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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復旦大學 生活과 工夫'에 해당되는 글 77건
2015. 3. 18. 16:12

대학 시간강사를 하다가 이번 학기 강의 미배정으로 실업급여를 신청하게 되었고, 오늘 교육(3월 18일)을 받고 3월 11일부터 오늘까지 우선 8일간의 실업급여를 내일 날짜로 지급받고, 이후 28일마다 4개월(30세 이상이라 3개월)을 지급받게 된다. 기본적으로 이같은 실직으로 실업급여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강사의 경우 계약기간이 끝나는 방학기간에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대다수의 강사들이 모르고 있기 때문에 이를 위해 기록을 남긴다. 앞으로 시스템의 변화나 고용센터 지역에 따라 아래 소개되는 내용이 다소 상이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시기 바란다. 



1. 시간강사 실업급여 대상: 고용보험 180일 이상 가입


1) 대학강사(4년제 기준)는 통상 15주나 16주 강의이기 때문에 한 학기 강의만으로는 실업급여 대상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최소 2학기 정도의 강의를 해야 실업급여 대상이 된다. 이 점은 신청 직전 고용보험 전국콜센터에 전화해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2) 본인이 출강하는 대학에서 지급되는 강사료 중에 고용보험이 납부되고 있는지 여부를 미리 확인한다. 참고로 두 개 이상의 학교에 출강하는 경우 고용보험이 이중납부되는 경우가 많은데 강사의 보험료는 매달 4,000~5,000원 수준이기 때문에 1년에 30,000~40,000원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고용보험 이중납부는 2~3년에 한 번씩 따로 청구하여 환불받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나도 이 부분은 아직 해보질 못해서 좀 더 알아봐야 하지만 센터 방문시 들었던 이야기라 생각나 적어둔다. 



2. 유선상으로 이런 절차를 마친 다음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나의 경험을 토대로 적는 것이 실질적인 도움이 될듯 싶다.


1) 작년 1년간 두 학교에 강의를 나갔다. 한 곳은 국립대, 한 곳은 사립대이다. 작년 2학기 강사계약서를 보면 국립대는 2015년 2월 28일까지를 계약기간으로 명시(급여가 지급되지 않는 방학까지 포함)해 놓았고, 사립대는 2014년 12월 31일까지로 되어 있었다. 



2) 급여가 지급되지 않는 방학이 인정되지 않을거라 판단해 1월 초 대전고용센터를 방문했으나 보기좋게 거절당함. 이유는 국립대 계약기간이 2월 말까지로 되어 있었다는 점 때문이다.



3) 따라서 강사들은 본인이 출강하는 학교들의 모든 계약서를 봐서 계약기간이 언제 종료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운이 좋아 출강대학 모두 같은 날짜에 계약이 종료된다면 보다 빠른 신청이 가능할 것이다. 만약 나처럼 국립대 강의를 하게 된다면 특히 이 계약기간을 살펴서 내가 출강하던 학교처럼 방학까지 계약기간을 포함한다면 방학기간을 이용한 실업급여 신청이 불가능할 수 있다. 요컨대 12월 31일 종료 또는 6월 30일 종료가 실업급여 신청에 있어 최상이라 할 수 있다.



4) 방학을 이용한 실업급여 신청은 매년 겨울이나 여름방학 중 하나를 선택해 신청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아래 나의 구체적인 사례를 보시라.


3. 나의 실업급여 신청 사례


1) 계약기간이 상이한 문제 때문에 3월 초에 다시 방문하라는 소리를 듣고 2개월 가까이를 기다렸다가 3월 3일(화)에 고용센터에 재방문했다. 1월 달과 마찬가지로 초기상담을 받고, 작은 안내문(워크넷 가입 후 구직 등록 및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등 탑재, 고용보험 사이트에서 동영상강의 수강(약40~50분 정도로 기억됨)을 요구)을 받고 당일 저녁 이 두 가지를 실행했다.



2) 별도로 고용센터에서는 고용보험상실신고서와 이직확인서를 출강대학 전체에서 두 개 학기 모두 제출하도록 하라는 이야기를 해줬다. 이 고용보험상실신고서와 이직확인서는 학교 본부의 몫이다. 고용보험사이트에 미리 가입해서 보면 고용보험상실신고는 매 학기 계약기간 종료후 바로 학교에 의해 신고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만 이직확인서의 경우는 당사자가 요구할 때 보통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강사 본인이 대학본부 고용보험 담당자에게 직접 전화해 빠른 처리를 부탁하는 것이 좋다. 그러니까 매년 12월 31일이나 6월 30일 계약 종료 전 미리 학교에 전화해 고용보험상실신고서와 이직확인서(강조)를 고용센터에 제출해 줄 것을 요청하는 것이 좋다. 



3) 3월 3일(화) 첫 방문에 이어 3월 4일(수)에 두 번째 방문을 하게 되면 워크넷 구직등록과 동영상 수강여부를 확인 후 취업희망카드를 내게 발급하고, 2주 후(3월 18일 수)에 교육을 받으러 오라 했다. 이 기간 구직활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4) 3월 18일(수) 오늘 지정시간 오전 9시 20분에 센터에 세 번째 방문을 하니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신분증을 보여주고 몇 장의 종이를 배부받고 자리에 착석하니 한 시간 정도를 교육했다(대전의 경우이지만 타 지역은 이 시간이 좀 더 길어질 수 있다). 



5) 나의 경우 배부받은 종이 가운데 "고용보험수급자격증"이 있었는데 학교의 이직확인서 처리가 늦어져(학교에서는 3월 5일에 공문으로 처리했다고 하는데 고용보험 사이트에서 계속 조회가 되지 않았다. 통상 학교의 처리 후 1주일이면 고용보험사이트에서 이직확인서 처리여부를 조회할 수 있다. 하지만 내 경우 오늘 뭐가 문제였나 봤더니 학교 측 공문에서 연도 오타가 발생해 고용센터에서 처리를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또 별도로 처리할 게 많아서라고도 말한다. 따라서 이직확인서가 오늘 3차 방문 전 처리가 됐는지 여부를 온라인으로 확인해두는 것이 좋다.) 이 수급자격증에 구직급여 일액(쉽게 말해 일당)이 적혀 있질 않았다. 교육 중에 이런 사람들은 교육 종료 후 다시 담당 창구로 가서 확인을 받으라고 해 두 개 창구에 다시 가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없었다.



6) 여튼 처리가 됐는데 구직급여 일액 기준은 국립대와 사립대 가운데 강사료의 차이나 학점의 많고적음에 상관없이 월 총액이 많은 쪽인 사립대 쪽으로 되었다. 내 경우 국립대(3학점)와 사립대(6학점)의 월총액 강사료는 2만 몇 천원 정도 차이에 불과했는데 그래도 많은 쪽이 주사업장으로 잡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여튼 12월 31일로 계약이 종료된 사립대의 기준으로 구직급여일액이 정해지게 됐다.



7) 구직급여 일액은 최저임금으로 계산된다. 시간강사의 경우 25학점 이상을 하지 않는 한(25/5일=5시간) 그 이하의 학점은 모두 일 4시간 노동으로 계산된다. 따라서 일 4시간 최저임금 곱하기 30일 하면 본인이 수급하는 실업급여액이 된다. 



8) 나는 2014년 12월 31일 퇴직으로 잡혔기 때문에 2014년 최저임금 적용을 받았다. 2014년 최저임금을 찾아보니 5,210원이었다. 4시간으로 계산하니 1일 20,840원으로 나오는데 어찌된 일인지 고용보험 사이트에 등재된 구직급여일액은 20,088원이다. 한 달에 2만원 남짓 차이이다. 이를 왜 이렇게 책정이 되는지 전국콜센터로 전화해 다시 문의할 생각이다. 



9) 여튼 20,088원 곱하기 3을 해보자. 30일은 602,640원, 전체 수급기간 120일을 곱하면 2,410,560원이 나왔다. 



10) 만약 방학기간만을 이용해 수급을 받는다면 대충 올해 여름방학 시작을 기점으로 이렇게 계산해 보면 될 것 같다.  2015년 6월 30일(화) 출강대학 전체 계약종료이 종료되고 발빠르게 움직인다면 7월 1일(수) 1차 방문(방문 후 동영상 강의 시청 및 워크넷 구직등록), 7월 2일(목) 2차방문(확인 및 취업희망카드 수령), 7월 16일(목) 3차 방문(교육)이 될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받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아까 언급을 하지 못했는데 내 실업급여 계산 시작일은 3월 11일(수)이다. 보니까 2차 방문일 7일 후부터 계산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름방학 기간을 이용 신청한다면 7월 9일(목)부터 계산되어 7월분 23일, 8월분 31일을 합쳐 최대 54일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내 기준은 2014년 기준이기 때문에 올해 여름방학에 신청하시는 분은 2015년 최저임금을 적용받는다. 따라서 최저임금 5,580 곱하기 4시간을 하면 1일 22,320원, 54일 1,205,280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개개인에 따라 몇 만원의 오차가 있을 수 있다.) 겨울방학을 이용한다면 2월이 대체로 28일까지이므로 31일이 두 번인 여름방학이 며칠이라도 더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바로바로 발품을 팔아야 한다는 것이고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그만큼 실업급여지급일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11) 요컨대 겨울이든 여름이든 방학기간을 이용할 경우 적어도 50일 정도는 수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절차가 좀 번거롭더라도 방학기간 동안 1,100,000원 전후의 수급액을 받으려면 움직이는 것이 좋다. 110만원이 아쉽지 않은 강사라면 물론 그냥 실업급여 따위는 잊으시면 된다.



4. 기타


1) 방학기간에 소득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전업강사가 아닌 겸직을 하고 있으면 실업급여를 역시 받을 수 없고 계절학기를 하는 것도 불가하다. 하지만 계절학기가 끝나고 그 계약종료일부터 30일 정도는 또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 아래 사진을 보면 오늘이 1차 지급기간으로 우선 총 8일치가 지급이 된다. 오늘 수요일 센터에 방문하면 통상 내일(목)에 계좌에 입금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구직활동 요건 등은 사진을 참고하시라. 





3) 위 사진에서 보듯 여러 번 가야 하는데 인터넷 활용이 가능하다면 고용보험사이트에 공인인증서 등록을 해 2차, 3차의 경우 센터에 출석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구직활동을 인정받으면 된다. 이건 향후에 숙지해도 될 사항이니 아래 사진을 참고만 하시라. 




4) 내 경우 계약기간 상이 등으로 말미암아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몇 차례 고용센터에 찾아가는 일이 반복되어 무척 번거로웠다. 실업급여 신청 자체는 어렵지 않다. 다만 번거로움이 따를 뿐이다. 이런 번거로움이 타 강사의 경우 나처럼 많지 않기를 바란다.



5) 일주일에 6학점, 9학점, 12학점, 20학점을 해도 1일 4시간 밖에 인정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목도하면서 시간강사의 비참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강의에 필요한 준비시간 등도 앞으로 반영이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강사처우 개선이 사전에 이뤄져야 하지만 말이다. 교수가 되겠다고 공부를 시작한 강사들도 있겠고, 많이 벌지 못해도 최소한 연구와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라도 됐으면 하는 강사들도 있을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홀몸인 강사의 경우 월 200만원, 가족이 있는 경우 300만원 정도라도 좋으니 방학기간까지 꾸준하게 수입만 발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런 제도가 생긴다면 아마 더욱 더 소속 학과에 종속되는 상황도 연출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진퇴양난'의 강사시대를 살아간다. 



잠을 제대로 못자고 아침에 나가느라 정신이 혼미해 제대로 정리를 했는지 모르겠다. 이 점 양해하시기 바란다.

          

 

필수 사이트(신청 직전 가입해 두시는 게 좋다.): 

http://www.ei.go.kr

http://www.work.go.kr/

 


  

2015. 3. 12. 00:12

1. 시사 IN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2408


2.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1162108535&code=960205


3.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1/18/2015011801105.html


4. 조선비즈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1/30/2015013002601.html


5. 주간조선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342100025&ctcd=C09


6. 서울신문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50117016002


7. 서울경제 

http://economy.hankooki.com/lpage/entv/201501/e20150116170650118180.htm


8. 충청일보

http://www.ccdail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47193


9. 천지일보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274144


10. 머니투데이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5011618524785809&outlink=1


11. 이데일리

http://book.daum.net/media/detail.do?seq=70682210


12. 온북 tv

http://blog.naver.com/onbooktv/220252458220


2015. 1. 10. 22:35
두 번째 번역서이자 첫 번째 단독 번역인 책이 1년의 기다림 끝에 나왔다. 제목은 '북한이라는 수수께끼'이다. 이제 묵은 문제 하나를 해결했으니 내 삶을 지배하고 있는 논문을 해결해야 한다. 지치지 말자.

2013. 7. 7. 00:46

사람 사는 정이 다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지난달엔가 깍두기를 담고 나서 평상시 마주칠 때마다 늘 반갑게 인사해주는 중문과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친구가 생각나서 작은 통에 담아 건네준 적이 있다. 당시 그 친구가 카톡으로 나중에 통을 돌려주겠다고 한 다음에는 마무리하기 바빠 잊고 있었는데, 어제 갑자기 반찬통을 돌려주겠다고 연락이 왔다. 마침 밖에서 저녁을 먹고 있던 참이었고 속으로는 굳이 돌려주지 않아도 되는데 했는데, 무튼 기숙사로 돌아가서 연락하겠노라 답했다. 기숙사에 돌아와 다시 연락했더니 그 친구가 내 방으로 와 반찬통을 돌려주면서 몇 마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 친구는 이번에 석사를 졸업하고, 다음 학기에 이곳에서 다시 박사를 밟기로 예정이 되어 있고, 오늘 한국에 돌아가는 날이었다. 


얘기할 때 우선 반찬통이 담긴 작은 쇼핑 봉지를 냉장고 위에 올려두었다가, 조금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떠올라서 반찬통을 꺼냈더니 아래와 같은 글이 적힌 작은 엽서가 한 장 들어있었다. 그리고 통 안에는 작은 봉지에 포장된 비타C박스(이건 더 나중에 발견했다.)가 담겨 있었다. 3년간 잦은 접촉도 없었고, 따로 밥을 먹은 것도 최근에 한 번뿐이고, 입학 첫 학기 때와 지난겨울에 술자리 한 번같이 한 게 전부였다. 그저 기숙사 주변에서 마주칠 때마다 반갑게 인사하고 지냈는데, 그저 그런 작은 인사들이 늘 고마웠다. (6월부터는 이렇게 나를 대해준 몇몇 친구들에게 밥을 한 끼니씩 대접했다.) 


여하튼 나는 늘 선물보다는 이런 소소한 마음이 담긴 글귀가 더 좋다. 그래서 고마운 마음에 지난 3년간 석사과정에 대한 수고와 앞으로의 공부에 대한 덕담을 좀 길게 카톡으로 써서 보냈더니, 오늘 새벽 공항에 가는 버스 안이라면서 다음의 답장을 보내왔다. 


"오빠.... 긴 편지 너무 감사해요! 어제 너무 피곤해서 일찍 잠들어 지금 공항 가는 길에 글을 보게 되네요. 오빠를 너무 늦게 알게 된 것 같아 아쉽습니다. 오빠도 상해 올 일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주시구요, 또 뵐 날을 기다리고 있을께요:~) 잘 챙겨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분명 좋은 선생님이 되실꺼에요. 오빠 화이팅!!!"


사람 사이에는 늘 작은 위로와 감사의 표현이 서로 북돋아 주고, 따스하게 만든다. 지난날 꽤 날이 선 삶을 살면서 이런저런 사람들에게도 상처의 말을 한 적도 많았다. 같이 산다는 것은 알고 보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닌데, 우리는 그 방법을 잘 알면서도 쉽게 잊고 지낼 때가 많다. 또 능동적이고 낙관적이기보다는, 수동적이고 비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가 많다. 나는 괜찮은데 사람들에게 문제가 많다는 생각도 많이 한다. 그래서 또 어려울 때도 잦다. 


이 모두가 '용기'가 없어서라 생각한다.


"오늘은 좋지만, 내일은 괴로울 지도 모를 사람 사이의 관계." 쉬우면서도 어려운 이 문제는 평생 고민하더라도 다 풀지 못할 숙제이다. 







  

 

  

2013. 6. 27. 17:04
살면서 여러사람을 새로 만나 사귀게 되는데, 왜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새로 사람 사귀기 어렵다고 토로하는지 이제야 알겠다. 유학생활 첫 일 년은 한국사람들과의 접촉이 많지 않아서 나름 편하고 좋았는데, 기숙사로 들어오면서 알게 된 한국사람들과는 관계가 삐걱대는 경우가 몇 차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내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내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지나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일도 많았다. 그런데 앞으로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평소 몇 번 사람 겪어보고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주의여서, 인내하고 두고 보는 타입이었는데 그런 것들이 나 자신을 너무 해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제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일련의 접촉을 통해서 드는 내 생각과 느낌을 인정하고 믿기로 했다. 진정성이란 것도 아무한테나 보여줄 것이 아니다. 사람으로서 애정을 가지고 접근한다고 모두가 애정으로 답하지 않는다. 물론 무엇인가를 바라고 먼저 그런 행동을 했던 적은 없다. 연장자로서 가할 수 있는 압박을 주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 만큼, 연장자에 대한 대접을 바란 적도 없다.

다만 내게 애정을 주진 않을지라도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어떤 마지노선이란 걸 지켜줬으면 했다. 적당히 나를 이용해 무언가를 취하려는 영악한 사람들을 어쩔 수 없이 대하고 지켜보는 게 요즘은 너무나 힘겨운 일이다. 게다가 내가 그런 것에 속아 넘어갈 줄 것이라고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 더 답답하다. 그들이 살아온 자취와 흔적을 오롯이 인정해 주고 그들의 발언권을 위해 얼마든 싸워줄 수는 있지만, 더는 그런 사람들에게 나를 보여주고, 뭔가 장점을 발견하려고 애써 노력하는 일은 삼갈 것이다.


2013. 6. 27. 09:45


2013년 6월 중국에서 가장 널리 퍼지고 있는 인터넷 만화. 베이징영화학원 왕이린의 졸업작품. 


구소련의 변화가 있던 시기를 배경으로 중국에서의 '홍색의 이상'과 '참혹한 현실'을 간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前进,达瓦里希,Вперед, товарищи


2013. 6. 25. 17:32

한해 미리 보는 졸업사진이다. 강조하건대 먼저 졸업하는 몇 명의 친구들이 우겨서 별 수 없이 졸업 전에 졸업사진을 찍게 됐다. 내년에 기회가 되면 다시 찍을 생각이다. 근데 더워서 다시 찍을 수 있을 지 모르겠다. 학위복을 구입할 수 있다고 하여 아예 사둘까 고민중이다. 올해 새로 나온 신품이기도 하거니와 나중에 다시 대여 신청하는 것도 번거로울 듯 싶고... 130위안 정도면 구매 가능하다고 하는데.... 


# 국제관계학원 전체 사진 # 붉은색 학위복 오른쪽에서 12번 째 깨알같이 등장. (우측 기둥 두 개 사이)




1. 복단대의 명소 샹후이탕 앞 잔디밭에서




2. 나의 하오펑요우 충칭메이뉘 쉬야오



3. 석사반 후배 예슬이와 함께




4. 모자 한 번 쓰고 벗었더니 벌써 망가짐.




5. 시안 통쉐 캉신과 함께, 둘 다 자발적 졸업유예 신세




6. 복단대학 옛교문




7. 옛 교문 안에 보관된 항공기, 구국운동을 위해 기증된 것으로 기억됨




8. 복단대학 교훈과 함께




9.二逼를 묘사했다는 데 난 도무지 모르겠다.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각종 촬영방식 가운데 하나


 

10. 우리 반 여자 막내 산둥출신 쩐니와 함께



11. 난 이때부터 도저히 못참고 옷을 벗어 던져서;;; 복단대에서 가장 큰 건물 광화루 앞에서




12. 윈난성 쿤밍 출신 양즈샹과 함께 


13. 쉬야오 덕분에 알게된 국내정치 전공의 ??? 이름을 매번 잊어버린다. 오늘은 반드시 외워둬야지.




14. 역시 쉬야오 덕분에 알게 된 정치학과 리쭝런과 함께. 후난성 창샤 출신. 정문 안에서 찍은 사진으로 멀리 마오의 동상.



15. 현직 해방군 후난출신 샤오캉캉과 중국 인민대학 강사로 가게 된 현재 반장 줘시잉



16. 유학생 6인 가운데 유일한 졸업생 말레이아 화교출신 깐더쩡




17. 구어저우성 출신의 자푸창과 충칭 쉬야오



18. 두 처자와 함께 한 남자 막내 박사 상하이 저우레이. 



2013. 6. 18. 07:24
더위 때문에 그런 것인지 스트레스 때문인지 몰라도 근래 피곤한데 잠이 오지 않아 밤을 꼴딱 새는 경우가 많다. 이른 새벽 잠을 청하다가 다시 일어나 앉아 있다 시장기를 느껴 기숙사 1층 앞 대문(사거리 쪽에 위치한 기숙사 대문은 보안과 관리의 이유로 늘 닫혀 있고, 북문으로 우회해서 나가야 한다)밖에 있는 노점에 소리를 쳐 아침식사를 샀다.

중국의 아침대표음식인 油条와 茶叶蛋, 단맛의 이름을 모르는 饼(짠맛도 있다), 그리고 豆浆을 샀다. 이거 먹고 나면 잠이 좀 오려나.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중국의 아침은 무척 '진보적'이다. 대부분 외식을 하거나 전날 밖에서 사다 놓은 것들을 아침식사로 하니 가정주부가 고생할 일이 없다. 적어도 가사분담에 있어서만큼은 매우 진보적이고 선진적인 나라임이 틀림없다.




2013. 6. 10. 05:14
2013년 7월 12일 오후 1시: 푸둥-인천(OZ). 

한동안 귀국날짜를 두고 조율하다가 이렇게 결정하고 표를 끊었다. 2010년 8월 18일에 상하이에 발을 디뎠던 것이 엊그제 일 같다. 몇 달 전부터 귀국할 것이라고 말은 반복했지만, 막상 귀국날짜를 이렇게 받아 놓으니 감회가 새롭다. 그동안 1년에 한 번꼴로 세 차례 한국에 다녀왔지만, 이제는 모든 짐을 정리하고 보금자리도 없애야 한다. 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많고, 한국에 돌아가서도 할 일도 산적해 있다. 무언가를 정리하고 시작한다는 것이 이제 무섭지는 않은 나이지만, 무언가 모를 아쉬움은 늘 가득하다. 

지금의 마지막 학생 시절과 학생을 벗어날 앞으로의 어느 날에도 난 부단히 배회할 것이다. 부디 生活은 놓지 않기를 바란다.
** 우한(武汉)행으로 인하여 7월 18일 목요일 동시간대로 항공편 변경 **


2013. 4. 29. 23:02

중국인 친구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일요일 어제 항저우역에 도착하니 친구가 대신 보낸 친구가 우리를 마중나와 있었다. 그 차에 탑승해서 약 한 시간 가까이 달리니 푸양(富阳)이라는 현급시에 들어섰고, 이내 결혼식이 예정된 卡特兰酒店으로 갔다. 호텔 별관 1층식당에서 저녁 6시가 조금 넘자 식이 진행되었다. 사회에서부터 중간에 노래를 하는 가수까지 일괄적으로 결혼식진행회사에서 진행했다. 같이 갔던 내몽골 친구는 화동지역에서 식 중간에 행운권 추첨 등을 해서 선물과 현금을 주는 건 너무 상업화 된 게 아니냐 투덜대면서, 자기네 내몽골은 비교적 조용하게 치른다고 한다. 초반에 반지를 끼우고 부모님께 인사하는 것은 비슷하지만, 부모님도 역시 손님들처럼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며 진행되었고, 이 1차가 끝난 다음 잠시 쉬었다가 바로 이름없는 가수의 두 곡을 불렀다.

 

그러면서 한 시간이 좀 넘게 흘러갔는데, 중간중간에 밥을 다 먹은 손님들은 집에 돌아가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다 2막에서 행운권 추첨하고, 어린 여자아이가 노래 한 곡 부르고 바로 내 순서... 역시 예정됐던 신승훈의 I Believe... 중간에 좀 꼬이긴 했어도 아무도 모르니까 대충 끝냈는데, 노래 부르기 전 잠깐 얘기를 할 때 한국 어디서 왔느냐 묻고 그러더라. 역시 중국사람들은 서울 아니면 부산, 제주도 정도만 안다. 유일한 외국인 참석자다 보니 노래 부를 때 애기들이 모두 내 앞에 와서 달라붙고 날씨는 이상기온으로 더워서 땀흘리며 노래를 불렀다.

 

내 노래가 끝난 다음 신랑이 테이블 도는데 그때 빤랑들이 따라 붙더라. 나보고 해달라고 하더니 나는 빤랑 생략하고, 자리에 앉아 있을 때 다른 중국손님들이 따라준 고량주 마시고 나중에는 와인에 맥주까지... 오늘 올 때는 항저우역 화장실에서 매우 오랜만에 보는 정다운 화장실 풍경을 보고 토할 뻔하기도 했다. 잠도 일찍 깨서 하루종일 비몽사몽.

 

결혼식 자체는 중국 역시 서구화되어 특별할 것은 없었지만, 당일에 타이저우로 왕복 600킬로미터를 왕복하며 신부네집으로 신부를 모시러 갔다 왔다는 걸 보고 무척 피곤하겠거니 싶었다. 그리고 전통적인 모습을 보려면 당일에 조금 더 이른 시간에 오던가 아니면 이틀 전에 우리나라의 함 보내는 것과 비슷한 풍습이 있는 것 같던데 자세히 물어보진 못했다.

 

한 테이블에는 각 10명씩 착석해서 식사를 하고, 신랑신부 가족 친지 지인들로 각각 자리를 안배해 놓는다. 이 날은 총40테이블 정도였고, 경우에 따라서는 10테이블 정도로 간소하게 치르기도 한단다. 한 테이블에는 기본적으로 와인 한 병, 맥주 두 병, 마오타이 춘 한 병(마오타이 춘은 처음 마셔봤는데, 맛이 나쁘지 않았다.), 1.5L 탄산음료 두 개, 그리고 대충 15가지 정도의 음식이 차려진다. 그리고 담배 3갑을 깔아둔다. 중화 소프트의 가격은 한 갑에 한국돈 13,000원 가량이다. (중화 소프트갑 70위안,  경갑 40위안, 홍쐉시 이십 몇 위안 했던 걸로 기억.)  그리고 매 손님마다 쿠키와 사탕이 담긴 기프트박스를 하나씩 선물해준다. 그리고 사탕과 초콜릿 등이 담긴 작은 박스의 포장도 별도로 받았다. 

 

여튼 종합하면 한국의 결혼식처럼 뭔가 체면을 차리기 위한 점이 굉장히 강했는데, 돈 쓰는 면에서는 한국은 따라올 수가 없는 거 같다. 오죽하면 중국 남성들이 결혼하면 집 사고 결혼식 비용(신랑이 결혼식 비용 모두 부담) 대고 나면 알거지가 된다는 농담이 유행하겠는가.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음식. 절강지역에 가서 식사를 몇 번 해봤는데 채소음식 등은 정말 한국사람 입맛에 잘 맞더라. 어제 밤에 혼자 밖에 나가 사와 먹은 야식도 꽤 맛있었고, 조식도 맛났다. 내 입맛에는 역시 사천과 절강이 최고다. 사진으로 결혼식에 대한 대체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중국어린아이가 부른 축가 동영상이다. 마지막은 가사 보여달라는 아이들과 내가 함께 등장. ㅜㅜ

 

 

 

 

 

 

 

 

 

 

 

 

 

 

 

2013. 4. 9. 06:08

요즘은 보통 11시 조금 넘어서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어제는 중간에 볼 일도 좀 있고, 온수기 새로 설치해준다고 시끄러워 다른 곳으로 도망가고 그러느라 하던 작업이 더뎌져 이제서야 목표량을 겨우 맞췄다. 이번 주까진 해야 하는 작업이 있어 논문에 집중을 못했지만, 다음 주부터 앞으로 석 달 정도는 확실히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정규유학으로 중국에 다시 온 지도 어느덧 2년 8개월이 되었다. 처음에는 적응한다고 중국친구들 사귄다고 바빴고, 그 다음에는 학점 따느라 바빴고, 또 다른 무언가에 빠지다 보니 벌써 이렇게 되었다. 지난 학기까지는 일면 참으로 고달프고 지루했는데, 이번 학기를 끝으로 귀국을 한다고 생각하니 하루하루가 아쉬우면서 즐겁기도 하다. 한국 다녀온 지도 한 달 반 정도 되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일들이 좀 뒤로 밀린 것 말고는 그런대로 괜찮다. 

 

탁구도 일주일에 저녁 먹고 두 번씩 정기적으로 치고, 무료로 중국 본과생에게 한국어 과외도 하며 번역에 도움도 좀 받고 있다. 그리고 무리한 계획을 조정, 주말에 집안 일과 잡일을 모두 처리하도록 정리하니 생활이 많이 규칙적이 되었다. 물론 이게 얼마나 갈까 싶은 노파심은 늘 들지만, 꽤 오랜시간 망각하고 지냈던 열망들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좋다. 이런 거 진즉 깨달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번역에 논문에 한꺼번에 두 개를 다 해야 하니 오는 강박증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여튼 공부하는 맛이 살아나는 건 무척 반가운 일이다. 인터넷으로 뉴스보고, 정보 찾고 남들 살아가는 거 살피면서 참고도 하는 시간을 제하고, 하루에 6-8시간씩 순공부에만 몰두하는 건 좋은 일이다.

 

종전에는 연구자보다는 교육자로서의 삶에 더 관심이 많았는데, 요즘은 연구자로서의 삶에도 더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둘 다 잘하는 것이 매우 힘든 일이겠거니와, 아직 부족한 점들이 많아 가야 할 길이 멀다. 가다 보면 내가 잘 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겠지. 역시 공부는 몸으로 하는 것이 '진리'다. 근데 술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밖에 못 마시고, 이제 많이도 안 마시니 좀 괴롭고, 애청하는 드라마도 밀리니 짜증이 좀 나긴 한다. -.-; 에이. 모든 걸 만족시킬 순 없으니... 논문만 더 이상 막히고 밀리지 않는다면 내 모든 걸 양보하리. 

 

아래는 요즘 유행하는 어플이라길래 지난 주말에 한 번 도전해봤다. 참고로 등장인물은 강소성 우시에서 가정을 꾸리고 있는 대학 1년후배의 딸내미이다.

 

2013. 4. 5. 06:40

나는 위선(爲善)적인 사람에 속한다. 위선적으로 보이더라도 그 길이 내가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부단한 반성과 복기의 동기를 제공해 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나든 처음부터 되도록이면 가식없고 친절하게 사람을 대하는 편이다. 그래서 얼마 되지 않은 인연이라도 당연히 있어야 할 거리를 인위적으로 급격히 좁히는 타입이다. 이것에는 장단점이 있다. 장점으로는 나의 행위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열고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비록 그 확률은 높지 않지만, 이점에 주목하고 살아왔다. 반면, 단점은 '나'라는 사람은 당연히 그런 사람으로 상대방에게 자연스레 인식이 된다는 점이다. 게다가 내가 가진  성격 가운데 고치고 싶었던, 혹은 아직 고치지 못한 나쁜 성질과 성격이 상대에게 보다 더 확대되는 부작용이 있다. 쉽게 말해 백 번 잘해도 잘했던 것은 어느새 기억에서 사라지고, 열 번 잘못했던 직선적이고 싸가지 없는 말만 인상깊게 남는다는 것이다.

 

이런 것에 어느 정도 스스로의 인식은 있었지만, 보통은 상대도 쉽게 나의 외면과 더불어 내면도 봐줄 것이라는 근거없는 희망이 항상 뙤아리를 틀고 있었다. 그러나 근거가 없는 만큼, 어처구니없는 기대이기도 하다. 내가 내 생각과 편견에 사로잡혀 안으로 굽듯, 사람들도 각자의 생각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난 보통의 다른 사람에 비해 쉽게 이해받지 못하고, 대개는 성격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비춰지기 일쑤다. 물론 그 성격의 문제는 실재하고 실존한다. 그 치명적 결함에 꽤 오랜세월 번민하며 지내왔다. 내가 번민하는 만큼, 사람들은 그만큼 번민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매번 경악하게 된다.

 

가만 돌이켜보면 그건 번민하지 않는 자들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도 없는 문제다. 나처럼 비슷하게 할 것이라는 내 기대감이 더 큰 문제다. 이번에 이런 내 삶의 방식 때문에, 나는 나대로 상처 입었고, 상대는 상대대로 상처를 입는 일이 있었다. 상기한 부작용에 대해 뻔히 알면서도 묵과할 수 없었다. 그는 내가 비정기적으로 던진 말의 비수에 상처받은 나머지 평소의 내 선의는 깡그리 잊었고, 나는 얼마든지 다른 완곡한 방식을 선택할 수 있음에도 내 미성숙한 성정의 발톱을 다시금 드러내고 말았다. 

 

잠시 스스로를 위한 변호를 하자면, 내 편협한 눈에는 그의 열망과 욕심이 기실 공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사적인 수준의 것으로 보였다. 공공성을 지향하는 경우 나는 보통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언행을 본다. 지난 일 년간 나는 그의 모습 속에서 言과 行의 일치를 제대로 발견할 수 없었다. 물론 그가 나쁜 사람은 아니다. 지극히 정상적이고, 어느 정도 상식적이기도 하며, 책임감과 근면함이 있다. 처음 책을 내고 싶다고 하면서 그는 평가를 통해 자신이 발전해 나갈 계기를 마련한다는 이유를 댔다. 아울러 책을 통해 자신의 학술적, 사회적 목적을 위한 현실적 기반을 정초했으면 좋겠다는 이유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게 정말 그의 순수한 진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초창기 만난지 얼마 안되어 저녁을 먹고 기숙사로 돌아오던 어느날 저녁, 책을 내는 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을 때 내 평소 생각을 얘기하며, 기왕 한다면 좋은 번역서를 먼저 내면 어떻겠냐는 아낌없는 조언도 했었다. 꽤 시간이 흐른 뒤 서로의 오가는 인연 속에서 알게 된 출판사에서 먼저 제안이 왔다고 했지만, 당초 먼저 논문을 증정한 건 그였다. 얼마든지 논문을 돌릴 수도 있다. 그러나 상식적인 수준에서 한 두 번 만난 사람한테 논문을 주지는 않는다. 공부에 대한 갈구 역시 다양한 방법으로 얼마든지 표출할 수 있다. 나이의 많고적음을 떠나 적어도 내 눈에는 그 행위가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열망과 명예욕으로 가득해 보였다. 참고로 난 그 논문을 한참 후에야 받았다. 처음에는 첫 책을 내는 것이니, 얼마든지 그럴 수 있겠거니 이해하려고 노력도 했고, 완곡한 표현도 했었다. 이때만 하더라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애정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계약을 했고, 집필에 들어간 지 오래였다. 그의 순수한 진심(?)은 사라지고, 자신의 이름 석자가 박힐 책에만 모든 신경이 경사되어 있었다. 천진하게 책 한 권이 자신의 모든 난관을 돌파해 줄 것이라 믿었던 것일까. 애정은 점차 실망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내 화법은 점차 직선적이고 날카롭게 변해갔다. 실망으로 바뀌니 모든 게 마음에 들리가 없었다. 그가 많이 배우기 위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며 여기저기 다니는 것 역시 일종의 정치적인 목적달성을 위한 행동으로 보였다. 그래도 한동안 느슨한 관계는 유지됐고, 모든 것이 결국 이번에 폭발하고 말았다. 여기까지가 나만을 위한 변명이다.

 

며칠 전 페북에서 먼저 다른 문제로 댓글이 오갔다. 당초 평소 하던 시시콜콜한 입씨름의 연장이었다. 거기까지 끝났으면 아마 별다른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끼는 동생이라면서 내 잘못을 따지고 드는 사람이 나타났다. 겉으로 괜찮다고 했지만 불편했다. 두 사람의 문제라서 가족도 아닌 다른 사람이 개입할 만한 일도 아니었다. 그런 친구를 보니 실망감은 한층 더 커졌다. 내가 많은 사람들의 눈이 있는 곳에서 그를 편들고자 대신했던 대리인과 불필요한 논쟁을 이어나갔던 것은, 그가 내 찌그러져 엉망이 된 애정이나마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첫째였다. 그러나 그것은 굉장히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는 이미 자신의 공간이 침해됐다고 생각한 나머지, 자신의 상처만 고려했다. 그리고 다음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글을 올렸다. 그것은 또 나에게 상처를 줬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마침내 서로의 밑바닥을 드러내는 파국을 맞기에 이르렀다. 사건 종료 후, 자신의 페북이 '오염'(아마 나와의 댓글싸움을 지칭함)이 됐다는 표현도 하고, 또 편들어준 사람에게 '감동이고 고마웠어요'라는 표현을 봤는데 그 저열함과 용렬함에 화가 난다.  

 

그래도 짧지만 밀도있는 만남을 가져와서 그런지 여전히 그에게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형, 동생을 떠나 내가 먼저 좀 더 느슨하고 관계의 질에 걸맞게 기대감을 좀 덜 가지고 그를 대했으면 어떨까 하는 후회스러움이 나를 괴롭게 한다. 상대방에 대한 기대감도 무형의 폭력이 될 수 있음을, 그리고 실제로 폭력으로 작용했다는 것도 인정한다. 이 점만큼은 그에게 미안하다. 여튼 애정이 떨어져야 정상인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나도 참 답답하다. 이제는 위악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그도 아니면 앞으로 이런 반복을 하지 않던가.     

2013. 3. 24. 03:57

David Shambaugh, China goes Global - The Partial Power

 

1. 관련 중국내 서평

http://www.guancha.cn/Gideon-Rachman/2013_03_22_133606.shtml

 

2. 구글 도서

http://books.google.com.hk/books?id=ZUhhLwg85YEC&hl=zh-CN

 

 

 

 

 

 

2013. 3. 19. 05:47

그림으로 보는 중국정치. 도표와 그림으로 중국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자료.

 

1. 중국 전인대 정부업무보고의 비밀

 

 

 

 

2. 중국의 좌파와 우파

 

 

 

 

3. 중국의 관료등급

 

 

 

 

4. 중국 차세대 지도자들의 모습

 

 

 

2013. 3. 11. 10:44

아래는 상하이판 '마라샹궈(麻辣香锅)' 삼겹살, 새우, 연근, 문어완자, 둥베이 콴따이(넓은 당면), 배추, 팽이버섯, 오징어 등등 원하는 걸 넣어 주문할 수 있음. 상하이에서는 1인당 60-70위안 수준. 중국을 십 수년 드나들면서 여태 이걸 몰랐다는 게 신기함.

한국에 왜 이게 없었을까 싶어 찾아보니 경복궁역 2번 출구 도보 2분 후 우리은행 옆 작은골목으로 들어가면 '마라샹궈'란 이름의 가게가 있다고 함. 옌타이백주 마시면서 먹으면 죽음일 듯. 다른 훠궈랑 중국요리들도 판다고 함. 브레이크타임 있는 곳. 저녁은 5시부터 10시까지... 한국에 있는 동지들에게 강추! 양꼬치보다 강력한 맛.

 

 

2013. 3. 9. 04:32

며칠 전 화요일에 우리 학원(단과대학)에서 주최한 졸업반 논문제출일정 회의에 다녀온 적이 있다. 우리 국제관계학원 내 국내정치와 공공관리전공을 제외한 국제관계, 국제정치, 외교학이 같은 반으로 동기들은 모두 25명(중국인 19명, 유학생 6명)이다. 지금 이번 학기에 제대로 졸업하는 인원이 정확히 추산은 되고 있지 않는데, 아마도 8~10명 정도가 제때 졸업하고 나머지는 모두 일단 한 학기 연장신청을 할 모양이다.

 

그 가운데 나도 포함되어 있고... 이제 막 졸업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하니 나도 이제 막바지긴 막바지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마음대로 공부는 잘 안되고, 갑상선 때문에 몸은 계속 늘어지기만 하고, 종종 편두통도 괴롭힌다.

되든 안되든 열심히 써서 겨울에 졸업하고 싶은데, 여름에만 졸업식 있는 거 생각하면 부모님 모시고 내년 여름에 하는 게 낫지 않나 싶은 핑계거리도 찾고 있는 중이고... 남석이랑 통화 좀 길게 하다가 끊고, 한탄이나 하면 좀 좋을까 싶어 들어왔다.

 

사진에 나와 있는 내용 가운데 올해부터 특별한 것이 생겼다. 바로 논문전체 양에서 다른 논문과의 중복률이 15%를 넘길 경우 1주일간의 수정을 거쳐 재검사를 실시하고, 여전히 통과되지 못할 경우 자동적으로 졸업이 연기된다는 내용이다. 우리 학원부터 실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대학원 전체 학과에 적용이 되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 이런 규정이 사뭇 흥미롭다. 다른 베이징 쪽의 대학은 어떤지 궁금하기도 하다.

 

사실상 15%의 표절은 용납하겠다는 얘기인데... 그렇다고 요즘 추세로 봐서는 중국 대학 논문의 수준이 예전처럼 녹록한 것도 아닌데, 여튼 회의에서는 이런 규정이 생겼지만 실시 첫 해니까 너무 걱정은 하지 말라는 뉘앙스가 느껴졌다.

 

이와 별도로 요즘은 어느 친구가 인민대에 내정이 됐다고 하고, 누구는 어디를 가기로 되어 있고, 가장 친한 충칭친구 한 명은 충칭당교에 자리가 날 거라고 자신있게 얘기하는 소식들을 들으면, 작년에 무의미하게 보냈던 시간들이 좀 아쉽기도 하다. 그렇다고 빨리 졸업한다고 내 삶의 질이 나아진다고 할 수도 없고... 여튼 뭐 그렇다는 얘기다. 중국에 처음 왔을 때는 적어도 부끄럽지 않은 논문을 쓰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내 논문이 인정을 받지 못할까 두려운 마음에 하루하루 마음이 불편하다.

변화가 다가오니 모든 게 더 불확실하게 느껴진다. 그냥 잡소리다.

 

 

2013. 3. 7. 03:31

이런 거 자꾸 발견해서 탐닉하면 안되는데 며칠간 밤마다 여기 보다가 날새는 중이다. ㅠㅠ 쩡젠(政見)이라는 사이트인데 중국의 정당, 정치경제, 역사학, 통치, 외교, 사회 등의 분야를 다루고 있다. 이 곳의 특색은 일반적인 기사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중국과 관련된 국내외 최신 학술연구자료들을 찾아 그 자료의 전문이 아닌, 주요내용을 간추려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아울러 계절마다 이 웹사이트에 올라왔던 주요기사들을 모두 합쳐 전자판으로 된 계간을 내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 봄부터 겨울호까지 나와 있는 상태이며, 겨울호는 인터넷에서 12위안에 판매하고 있는데 살까말까 궁리중이다. 그 이전에 나왔던 것은 모두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더 값진 것은 이 계간으로 나오는 전자판 말미에는 읽을만한 책들에 대한 소개가 있다는 점이다. 전공은 다르더라도 현대중국을 연구하는 웬만한 사람들에게 꽤 도움이 될만한 웹사이트라는 개인적 판단이 든다.

 

이 사이트의 주요저자(?)들은 중국의 젊은학생들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프로필을 눌러보니 북경대, 인민대, 홍콩중문대와 영국과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는 본과생에서 박사생까지, 그리고 초빙필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계속 그 외연도 확대해 나가는 꽤 열린공간으로 보이며, 앞으로 잠재력있는 곳으로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이곳의 탄생은 2011년 11월부터로 이번 달이 17개월째가 되는 것 같다.

 

계간형태로 나온 전자판 파일을 첨부하고(모바일이나 아이패드 등에서 읽을 수 있는 파일도 있는데 모바일은 다운받아 봤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자꾸 다운실패한다. 다른 분이 되시면 알려주시기 바람), 아래 링크를 참조바람. 소개사진에서 그 청춘과 재기발랄함이 엿보인다. ^^

 

 

政见.zip

 

http://cnpolitics.org/about/

2013. 1. 10. 11:02

최근 연말모임에서 같은반 6명의 유학생 가운데 처음으로 qq라는 중국메신저 내의 클럽으로 초청을 받아 가입을 했다. 메신저를 켜두고 틈틈이 신변잡담에서부터 국내정치에 대한 이야기들까지 하는데, 중국친구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듯 싶어 올린다. 첨부된 한글파일을 다운 받으면 된다. 

우리반.docx

2013. 1. 2. 03:42

1년간 가보지 못했던 그곳, 보지 못했던 그리운 사람들.

 

불우유학생 신년귀환프로젝트 확정: 1월 31일(목)-2월 21일(목)

 

가도 불우한 한국행이니 맛이는 거 사주세요. 폭식 예정. 서울방문은 첫째 날과 설연휴 후 2월 14일 혹은 15일쯤 생각중. 이후 연속 부산행 후 22일 재출국.

2013. 1. 1. 00:14

여기 중국시간으로는 아직 한 시간 정도 남았지만, 한국은 이제 조금 있으면 새해를 맞이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같은 시간을 기다리고 있지만, 그 양태는 제각각이다. 자식들의 건강함과 다복을 기원하는 모든 부모님, 부모의 무탈함을 바라는 많은 자녀들, 2013년에는 좋은 곳에 취업을 하겠다는 취업준비생, 어디선가 내 짝이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를 감추지 못하는 많은 솔로들, 2013년에는 결혼이란 새로운 문에 들어가길 원하는 많은 연인들과 출산을 기원하는 부부들, 상급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는 많은 학생과 새로운 한해에도 몸담은 직장에서 별 탈없는 생활을 바라는 직장인과 노동자,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어느 누구, 친구를 그리워하는 또 다른 친구,  형제 자매의 행복을 바라는 수많은 가족...

 

글을 쓰고 있는 동안 한국시각으로 12시가 되면서 카톡이 울리기 시작한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지난 한해 많은 일들을 뒤로 하고 이런 덕담이 며칠 정도는 도처에서 유행할 것이다. 예의 되풀이되는 유행이 끝나면 다시 우리는 치열한 삶을 경주할 것이다. 타인의 기쁨과 행복이 내 자신에게도 즐거움을 안겨주기를, 내 자신의 슬픔과 고독을 그 어느 누군가와도 조금은 나눌 수 있게 되기를, 그리고 조금은 숨을 돌리며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여유가 생기기를, 내 자신이 우리로 확장하고 우리가 내 자신으로 수렴되기를 바라며 '올해라는 옷을 벗고 내년이란 새옷을 꺼내든다.'

 

아쉬움 가득, 안녕! 2012, 모든 것이 새롭게, 안녕~ 2013.  

2012. 11. 5. 05:30

우연한 기회에 시작은 한 달 반 정도 된 이야기인데 이제서야 초반의 매듭을 짓게 되어 이야기를 하게 된다. 아래의 책을 번역해서 출판하기로 계약을 했다. 출판사에서 받은 계약서에 서명을 해서 아까 메일로 첨부해 보냈다. 첫 시작은 정말 현실적이었다. 조금은 더 원활한 논문진행을 위해서는 새 노트북 한 대가 필요했는데 선인세로 그걸 장만할 수 있겠다는 세속적이면서도 중요한 개인적 동기였다. 그리고 지지부진한 논문을 위한 새로운 활력소도 필요했다. 논문과 번역을 모두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는 것에 시너지효과를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걱정도 역시 앞선다. 다음으로 남은 것은 번역출판에 대해서 역자로서 그 가치에 대한 판단이었는데, 그 부분에서는 완전하게 검토를 끝내지 못한 상황에서 결정하게 되었다. 결국 물질적이면서도 개인적인 사유들이 가장 중요한 동기부여를 한 셈인데, 이 때문에 번역을 시작하는 데 있어 썩 상쾌하지는 못하다. 


한 주 전에 작은 저서를 내기로 한 후배한테 다른 사건으로 좀 마음이 상해서 술을 같이 마시다 술김에 쓴소리를 좀 한 적이 있다. 절반은 그네가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는 것에 대한 비판이기도 했는데, 돌이켜보니 일정하게는 자아비판이기도 했다. 아전인수로 보일 수 있겠지만, 물론 그것과 이것의 성격이 명확히 상이하다는 것에는 지금도 생각의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넘치는 오지랖이기도 했고, 그동안의 정리와 애정의 한 표현방식이기도 했다. 내가 그의 복잡한 심정을 따뜻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듯, 그가 내 이런 복잡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아쉬워하는 것도 이제 넘겨야 할 때다. 


어찌되었든 번역완고는 학위논문을 끝내기로 마음먹은 내년 하반기에 맞춰 11월까지 납품하기로 했다. 이미 목차와 일부 내용을 시험삼아 번역해 보았는데, 보다 질좋은 번역으로 이 계면쩍음에 대해 답하고자 한다.  




가제: 북한이라는 미궁

출판사: 홍콩 명보(明报)출판사

저자: 장쉰(江讯), 아주주간 부편집장

출판년도: 2012년 여름, 홍콩에서 하절기 판매 3위로 기억됨.

2012. 8. 27.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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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선의 시집 한 권과 소설 한 권, 그리고 전공관련서 두 권을 인편을 통해 오늘 받았다. 저녁약속이 있어 나갔다 방금 들어와 가장 먼저 심보선의 시집을  펼쳤다. 새 책을 받아들 때면 늘 설렌다. 여기 있는 책이나 꼬박꼬박 다 읽으면 더 좋겠지만...  간단히 훑어보니 詩 두 편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현실의 역설을, 마음
 한 켠의 적요를 잘 드러내기 때문이리라.




첫 줄

첫 줄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써진다면
첫눈처럼 기쁠 것이다.
미래의 열광을 상상 임신한
둥근 침묵으로부터
첫 줄은 태어나리라.
연서의 첫 줄과
선언문의 첫 줄.
어떤 불로도 녹일 수 없는
얼음의 첫 줄.
그것이 써진다면 
첫 아이처럼 기쁠 것이다.
그것이 써진다면
죽음의 반만 고심하리라.
나머지 반으로는
어떤 얼음으로도 식힐 수 없는
불의 화환을 엮으리라.



심보선, 『눈앞에 없는 사람』,(서울: 문학과지성사, 2011), p.62.



이 별의 일

너와의 이별은 도무지 이 별의 일이 아닌 것 같다.
멸망을 기다리고 있다.
그다음에 이별하자.
어디쯤 왔는가, 멸망이여.



심보선, 『눈앞에 없는 사람』,(서울: 문학과지성사, 2011), p.65. 


2012. 8. 19. 18:13

한국보다 위도가 좀 더 낮은 곳에서 살고 있는 내가 여름에게 작별을 고한다는 것은 사실 너무나 이르다. 두 개의 태풍이 지나간 다음, 이 곳은 언제 그랬냐 싶을 정도로 다시 무더워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돌아가고 소수의 인원만이 남은 기숙사는 더운 날씨 덕분인지 사람 구경하기 더 힘든 요즘이다. 억지로 하루에 한 두 번은 1층 매점에 간다든지, 혹은 땀을 한 차례 흠뻑 흘릴 것을 각오하고는 산책 겸 물건을 사러 다녀오고는 한다. 이제 한 두 주 정도 있으면 돌아올 사람들도 돌아오고, 새로 입학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대화에 대한 갈증은 어느 정도 풀릴 것이다. 사람이란 참 요망한 것이 연락이 많이 올 때는 차분히 혼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고, 결국 그런 시간이 찾아오고 나면 오히려 누군가를 찾게 된다. 070전화가 있어서 가끔 한국에 있는 사람들과 통화도 하고 간간히 이 곳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만나면서 어느새 한 달 반 넘게 방학을 심심치 않게 보내고 난 지금은 그냥 그렇다.




이제 헛되이 보낸 시간에 대한 아쉬움같은 감정은 느끼지 않는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다. 살다보면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거지 하며 어느덧 체념적 통달의 지경에 매몰되어 있다. 한 살, 두 살 더 나이 들어가며 생기는 장점들이 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목전의 시기를 어떤 단어로 굳이 설명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나이 먹으며 생기는 좋은 점들보다는 나도 모르게 나에게 '안녕'을 고하는 이전의 장점들이, 오히려 소멸하고 있는 까닭이다. 며칠 전에는 혼자 한국 티비를 보다가 혼자 주절대는 것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무섭게 아버지를 닮아감에 소스라치게 놀랐는데, 지금은 온전히 인정하고 수용하기로 했다.




썸머씨! 세상의 기준과 온갖 시선에서 나의 여름은 손가락질 받아야 할 정도로 참 나태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내년의 여름을 감히 기약해도 좋을까. 이 자리에서 눈을 치켜 뜬 채, 내가 가는 길을 감내하고 기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어. 이의 반사작용으로 내 어깨에 놓인 현실의 짐들을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좀 더 메고 간다 할지라도, 난 내가 그동안 애써 끌고 온 것들을 여기에 버려두고 갈 수는 없을 것 같아. 그래서 당신이 가는 걸 미처 보지 못하고, 가을을 맞게 될 지도 모르겠어서 미리 인사를 건네는거야. 




잘 가! 나도 이 자리에서 잘 지낼게. 

2012. 7. 30. 20:15

건너편 옆방인 1716호로 오늘 이사했다. 11개월 살고 이사하는 것이다. 이사의 이유로는 이 방이 남향으로 겨울에 상대적으로 덜 춥다는 것, 더 넓은 베란다 등이다. 무엇보다도 올 여름은 이동이 없으니 좀 분위기도 바꿔보고 싶었다. 창이 커서 전망이 나쁘지 않으니 가장 좋다. 방학이라 도와줄 사람이 없어 혼자 했는데 청소해가며 옮겼더니 꼬박 6시간이 걸렸다. 공용주방 정리는 내일 할까 싶다. 밤새우고 이사한 탓에 저녁 먹고나면 완전 신붕(신체붕괴)할듯...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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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7. 10. 03:59

1. 여름방학에 접어든 지 며칠 되었다. 그동안 상하이는 폭염의 시간 속으로 성큼 들어섰고, 낮에는 거의 외출을 삼가는 지경에 이른 상태다. 방문이 예정되었던 손님들도 다 왔다 갔고, 머물고 있는 사람들 세 팀 정도 크게 시간 빼앗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만나는 것 이외에는 오롯이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모퉁이의 방학이 되리라 생각한다. 모퉁이를 돌아섰을 때 좀 더 오달진 학업의 상태를 맞이했으면 감히 바란다. 


2. 요즘은 나이 든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좀 하고 있다. 청년이라 하기엔 늙었고, 중년이라 하기에는 좀 억울하다. 미혼이라는 점도 톡톡히 한 몫 하고 있다. 원하지 않으면서도 어김없이 정치적인 자리에 자연스럽게 동석해 있는 나를 가끔 발견하게 된다. 이걸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 나이브하고, 흔쾌히 수긍하는 것 역시 심한 반발감이 있어 자꾸만 괴리감이 생긴다. 아직은 소년이고 싶고, 청춘이고 싶은 달뜬 열망이 점점 나를 꼰대로 만들어 가는 패러독스를 어찌 표현해야 할까. 변화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은 까닭이다.     

2012. 6. 13. 04:53

1. 무엇을 먹어야 하나가 자취할 때보다 더 걱정인 유학생활이 계속되고 있다. 여름이 되면 늘 어머니가 해주시는 열무김치에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고 쓱쓱 비벼먹는 열무비빔밥이 무척이나 땡긴다. 올해도 순식간에 두 번의 계절이 바뀌어 가만히 실내에만 있어도 덥다는 생각이 드는 계절에 서 있다. 산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수용 가능한 '정도(程度)'의 눈금에 있는 건 아닐까. 큰 폭의 수용범위 안에 있으면 삶에 대한 큰 불행이 없다는 것에 안도하면서도, 정확하지 못한 눈금으로 인한 소소한 불만과 따분함은 자연스레 터져 나온다. 기숙사 내에서 홀로 지내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가끔 혼자 산책을 하거나 늦은 저녁 학교역사관 인근 잔디밭으로 조깅을 가기도 하지만, 정말 가물기 그지 없다. 답답함에 1층 매점에 가서 음료수를 산다던가, 그 음료수를 들고 남측 혹은 북측 출입구에 가서 담배를 피우며 오가는 유학생들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랄까.) 이제 수업도 나가지 않으니 더욱 그렇다. 성격상 아는 사람 많아도 정작 친한 사람은 별로 없어 먼저 약속을 잡는 경우도 흔치 않다. 다만 잡히는 약속은 거절하지 않는 편이니 가끔 그렇게 조금 아는 사람들과 밥을 먹거나 별다른 내밀함이 느껴지지 않는 수다를 떨고 오는 정도이다. 그나마 6, 7월에는 한국에서 오랜 인연이나  손님들이 있어 이 곳에서 해갈할 수 없는 부분을 약간이나마 덜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다. 



2. 아울러 논문집필과 관련한 스트레스는 점차 커지고 있다. 진도는 계속 지지부진하고 지도교수에게 어줍잖게 해 놓은 큰소리가 스스로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21일 넘어서는 이종민 선생님이 학생들 인솔하러 올 겸 상해대 왕샤오밍과 스터디 한다고 해서 한 일주일 가까이 술만 마시며 보낼 것 같아, 이번 달은 부득이 열흘 정도 밖에 시간이 없게 되었다. 그동안 예전에 해뒀던 것에서 좀 더 진전이 있어야 하는데... 정말 에휴~이다.



3. 아주 멀리 살면서 가까이 살고, 가까이 살면서 멀리 사는 그가 있다. 매우 직접적으로 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사실 내 일이 바빠 길게 혹은 자주 그에 대해 생각할 시간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래도 단편적으로 혹은 편린처럼 생각하고는 한다. 쉽게 말해서 우리 관계는 불편하다. 일차적 동기는 명백히 내가 부여했지만, 이차적 동기는 책임의 소재가 불분명하다. 관점에 따라 여전히 나에게서 발생하는 것이기도 하고, 그에게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책임소재의 대상이 누구인지는 매우 부차적인 문제다. 현재에 있어서 단언하기는 참 어려운 문제인데 나는 그에게 조금씩 나의 욕심을 버려 나가고 있는 중이다. (정말인지는 나도 가끔 헷갈릴 때가 있지만...) 가장 큰 나의 고민은 그가 나를 마주칠 때마다 '불편해 한다는 사실'에 있다. 실로 나는 그런 상황을 바라지는 않았다. 그도 그랬을 것이다. 그렇다고 현 시점에서 "너 왜 그렇게 불편해 하는거니?"라고 물을 수도 없는 상황이고, 그저 내가 알아서 추측하고 헤아려 행동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처음에는 이런 것들이 답답하기 그지 없었는데, 그리고 그 사람의 입장에 서서 사고한다는 것이 참 어려웠는데 요즘은 이해가 된다. 난 그가 아니라서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나에 대한 '미안함' 혹은 그 어떤 무엇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어쩌면 더 복합적인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다고 내가 그가 아닌 이상은, 내 수준과 단위에서 판단하고 행동하는 수 밖엔 없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내 이런 노력들이 그를 더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리적이지 않다고 해서 폭력이 아니라고 얘기할 수는 없기에 말이다. 그에게 얼마 전 이메일로 이렇게 토로한 적이 있었다. '사실은 내 자신에게 화가 나는 것이라고...' 그가 내가 보낸 이메일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는 몰라도 진심이었다. 그 친구는 내가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내가 타고 가는 자전거 뒤에서 천천히 배회하며 내가 먼저 어서 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본 것이 수 차례다. 이런 장면이 반복될 때마다 점차 내 자신에 대한 불만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 조차도 내가 감싸 안았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든다. 그것은 그 어떤 것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정지'해 있는 것.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것인지 쯤은 사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종종 '헛발질'을 하는 것일까. 최근의 쓴 이메일에서는 "불편한데 불편해 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일종의 강요일 수 도 있겠으니, 마음 가는대로 하라"고 내 발언을 수정하기도 했었다.  난 당초 그에게 했던 원론적인 이야기 가운데 하나인 "이제 많은 것을 가슴에 묻고, 오롯이 현실 속에 우리를 맡기겠다."고 했던 것에 얼마나 충실했던가. 무거운 진심만이 능사는 아니다. 가볍고 헤퍼보여도, 혹은 더없이 조악할지는 몰라도 그게 지금으로서 가야 할 길이라면...   

2012. 4. 29. 02:14

1. 상하이와 봄

봄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나 보다. 간혹 초여름 날씨를 보이기도 하지만 경험적으로 당분간은 늦봄과 초여름의 경계를 넘나들 것으로 보인다. 비가 예보된 탓인지 기숙사 중앙 열린 창문 틈으로 바람소리가 거세게 밀어 닥친다. 상하이의 바람은 누차 언급한 바 있지만 기이한 파열음을 낸다. 더구나 23층 높이의 기숙사 사이를 비껴가는 바람은 더 기묘하고 음산한 울음소리 같다. 이 소리 때문에 가끔 기분이 심하게 틀어질 때도 있지만, 이제는 하도 들어서 완전히 적응이 된 것 같다. 비록 강한 바람이 불고, 종종 비가 내리더라도 봄밤은 좀 더 머물다 갈 것이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고 나면 여름이 반짝이는 이마를 드러내며 "나 왔소."라 넌지시 귀뜸할 것이다. 봄밤의 독은 온몸에 파다하게 퍼졌는데, 봄은 참으로 매정하고 여름은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2. 사진과 春


 

사진출처: http://oktimes.cafe24.com/



3. 시와 봄

굳이 만나지 않더라도 일상이 진하게 묻어나는 어느 이웃 블로그에서 발견한 반짝이는 시 한 편. 그러고 보면 내 블로그의 모든 시는 주로 봄에 올려진다는 공통점이...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윤성택


계단을 오르다가 발을 헛디뎠습니다

들고 있던 화분이 떨어지고

어둡고 침침한 곳에 있었던 뿌리가

흙 밖으로 드러났습니다

내가 그렇게 기억을 엎지르는 동안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내 안 실뿌리처럼

추억이 돋아났습니다

다시 흙을 모아 채워 놓고

앞으로는 엎지르지 않겠노라고

손으로 꾹꾹 눌러주었습니다

그때마다 꽃잎은 말없이 흔들렸습니다

위태하게 볕 좋은 옥상으로 

너를 옮기지 않겠다고

원래 자리가 그대 자리였노라고

물을 뿌리며 꽃잎을 닦아내었습니다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4. 사진과 people의 春




위 선배형 블로그에서 본 'people'이란 제목의 사진, 문득 누구인지 호기심 돋는다는?ㅎ 그동안 주로 풍경사진만 보다가 이 사진 보고 멘탈붕괴했어욧;) India사진들 틈 사이에 배치되어 있더라는... 청문회가 필요하다고 사료됨!

2012. 4. 6. 22:26

상하이는 지난 주초부터 2주 가까이 전례에 없는 봄의 양광을 뽐내고 있는 중이다. 지난 주 금요일던가에 비 한 번 내리고는 쾌청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봄이라 할만한 날씨를 보여주고 있다. 최고온도 21-23도에서 최저온도 11~13도 정도... 물론 다른 이유들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좀 안정감 있는 생활을 보내는 것에는 날씨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계속 공부만 했었는데 근데 오늘은 이상하게 지친다. 주말이라 그런 것도 아닌데, 유난히 하루종일 피곤하기도 하고, 많이 우울하기도 하다. 딱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래서 왜 그런지 자기 검열중이다. 덕분에 한 3시간도 채 못하고 오늘은 작파했다. 이런 게 봄앓이라 해야 하나. 작년 윈난 루구후에서 찍었던 꽃 하나를 올린다. 덧없이 짧은 봄이 가고 있다.

 

2012. 4. 2. 23:45

작년도 우리 전공 졸업시험 문제를 받아 올린다. 시험문제 사전에 받아서 미리 준비해서 가도 될까말까 하는 판에, 이 광범위한 영역의 이론들을 줄줄 꿰고 있어야 하는데, 힌트도 안주는 게 어딨남? 턱걸이라도 좋으니 패스만 하고 빨리 논문이나 돌입하면 좋겠다. 차라리 논문이 주는 고통이 낫지.ㅜ.ㅜ  오늘에서야 작년도 문제 입수했는데, 아무래도 최근 며칠간 내가 준비한 건 삽질이었던 거 같다. -.-; 아참... 한 가지 특이사항! 지난 주 월요일부터 연속 8일째 오전 8시 이전 기상, 1시 이전 취침의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언제 이래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앞으로 얼마나 이런 생활 유지할 수 있을지 사뭇 궁금하다. 나도 아침형인간 타이틀을 얻을 수 있는겨?

첨부파일은 영문 아티클이다. 문제는 번역해서 올린다.

Tipping Point in the____ Indo-Pacific.docx

2011년도 졸업시험 시험문제는 두 가지 부분으로 나뉨:

첫 번째 부분:이론50점

1、현실주의, 자유주의와 구성주의의 국제안보에 대한 이해는 어떠한 부분에서 차이가 있는가? 그들은 각각 국제안보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어떤 것들을 제시하였는가?(25점
2
、로버트 길핀은 어떻게 국제체제 변혁을 분석하였는가?25점

제2부분:영어능력 50점

아래 영문 아티클을 읽고(tipping point in the indo-padific),중국어 800자로 요약하라.35점),그리고 아래 세 문제에 영어로 간략하게 답하라.15점)。

문제:

1. How the author compares the liberal and realist view of China-US relations in the next ten years?

2. Why the author extends the theater of China-US interaction from Asia-Pacific to Indo-Pacific?

3. Do you agree or disagree? Please comment on the present international order in Indo-Pacific and suggest ways to improve China-US security cooperation in this common.


 

2012. 3. 31. 17:25

그제 다시 지도교수를 만났을 때 받았던 제안을 다른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거의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었다. 호의에는 호의로 보답해야 한다. 그래서 당초 3년 6개월에서, 3년, 내년 7월 졸업으로 계획을 변경하기로 한다. 까짓거 국제관계 박사유학생 기록 한 번 갈아치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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