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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8. 19. 18:13

한국보다 위도가 좀 더 낮은 곳에서 살고 있는 내가 여름에게 작별을 고한다는 것은 사실 너무나 이르다. 두 개의 태풍이 지나간 다음, 이 곳은 언제 그랬냐 싶을 정도로 다시 무더워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돌아가고 소수의 인원만이 남은 기숙사는 더운 날씨 덕분인지 사람 구경하기 더 힘든 요즘이다. 억지로 하루에 한 두 번은 1층 매점에 간다든지, 혹은 땀을 한 차례 흠뻑 흘릴 것을 각오하고는 산책 겸 물건을 사러 다녀오고는 한다. 이제 한 두 주 정도 있으면 돌아올 사람들도 돌아오고, 새로 입학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대화에 대한 갈증은 어느 정도 풀릴 것이다. 사람이란 참 요망한 것이 연락이 많이 올 때는 차분히 혼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고, 결국 그런 시간이 찾아오고 나면 오히려 누군가를 찾게 된다. 070전화가 있어서 가끔 한국에 있는 사람들과 통화도 하고 간간히 이 곳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만나면서 어느새 한 달 반 넘게 방학을 심심치 않게 보내고 난 지금은 그냥 그렇다.




이제 헛되이 보낸 시간에 대한 아쉬움같은 감정은 느끼지 않는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다. 살다보면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거지 하며 어느덧 체념적 통달의 지경에 매몰되어 있다. 한 살, 두 살 더 나이 들어가며 생기는 장점들이 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목전의 시기를 어떤 단어로 굳이 설명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나이 먹으며 생기는 좋은 점들보다는 나도 모르게 나에게 '안녕'을 고하는 이전의 장점들이, 오히려 소멸하고 있는 까닭이다. 며칠 전에는 혼자 한국 티비를 보다가 혼자 주절대는 것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무섭게 아버지를 닮아감에 소스라치게 놀랐는데, 지금은 온전히 인정하고 수용하기로 했다.




썸머씨! 세상의 기준과 온갖 시선에서 나의 여름은 손가락질 받아야 할 정도로 참 나태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내년의 여름을 감히 기약해도 좋을까. 이 자리에서 눈을 치켜 뜬 채, 내가 가는 길을 감내하고 기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어. 이의 반사작용으로 내 어깨에 놓인 현실의 짐들을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좀 더 메고 간다 할지라도, 난 내가 그동안 애써 끌고 온 것들을 여기에 버려두고 갈 수는 없을 것 같아. 그래서 당신이 가는 걸 미처 보지 못하고, 가을을 맞게 될 지도 모르겠어서 미리 인사를 건네는거야. 




잘 가! 나도 이 자리에서 잘 지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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