났다. 이곳은 학기가 18~19주가 되기 때문에 아직 초반 정도에 불과하지만 6주가 지난 상해2공업대학 알바 때문에 그런지 개인적으로는 학기 중반은 더 보낸 듯한 피로감이 들고 있다. 각각 40분, 45분짜리 수업의 25시간이란 물리적 시간도 그저 편하게 넘길 수도 있노라고 당초 생각했었다. 그리고 한 학기 정도만 고생하면 다음 학기부터는 한 과목 더 맡기 때문에 수입도 늘어나는 한편, 이수에 필요한 학점이 꽤 줄어드는 상황이라 알바 때문에 많이 피곤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1. 그런데 두 가지 신체적 변화가 적잖이 신경이 쓰이고 있다. 하나는 지속적으로 몸에 달고 다녔던 갑상선 기능의 문제이다. 한국에 갔을 때만 하더라도 큰 변화 없노라는 의사선생의 처방도 있었음에도, 상하이에 들어오자 마자 빡쎈 활동 생활을 계속 하다보니 스스로만 느끼는 몸의 변화가 감지되는 것 같다. 살이 빠진 것 같다는 말을 몇 번 들어 오늘은 집에 오는 길에 월마트에 들러 체중계를 사서 체크해 봤지만, 오히려 2kg 정도가 늘어났다. 중국음식의 비중이 급격히 더 늘어난 것 이외에는 먹는 건 그냥 그랬는데 점차 기능저하증으로 옮겨가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계속 이렇게 피곤한 생활이 계속되면 흡연을 급격히 줄이는 것에 대한 진지한 요구가 필요할 것 같다. 요즘은 공업대학에 다녀오는 월, 화 저녁 5시 무렵에는 거의 파김치라 집에 와서 하는 일이 쉬는 것 이외에는 거의 없어, 월요일 하루만이라도 도서관 가자는 계획도 한 번도 지키지 못했다. 몇 시간 활동하고 나면 전신의 근육이 흐물흐물해지면서 집중력이 자꾸 흩어지니 다른 일을 하는 것에도 쉬이 영향을 받는다. 그동안 워낙 바빠 이에 대해 생각할 틈 조차 별로 없었는데, 신체리듬을 개선하면서 공부에 더 박차를 가할 수 있는 환경을 다시 만들어야 할 것 같다. 3월에 한 일이라고는 학기 개강에 따른 여러 일정조정과 논문에 대한 편린들, 3권 정도의 서적을 일독한 것 이외에는 달리 없었다.


2. 그리고 무엇보다 걱정되는 한 가지는 왼쪽 정강이 부분의 뼈가 시리고 아픈 통증이 2주 넘게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렸을 적 화상을 입었던 부분이고, 통증을 느끼는 곳이 바로 이식수술을 미처 하지 않아 30대 이후 체중이 급격히 늘었음에도 살이 미처 붙지 않고 있는 부분이라는 데 신경이 거슬리고 있다. 살짝 늘어난 체중으로 인한 압력 때문에 통증을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개강 하면서 복단대 내에서는 웬만하면 걸어 다니고, 강의하는 그 곳에서는 계속 서 있 있다거나 아침 출근 시 몇 번 시내버스에서 자리가 없어 장시간 서서 가던 등의 복합적 발로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가만히 있으면 아픔을 느끼지 않고, 지속적으로 걸어다닐 때마다 통증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후자임이 틀림이 없는데 지금으로서는 해결책이 없다. 더 지속되는 걸 봐서 여기 있는 한국 정형외과 같은 곳엘 가서 검사를 받아야 겠다는 방안 이외에는.... 허참, 정강이 뼈까지 내 마음을 따르지 않으니 답답할 수 밖에.


3. 여튼 몸은 이렇지만, 첫 월급을 지난 주에 받았다. 어디에서 뭐가 잘못된 건지 생각보다 300원 정도가 많은 4,915위안 정도인데 이번 달에는 그쪽 직원 실수로 중국인으로 착각해 세금을 한 300원 넘게 떼어 갔다고 한다. 사실 몰랐으면 계속 이렇게 받고 그런가 보다 했을텐데 만약에 돌려주지 못한다면 앞으로라도 잘 나오게 해주겠다는 친절함이라도 있었으니. 가을 학기가 시작되기 전인 9월 초에는 3주 정도 계절 학기 비슷한 것을 2과목 하면서 짧은 기간에 적지 5,000위안 좀 넘게 수입이 있을 것 같고, 가을 학기부터는 맡는 학점이 13학점으로 늘어나 6,200위안이 넘는 고고소득(?)을 올리게 될 것 같다. 방학이 있어 총체적으로는 전부를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절반이 넘는 생활비는 이 덕분에 부담을 덜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앞으로 2년 정도는 꾸준히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6주 정도 되니 1,2학년 중국 학생들 45명의 이름을 다 외울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교수법이 약하니 적어도 흥미를 느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방법이 마땅치 않아 고민 중이다. G2라 추켜 세우는 중국이지만, 아직도 서민들의 삶은 팍팍하다. 아이들에게 물어보거나 여기 와 지내면서 얼핏 들은 것들을 종합해 보면 명문대 출신(국가중점대학) 정도는 되어야 대졸 초임 3,000위안(51만원 가량)다. 물론 소득에 맞춰 소비를 하는데다 부모나 조부모들이 도와주는 것들이 많으니 따지면 한국과 별반 다를 바 없지만, 여튼 빈부의 차는 더 심각해지고 있는 듯 싶다. 게다가 중국에 있는 한국사람들도 물가에 벌벌 떠는 정도가 되었고... 물론 안 그런 유학생들도 아직 많다.


4. 청명절 연휴기간이라 화요일까지 쉬게 되었다. 날씨도 다시 쌀쌀해져서 책 읽으면서 보낼까 한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는 같은 박사생들 중에 5~6명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무료로 한국어를 가르쳐 주기로 했다. 그동안 주로 연락하고 지내던 중국 친구는 4명 정도였는데, 덕분에 살짝 더 늘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건  두 학기 정도 정도 가르칠 생각이다. 그동안 좀 많이 내심 중국친구들의 사고의 깊이를 무시해 왔는데, 앞으로는 그러지 말고 좀 더 적극적으로 그들의 생각을 물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공부도 공부지만,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너무 쉽게 재단했던 것 같다. 할 일이 더 많아졌으니, 하나씩 지워가며 해야겠다. 상하이는 비가 내린다. 엊그제만 해도 20도 가까이 올라가더니 종잡을수 없는 날씨다.           
2011. 3. 25. 05:03

2011년 봄학기 구매서적(주문완료)

* 중국어 저작 및 번역서
1. 国当代外交史(1949-2009) 22.80

2. 理解国际冲突:论与历(7) [平装] 小明 27.20

3. [平装] 灿荣 (作者), 26.20

4. 国际体系外交 [平装] 亚青 (作者), 32.50

5. 文化与国际:义国际关系理论研[平装] 亚青 ()

20.80

6. 国与边国:建新型[平装] 张蕴 () 39.20

7. 西方国际政治:(2) [平装] 王逸舟 (作者) 25.10

8. 坏世界:第一哲的政治哲 [平装] (作者) 26.90

9. 人的政治 [平装] (作者) 19.10

10. 国际政治 [平装] 阎学 (作者) 21.40

11. 王霸天下思想及 [平装] 阎学 (作者), (作者) 18.70

12. 国际政治的系 ·卡普 (作者), 薄智 () 22.90

13. 力制度文化(国际关系理论与方法究文集) 亚青 (作者) 31.10

14. 国际关系英国学:史、理论与国观 小明 (作者)  29.30

15. 国学者看世界5:国际安全卷 [平装] 阎学 (作者, ), () 36.00

16. 国学者看世界4:外交卷 (作者, ), () 31.50

17. 国学者看世界7:世界经济 宇燕 (作者), () 32.20

18. 国学者看世界3:国战略卷 灿荣 (作者, ), () 34.10

19. 国际政治的社(1) 亚历山大· (Ralph D.Mershon) (作者), 亚青 () 32.10

20. 永久和平 伊曼努尔·康德 (作者), 何兆武 () 7.40

21. 国际与国内政治 伯特·欧汉 (Robet O. Keohane) (), ·米尔 (Helen V. Milner) (), (), 董素 () 13.20

22. 家安全的文化:世界政治中的与认 彼得·斯坦 (Peter J.katzenstein) () 25.70



 * 영어 원서 영인본(북경대학출판사)

23. 世界政治中的战争与变 [平装] 伯特·吉尔平 (作者) 20.00

24. 国际关系理论论争:现实义与新自由主的挑 Jr,,美 Charles W.Kegley ()
31.10

25 . 无政府社:世界政治秩序(3) 赫德利·布尔 (作者) 30.40

26. 现实及其批判 伯特·欧汉 (作者) 31.60

27. 国际政治选读 Robert J.Art (作者), Robert Jervis (作者) 45.50

28. 家安全的文化:世界政治中的与认 彼得·斯垣 (Peter J.Katzenstein) ()
 
43.50
29. 国际政治理  肯尼思·沃尔 (Kenneth N. Watlz) (作者) 20.00
30.
国际政治的社 alexander wendt 46yuan
31.
政治 hans j.morgenthau 75yuan
32.
理解国际冲突:论与历 joseph s. nye,jr. 28yuan
33.
相互依 robert o. keohane; joseph s. nye 36yuan

합계: 1,042.3

서적구매목록(2011년 가을, 교재비 지급 받으면 구매 예정)

 

* 중국어 저작 및 번역서

1. 西方政治思想史(5) [精装] 徐大同 (作者) 178.30

2. 崛起:论与政策的[平装] 伯特· (作者), () 30.10

3. 代世界体系(1):16本主义农业与欧洲世界经济体的起源 [平装] 伊曼·沃勒斯坦(Immanuel Wallerstein) (作者), 罗荣 (), () 22.50

4. 代世界体系(2) [平装] 沃勒斯坦 (Wallerstein) 22.60

5. 代世界体系(3) 22.70

6.21纪国际关系列材·代外交 [平装] 志敏 27.00

7.外交导论 志敏 11.80

8. 双边外交 [平装] (), 13.40

9. 国际政治 [平装] 梁守德 (作者), 银娴 (作者) 11.90

10. 东亚合作:2009 [平装] 亚青 () 41.00

11. 国对:顾与思考(1949-2009) [平装] 张蕴 (作者, ) 37.70

12. 崛起及其 [平装] 阎学 (作者), 孙学 (作者) 17.90

13. 政治的悲 ·米尔斯海默 (作者), 唐小松 (), 义桅 () 33.00

14 . 全球政治经济学:读国际经济秩序 伯特·吉尔平(Gilpin.R.) (作者), 宇光 (), () 23.30

15. 大外交 [平装] 亨利·基辛格 (), 淑馨 () 31.80

16. 体系与国际冲突:国际武装冲突中的支持行1945-1988 亚青 (作者) 23.10

17. 现当国际关系史 [平装] 殷弘 25.70

18.国际关全球政治:21纪国际关学导论 正樑 [平装] 23.40

19. 全球化代的国际关(2) [平装] 正樑 23.70

20. 西方国际关系理论经导读 亚青 (作者, ) 25.50

 

* 영어 원서 영인본(북경대학 출판사)

21. 从战争到和平:国际政治中的重大 [平装] CHARLES W.KEGLEY (作者), GREGORY A.RAYMOND (作者) 28.80

22. 世界政治:趋势与变(11)(影印版) 尔斯·格利 (作者) 50.10

23.国际政治经济学:与财富的斗(影印版) - Thomas D.Lairson; 平装 44.00

24. 世界政治:选择的菜 [平装] Bruce Russett (作者), Harvey Starr (作者), David Kinsella (作者)
52.80

 

합계: 822.1

*2학기에는 1학기에 절판으로 미처 사지 못한 '중국학자가 본 세계'시리즈 1,2,6,8권과 기타 그때 가서 다시 필요한 책들로 해서 1,400위안 정도 구매.

* 1
학기에는 경제학원 앞 서점에서 보았던 로버트 콕스의 영어원서 영인본도 추가로 구매할 것

*
학교에서 지원받는 교재비(2 6개월 4,500위안-상해시 매학기400위안, 국제관계학원 500위안) 130~150권의 책을 구매할 수 있을 것임.

 

2011. 3. 20. 21:58

据作者的建请,附件删掉。希迎不好意思。


같은 학번이지만, 한 학기 먼저 입학한 친구의 논문제안서를 첨부한다. 지도교수가 심사위원으로 들어가서 한 번 참석하라고 해서 갔었는데 미리 시간이 공표되질 않아, 방청객은 오로지 나 혼자였다. 발표자 2명과 심사위원 뿐이라 좀 뻘쭘하기도 했다는...
현재 우리 학번에서 미래가 가장 촉망받는다는 학생으로 다음 학기에 미국에 1년 간 연수를 다녀올 계획이라 한다.
2011. 3. 12. 03:21
개강하고 나서는 평일 중 그나마 시간이 여유로운 날이 수요일과 금요일이다. 수요일에는 거의 도서관에서 박혀 있다 시피 했고, 오늘은 오전에 타과 수업을 듣고 도서관에 갔다.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가 시장을 한 번 봐서 비축해야겠다는 핑계에 어깨에는 백팩을 메고 한 손에는 두부, 마늘, 고추, 양파, 당근, 양배추, 감자, 애호박 등의 시장봉지를 들고 남쪽 교정에서 북쪽 교정을 가로질러 집을 향해 안행하였다. 후배 녀석이 겨울방학이 시작될 무렵 내 자전거를 빌려 갔다가 잃어버린 다음부터는 주로 버스를 탔는데 개강하고 나서부터는 웬만하면 걸어다니고 있다. 기존의 숨쉬기 운동 에 걷기운동까지 병행하겠다는 참신한 생각의 발로이다. 난 분명 장수할 거다. 15도까지 오르는 양광에 모처럼의 여유로움까지 겹쳐 편하기 그지없다. 오는 길에 종종 마주치는 알바니아 여학생과 가벼운 인사를 하고는 북구 학생기숙사에 접어드니 12시 40분 남짓. 점심시간이 한창 지났을 무렵이라 입구 언저리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한산하다. 모두들 오침을 즐기러 들어가 있나 보다.


다시 자박자박 발걸음을 재촉하다 집앞의 음료가게 앞에 멈춘다. "오랜만에 내 사랑까진 아니지만 오촌 정도는 되는 시원한 쩐주 나이차를 한 잔 마셔볼까." 절대 연인 사이가 아니다 주장하는 남녀가 운영하는 가게인데 실로 오랜만에 본다는 남자의 인사에 가벼운 농을 섞다 이내 음료수를 받아 들고 적지 않은 크기의 빨대에 입을 갖다 대었다. "아~맛있다." 약간의 돈만 있어도 이렇게 즐거워질 수 있는데 더 많은 사람들은 얼마나 더 즐거울까란 퀘스천마크를 달았다 곧 엑스표를 친다. 대동사회의 전단계인 '소강사회'를 지향하고 있는 현지에서 난 제3자의 '소강개인' 일 뿐이다. 집에 들어와 컴퓨터를 켜고는 며칠 미뤄두었던 기사들을 본다. 일명 '상하이 스캔들'은 언론의 좋은 먹잇감이 되어 한창 포식하고 있는 중인 듯 싶다. 누가 살아남을 지 흥미진진할 것 까지도 없다. 이런 작자들이 상해체류 한국의 라오바이싱들에게 얼마나 민폐를 끼쳤을까 사뭇 걱정될 뿐이다. 그것보다도 일본에서 큰 재난이 발생한 것에 눈길이 갔다. 아무리 일본이 싫다고 해도 다수의 선량한 일본인 희생이 위선적인 전자의 인물들보다는 더 안타까운 것은 인지상정이다.


밀린 잠을 보충하기 위해 낮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그 좋던 날씨를 바람이 한창 망쳐놓고 있는 중이다. 상하이 날씨는 언제나 이 몹쓸 바람이 망쳐 놓기 일쑤지만 어째 오늘의 바람은 저 열도로부터 불어오는 것은 아닐까 싶다. 천하의 안정은 정말로 소강사회의 달성에서 오는 것일까. 이 물음에는 동그라미를 치고 점을 몇 개 더 찍는다. 중국어가 어설프게 늘었다는 걸 모르고 있다가 친구들의 칭찬에 으쓱해져 다시 퇴행하고 있는 중이다. 홀로 '자가 중국어 조작단'의 단장이자 일원으로 할동한다. 이것은 개인의 공식적 외교활동이자 정보누설이다. 나를 욕하는 자 감히 인민폐를 던져라!        
2011. 3. 3. 01:06
월요일(周一): 오전 9시 55분 - 11시 35분(专业汉语, 2学分,复旦大学 国际关系学院 留学生 硕士班)
          오후 1시 - 2시 25분(跨文化交际, 2학점, 上海第二工业大学 韩语系)
          오후 2시 40분-오후 4시 5분(韩语商贸写作, 2学分, 上海第二工业大学 韩语系)
          × 晚上在图书馆(到10点)
화요일(周二): 오전 8시-9시 25분(初级韩语听力, 2学分, 上海第二工业大学 韩语系)
           오후 1시-오후 2시 25분(初级韩语口语, 2学分, 上海第二工业大学 韩语系)

수요일(周三): 오전 8시 30분 - 11시 50분(高级汉语, 4学分, 复旦大学 博士生 留学生班)
           × 下午和晚上在图书馆(到10点)

목요일(周四): 오전 8시 - 11시 30분(日语, 2学分, 复旦大学 外文学院)
           오후 1시 30분 - 오후 4시 (比较国际政治理论, 3学分, 复旦大学 国际关系学院) 
           ×晚上在图书馆 (到10点)

금요일(周五): 오전 8시-9시 40분(韩国语文论著选读, 2学分, 复旦大学 韩语系)
           오전 10시 25분-11시 50분(中级韩语口语, 2学分, 上海第二工业大学 韩语系)
           ×下午和晚上在图书馆

토요일(周六): 在家里看书或休息
일요일(周日): 在家里看书或休息
한국에서 한 20일간 푹 쉬고, 2월 19일 토요일에 상하이로 다시 들어왔다. 위에서 밝혔듯이 지난 주부터는 상해제2공업대학의 한국어과로 강의를 나가게 되었다. 여기 있는 구직사이트에 이력서 올려뒀던 것을 이쪽 과 조선족 선생님이 보고 연락을 줘서 하게 된 일인데, 한 달에 4,500위안(80만원 정도?) 받기로 해서 생활에 꽤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달리 한국어교사양성과정을 이수한 적도 없어 한 마디로 '야매'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어쨌든 어린 중국 학생들을 만나게 되어 좀 색다른 느낌이다. 가급적이면 중국어 안 쓰려고 하는데 1학년은 너무 못 알아 들어, 조금씩 섞어 쓰고 있는데 과가 개설된 지 이제 2년 되었고, 한국인 강사는 처음 고용해서 그런지 아이들도 나를 좀 신기해 하는 분위기다. 1학년은 20명, 2학년은 24명 정도 되는데 앞으로 이 학생들과도 잘 지냈으면 좋겠다. 덕분에 중국어도 늘고 한국어 맞춤법도 좀 늘게 될 것 같다. 다만 화요일에 8시 수업을 맞춰 가려면 새벽 5시 50분에 일어나서 학교 통근버스를 타러 가야 하는 게 2주 차가 되었음에도 좀 힘에 부친다.


이번 주부터는 복단대학도 개강하였다. 수, 목 오전 중국어와 일본어수업은 지난 학기의 연장선상에서 들어야 하는 것이라 달라진 것도 없고, 전공은 고작 한 과목 듣고, 또 전공외국어로 영어를 선택해서 들어야 하는데 영어권에서 온 유학생 혹은 영문과를 나온 출신의 인원이 많은 학과 특성상 개인적으로는 불리한 상황인데다 영어가 중국어보다 형편없는 상황이니 뭐 잘못하면 한 학기 내내 영어와 일본어에 치여 살게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다. 그리고 내일 사무실 가서 확인해 봐야 하는 것이지만, 이전 선배 중에 유학생 박사는 전공중국어라 해서 중문과 쪽에 가서 시험만 보면 2학점을 무난히 취득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한다. 이 시험도 외워서 봐야 하는 분량이 만만치는 않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영어보다는 좀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이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跨一级‘라 해서 소속 단과대학원 이외의 타 단과대학원에 가서 2학점을 들어야 하는 규정이 있는지라 이 과목도 처리해야 하는데 위 몇 과목 중에 선택할 생각이다. 일단 한 번씩 다 들어가봐야 결정할 수 있을 듯.


여튼 이번 학기는 시간으로 따지면 20시간 넘게 강의하거나 수업을 들어야 하는 일정이다. 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한데, 여튼 이번 학기 지나면 석사 보충 과목을 3학기, 4학기에 걸쳐 3학점짜리 한 과목씩 듣는 것과 박사 과목 중에 적당한 3학점 과목을 찾아 이수하면 일단 수업이수에 필요한 학점은 거의 취득할 수 있을 듯 싶다. 그리고 패스과목으로 학교에서 자주 열리는 특강에 참석해서 나중에 무슨 페이퍼 같은 걸 내야 하는 거 '학술실천'이라는 2학점, 인턴 비슷하게 뭔가 해서 취득해야 하는 '사회실천' 2학점이 또 있는데 이것도 중국친구들에게 도움을 좀 받아서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다음 학기인 3학기에는 논문 발제를 해야 하고, 4학기인 내년에는 종합시험이 예정되어 있다. 이 기간에 학교에서 요구하는 학술논문 3편도 마무리지어야 한다. 이번학기 말 혹은 늦어도 방학 안에는 논문주제도 확정을 봐야 하는데 이번 학기 일정이 너무 빠듯해서 이에 대한 생각을 확대해 나갈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날 지 좀 걱정이 된다.


아무튼 이번 학기에는 저녁형 인간이 아침형 인간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그닥 원치 않는 일을 해야 하고, 또 여러 가지 일정상 체력에 좀 문제가 생기지 않았으면 바란다. 아울러 무엇보다도 책 읽을 시간을 충분히 뽑을 수 있을 지 저어된다. 여튼 아직 시간이 날 때 뭐 이렇게 살고 있노라는 이야기 하려는 것이 오늘의 포스팅 목적이다. 한국 갔을 때 반겨준 지인들에게 인사도 하고 싶었고...


여기 오기 전에 염색을 했는데, 뭐 젊어보였으면 하는 의도보다는 친한 대학 후배가 일본 현지업소에서 4년간 절차탁마한 실력으로 미용실도 개업한데다, 새치가 유난히 더 많아져 흰머리를 좀 감춰보고자 했는데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나이는 이제 감출 수 없는 것 같다. 이러면서 늙어가고 있다.
2011. 1. 15. 05:37
1. 학사일정상 방학은 다음 주말부터이지만, 일단 개인적으로는 어제 오전 시험을 보고 나서부터는 방학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다만 어제 본 일본어시험(국제관계 박사생은 의무적으로 제2외국어 2학점을 1년 36주 동안 144시간을 이수해야 함.)이 교양처럼 여겨져 평소 공부를 꾸준히 하지 않고 만만해 하다가, 200페이지가 넘는 어학분량을 단기간에 하려다 실패했다고 봐야 할 정도로 죽을 써서 2월 말 재시험 대상자로 선정될까 싶어 일주일 동안 마냥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다. 그저 재시험대상자로 메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박사과정에 어학을 이렇게 의무적으로 하게 될 줄도 몰랐고, 나이 탓으로만 돌리기에도 못내 부끄럽다.


2. 시험이 끝나고 한국에서 온 손님들이 있어 그들을 데리고 상해 일일투어를 하고, 야간에 시간착오로 고속철도를 놓쳐 그들을 부탁한 친구를 만나기 위해 소주까지 헤이처(불법영업승용차)를 타고 들어갔다가 오늘 저녁에서야 돌아오게 되었다. 벌써 이런 식으로 소주에 다녀온 것이 두 번째이고, 뭐 관광은 하지도 않고 한창 잘 나간다는 소주 개발구만 신나게 돌다 온 것이다. 여기 온 이래 한국에서 온 지인 혹은 소개받아 만나게 된 사람들만 벌써 5차례다. 그 중 알바 비스무레한 것이 2차례 였지만 덕분에 평소 먹을 수 없는 비싼 상하이 본방요리들은 잘 먹고 다니는 것 같다. 소주에 있던 오늘 오후, 피자헛에서 우연하게 재발견하게 된 음악이다. 기분에 따라 또 시점에 따라 정말 다양하게 다가오는 게 음악인 것 같다. 심정이 편한 것도 아니었는데, 이런 흥에 겨운 음악이 귀에 착 감기는 것은 스스로 즐거워지고 싶었다는 잠재된 욕구 때문이었을까.
 
Joanna Wang - For No Reason

3. 막상 방학은 시작했지만 다음 주까지 기한이 정해진 텀페이퍼를 제출하려면 다시 준비를 해야 하겠고, 나머지 한 과목은 같이 해버릴까 아니면 원래대로 정해진 다음 학기 개강(2월 25일-여긴 성적입력기한이 새 학기 직전이라 보통 논문을 방학이 끝나는 무렵에 제출하는 게 관행이다.)전까지 할까 고민중이다. 여튼 한 과목 논문이 정리되면 이번 한국행에 대한 최종결정도 내릴려고 한다. 가서 해야 할 일들은 많지 않지만, 여기 있는 5개월 동안 몸의 변화도 약간 있는 것 같아 좀 점검을 해봐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여름보다는 긴 설 연휴 때문에 옴짝달짝 할 수 없는 이 곳에서 버티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도 들고....


4. 밤에 돌아와 밀린 인터넷 질도 좀 하고 오랜만에 내 블로그를 자기 검열하다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부정기적이지만 두 번 이상 댓글을 남겨주었던 얼굴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궁금증이다. 그 중 한동안 메일을 보내주셔서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들도 있고, 아직도 잊지 않고 방문해 주시는 분들도 있는 듯 싶고, 또 자연스럽게(?) 소식이 끊긴 사람들도 있다. 최근에는 복단대 검색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꽤 늘어난 추세지만, 역시나 아직도 가장 많은 검색어는 음악관련이다. 초창기에는 1일 방문자가 3,000명이 넘어 좀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그 이후 100명 이후로 줄더니 이제는 50명 이내로 줄고 있어 더 안정감이 들기는 한다. 얘기가 갑자기 삼천포로 빠지려고 하는데 여튼 그들 아니, 정확히 얘기하자면 그녀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냥 무탈하게 잘 지내고들 있으신가 인사를 여쭙고 싶다. 이거 팬 관리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555,555명이 블로그를 찾아올 것으로 예상되는 어느 여름 가을날에 이벤트는 없다. 그냥 내가 더 잘 사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고자 한다.  


5. 이틀만 있으면 상하이에서 체류한 지도 만5개월이 된다. 그새 한 한기가 끝나가고, 생활에 대한 적응은 사실 일찌감치 마쳤다. 아직 적응 못한 것은 버벅대는 중국어, 전공공부와 논문준비, 외로움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봄이 오기 전에 이것들을 정복하겠다 장담하진 않겠다. 걍 싸워서 지지 않을 정도로는 단단해질 것이다. 2년이 다 되어가는 이 글을 보면서 더욱 부끄러워졌지만... http://zzacnoon.tistory.com/397 추위야 물럿거랏~ 나 적응 좀 할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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