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thryn Williams - Wanting and Waiting (Quickening, 2010)
Kathryn Williams - Flicker
두 번째, 나를 둘러싼 관계의 총체이다. 나를 중심으로 한 모든 관계도에 대한 복기. 의도와 관계없이 얼마나 상처되는 말을 던져왔던가, 그리고 난 어떤 것에 상처를 받았던가. 나이를 먹는 것의 고통은 해마다 새로운 인연을 만나지만 그 관계의 벼리를 엮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극히 적다는 것에 있다. 그만큼 내 자신이 탄력적이지 못하고, 고형화되었기 때문이다.
전자는 '새해'가 있기에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문제라지만, 후자는 다시 돌이키기 힘든 것이다. 또한 후자는 전자에 의해 그 성장이 부단히 침범당하기 일쑤이다. 때문에 쓸쓸한 것은 아닐까란 생각을 해봤다. 2010년이 나를 떠나서가 아닌, 내가 이 해를 떠나가서 자못 안타깝다.
한동안 쓰지 않았던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예정되었던 기타레슨이 갑자기 취소되면서 연습부족으로 못내 답답했던 마음의 긴장이 다소 풀어졌으나, 넘쳐나는 시간이 문제였다. 그래도 까짓 것 시작된 봄인데 무엇을 한들 어떠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의 불편했던 마음이, 그리고 봄을 맞이하여 정리되지 않았던 시간들을 차곡차곡 글로 채우고 싶다며 스스로를 이끌었다.
몇 시간이 지나고 컴퓨터 앞에 자리잡은 이 밤,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을 먹지 않는 내게는 저녁이나 다를 바 없는 야식을 차려 먹고 자리에 앉았다. 담배를 몇 대 물어 피웠고, 그새 요거트를 먹으며 마감뉴스를 보고 EBS스페이스공감의 공연을 잠시 봤다. 잠시 창을 열었다. 그나마 지금 이 시각에는 정말 시기에 적합한 봄밤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설마 계속 그러진 않겠지만은 어제 오늘과 예보된 내일 낮의 날씨는 이미 5월이나 다름없다. 긴 겨울, 사람들이 그토록 그리던 순간을 너무도 순식간에 이 녀석은 가져와 버렸다. 내가 다니는 곳에서는 아직 제대로 꽃구경을 해 본적도 없는데 도처에는 꽃이 만개했다는 소식 뿐이다. 앗~하는 사이에 수없는 밤을 보내며 기다려 온 봄을 보내고 싶진 않다.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풀며 뭔가 정리하고 싶었다라는 마음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그만 두기로 했다. 왜 그런 밤이 있지 않은가. 치렁치렁 늘어 놓으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꽃피우고 싶었지만 문득 모든 게 무의미해지는 그런 밤 말이다. 자고로 이런 시기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쳐봐야 쓸데없는 짓이다. 아침에는 거리에 오가는 젊음을 만끽하고, 낮에는 지인들과 도란도란 이야기의 꽃을 피워야 한다. 마지막으로 저녁에는 명멸하는 밤하늘을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 밖의 일들은 미처 겨울을 벗어나지 못한 육신의 미련과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만 자판치는 것을 멈춘다. 멈춰야 할 때, 가야할 때가 좀 더 명확해지는 서른 다섯이 되었으면 한다. 허나 그럴 순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