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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체온과 사색'에 해당되는 글 61건
2020. 7. 28. 17:27

(워커스 기고글)

 

창원대학교 중국학과 구성철

 

1. 미중 간 문제에서 세계화하는 화웨이 사태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미중 간 패권경쟁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의 홍콩 보안법 통과 문제는 외교적 문제라고 한다면 남중국해에서의 미국의 자유항행 의지는 군사적 경쟁의 문제이다. 화웨이(華爲) 문제는 5G 시장에서의 미래 표준을 누가 먼저 선점할 것인가를 두고 벌어지는 경제적 문제라고 분류해 말할 수 있다.

 

화웨이를 두고 제기된 사이버 안보 논란은 오래전부터 있어 온 일이다. 하지만 이 일이 외교적 현안으로 급부상하게 된 것은 20182월 미국의 정보기관들이 화웨이 제품을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201812월 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의 첫째 딸인 멍완저우 부회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캐나다에서 체포되면서부터였다. 20195월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민간기업들에게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을 요구했다. 미국 측의 주장은 화웨이 문제는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안보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화웨이 장비에 심어진 백도어를 통해 중대한 정보와 데이터가 누출될 수 있다고 미국은 주장한다. 이에 대해 화웨이와 중국 정부는 화웨이 통신장비에 대한 미국 정부의 의심은 객관적인 근거가 없고, 되려 그 위협을 과장함으로써 이를 통해 모종의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속내가 있다는 논리로 맞서고 있다.

 

며칠 전인 2020714일 영국에서는 총리 주재로 국가안보회의가 열린 후 화웨이의 5G 장비구매는 2020년 말 이후 중단하고, 유선 인터넷망 부문에서도 화웨이의 장비 사용을 2년 안으로 중단하기로 했다. 즉 이동통신망 장비와 더불어 기존 통신망에서 화웨이 장비를 모두 제거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화웨이는 매우 실망스러운 결정이라면서 즉각 반발했다. 중국 정부도 이와 관련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브리핑이 있었다. 715일 중국 외교부 정례브리핑에서 중국 기업들은 영국에서 투자 안전에 중대한 위협을 받고 있다면서 중국은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중국 기업의 권리를 수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정부가 5세대 이동통신망 구축사업에서 중국 화웨이 장비구매를 중단하기로 하면서 미국의 다른 동맹국인 캐나다도 선택을 강요받게 될 전망이다. 캐나다가 바로 미국과 기밀을 공유하는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이 파이브 아이즈에는 미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영국 5개국이 가입했는데 캐나다를 제외한 다른 국가들이 모두 화웨이를 배제하는 방침을 정했기 때문에 향후 캐나다도 화웨이 견제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화웨이가 이처럼 많은 견제를 받는 것은 바로 화웨이가 미래 기술과 경제의 중추신경계가 될 5G 이동통신 관련 특허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4G까지는 미국과 유럽의 통신회사가 이와 관련된 표준 제정을 주도했지만, AI, 자율주행, 사물인터넷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인프라 분야는 바로 5G이고 이와 관련된 특허 출원은 현재 화웨이(승인 건수는 삼성전자가 1)1위이다. 중국 정부는 중국제조 2025’에서 5G 기술을 언급하고, 2016년부터 시작된 13.5 계획에서도 5G 기술을 전략적 신흥 산업으로 지정하는 등 통신인프라 설치와 부가 서비스 확대에 대대적인 지원을 앞세우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 화웨이에 대해 미국 상무부는 지난 5월 새로운 제재를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화웨이가 독자 설계한 반도체 부품을 TSMC를 비롯한 세계 어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업체) 업체에 맡겨 생산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717일 세계 파운드리 생산 1위인 대만의 TSMC는 오는 914일 이후에는 화웨이의 반도체를 공급하지 않을 것이라며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을 처음으로 공식화했다. 이에 따라 화웨이는 통신장비, 스마트폰, PC, 서버 등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반도체 부품 조달에 비상이 걸리게 되었고 향후 신제품 출시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될 전망이다.

 

미국의 화웨이 압박은 점점 강해지고 세밀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전방위적 제재에도 불구하고 화웨이는 중국 내에서 오히려 이른바 애국 소비라는 이름으로 화웨이 제품을 중국 인민들이 더 많이 사용함으로써 그 제재의 칼날을 우회하고 있다. 2020년 상반기 화웨이 매출은 201923%의 증가율보다 둔화한 13% 증가에 그쳤다. 하지만 코로나19팬데믹 상황을 감안하면 상당히 선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중국 정부가 5G 통신장비에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면서 성장세를 유지할 전망이다. 중국 통신회사는 2020년 약 31조 원에 달하는 자금을 5G 통신망 구축에 투자하고, 50만 개 넘는 5G 기지국을 건설할 계획이다. 따라서 통신장비 시장에서의 화웨이의 시장점유율 1위도 무난히 수성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20204/4분기 이후에는 화웨이의 입지가 매우 좁아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상당한 편이다.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압박은 앞으로 더 거세질 것이다. 또 미중 간 기술패권 경쟁이 세계화되면서 줄세우기식 외교가 치열하게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한국에 직접적으로 미칠 영향에 대해 요약해 보고자 한다.

 

2. 화웨이 사태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

 

화웨이 사태가 우리나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분야는 5G 통신장비 시장이다. 영국의 통신장비 시장에서 화웨이가 퇴출(스마트폰 판매는 제외)되면서 미국의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714(현지시각) “영국은 신뢰할 수 없는 기업의 제품을 금지해 국가안보를 지켰다라고 평가하면서 인도의 지오, 호주의 텔스트라, 한국의 SKTKT, 일본의 NTT처럼 깨끗한 통신사들과 다른 업체들이 그들의 통신망에서 화웨이 장비 사용을 금지해왔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미국의 우방국 사이에서는 탈 화웨이 움직임이 뚜렷하다. 이에 따라 유럽 시장과 동남아 시장에서 화웨이에게 선점당했던 5G 통신장비 시장에 삼성이 한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커졌다. 마침 영국은 2027년까지 이미 통신망에 들어간 화웨이 장비를 모두 교체하기로 하면서 영국이 삼성에 5G 통신망 장비를 제공할 수 있는지 의사를 타진했고 삼성전자 역시 참여 의사를 밝힌 상태이다. 독일과 프랑스도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 유력해 보이는 상황이라 삼성이 가져갈 반사이익은 매우 클 것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현재 전 세계 5G 기지국 시장은 화웨이와 에릭슨, 노키아가 80%를 상회하는 점유율을 차지하는 삼파전 양상이다. 삼성전자는 20201분기 5세대 통신장비 시장점유율은 약 13.2%이다. 이는 20194분기보다 3% 가까이 오른 것으로 화웨이에 대한 견제가 더 심해지면 5G 통신장비 시장 분야에서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더욱 오를 것으로 보이고 관련 국내기업과 한국경제에 끼칠 전망은 일단 매우 긍정적인 상황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20195월 설립한 차세대통신연구센터에서 6세대 선행기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6세대의 속도는 기존 5세대 기술 속도보다 50배나 빠르고, 무선 지연시간도 10분의 1로 감소한다. 이는 10년 뒤 기술을 미리 개발해 6세대의 표준화를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5G 통신장비 시장에서 긍정적인 영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3대 통신사 가운데 하나인 LG유플러스와 화웨이의 관계 변화는 한중관계에도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중국의 화웨이는 한국의 106개 기업과 실질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며, 특히 LG유플러스는 화웨이 네트워크 장비를 30% 이상 사용하고 있다. SKTKT는 주로 삼성, 에릭슨, 노키아 장비만 주로 사용했다. LG가 화웨이를 사용했던 이유는 가성비 때문이다. LGSKTKT에 비해 늦게 네트워크 사업에 진출했고, 후발주자로서 초기 설치비가 20~30% 저렴한 화웨이 장비를 사용했다. 더 중요한 사실은 LG그룹의 전체 매출 비중에서 중국이 매우 큰 시장이라는 것이다. LG그룹은 전기차 배터리, 화장품, LED 등의 다양한 전자제품을 중국 시장에 수출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압박에 따라 화웨이 네트워크 장비 사용을 중단할 경우, LG는 중국으로부터 제품 수출에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제2의 사드 사태까지는 아니더라도 한중관계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 LG그룹은 사이버 안보와 관련해 몇 가지 반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미국의 시스코 기업의 라우터를 활용해 백도어를 미국 정부를 위해 열어 준 적이 있다는 것 국제공통평가기준(CC)으로부터 5G 기지국을 검증받고 안전한 평가를 받았다는 것 경쟁사들도 화웨이 유선 장비를 도입했지만, 보안사고가 없었으며, 5G 장비는 TV 안테나와 유사해 개인정보 탈취와 관계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미국의 기업이나 중국의 기업 모두 사이버 보안을 훼손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사이버 안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통신업계는 인구의 절반이 몰린 서울과 수도권은 화웨이 장비로만 서비스 중이고, CC는 백도어 탐지능력이 부족하며, TV 안테나와 달리 5G는 쌍방향으로 데이터를 주고받는 것이라 안심할 수 없다는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비록 영국에서 화웨이를 배제하기로 결정을 내리긴 했지만, 영국의 통신장비 관련 업체에서는 수조 원 대의 손실을 감수해야 하고, 정해진 시간표대로 화웨이 장비를 모두 교체하는 것도 불가능하며 5G 인프라 구축이 2~3년 지연될 수밖에 없게 되면서 그 비용이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영국의 이러한 화웨이 배제 방침은 한국의 LG유플러스에도 고스란히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딜레마도 점차 늘어날 것은 자명하다.

 

5G 시대, 화웨이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박은 반도체 업계에도 일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대만의 TSMC가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하게 되면서 중국은 반도체의 국산화에 더 매진할 것이다. 단기간에는 어렵겠지만 향후 중국이 시스템 메모리 반도체 분야 국산화에 성공하게 된다면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과의 기술격차도 상당히 좁히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에도 파급력을 발휘할 것이다.

 

화웨이라는 회사 명칭은 중화민족을 위하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정말로 화웨이는 외부의 호기심 어린 시선처럼 배후에 중국 정부를 업고 있는 기업으로 미국의 주장처럼 세계 각국의 사이버 안보를 위협하는가, 그도 아니면 중국의 기술 굴기를 저지하기 위해 미국이 희생양으로 삼고 있는 볼모인가. 그 내막이야 어찌 됐든 기술패권 경쟁의 서막은 올랐고 여기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국가가 바로 21세기 미래 기술의 표준을 선점하게 될 것은 분명하다. 우리로서는 상당히 복잡한 국면을 초래하고 있는 화웨이 사태를 어떤 방식으로 현명하게 대처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많은 논의가 요구된다.

 

2019. 8. 13. 16:32

구성철(前동서대 중국연구센터)
동서중국 웹진 제6호 기고글

http://www.dsuchina.kr/201908/3-2.html

http://www.dsuchina.kr/user/0006/nd18626.do?menuCode=kor&zineInfoNo=0006&pubYear=2019&pubMonth=08

 

짜장면이 남긴 단절과 칭다오맥주와 마라의 상륙

짜장면이 남긴 단절과 칭다오맥주와 마라의 상륙 짜장면은 지난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한국의 음식문화를 대표하는 일상적인 음식이었다. 누구든 짜장면과 관련된 스토리 하나 정도는 거론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와 매우 가까운 음식이다. 중국 대륙에서 건너온 중국인들에게 의

www.dsuchina.kr



짜장면은 지난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한국의 음식문화를 대표하는 일상적인 음식이었다. 누구든 짜장면과 관련된 스토리 하나 정도는 거론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와 매우 가까운 음식이다. 중국 대륙에서 건너온 중국인들에게 의해 전해진 이 ‘작장면’이 한국에서 자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바로 6.25전쟁을 거치면서 미국의 저렴한 밀가루 공급이 이뤄졌고 화교탄압정책으로 인한 중국음식점의 대량 개업과 캐러멜이 첨가되면서 한국화 된 짜장소스가 우리 생활 속에서 짜장면을 살아 숨 쉬게 만들었다. 짜장면은 한반도에서 중화제국이 남긴 마지막 유산이자 단절의 상징으로 꼽을 수 있다. 1894년 청일전쟁 이후 한반도, 특히 한국에서 중국이 가졌던 오랜 영향력은 하드파워부터 상실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냉전과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양국은 소프트파워 마저 상실하면서 완전히 단절되고 말았다. 아마 양 국가의 어느 누구도 양국관계가 이렇게 변화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120여 년은 중국과 한국은 적어도 네 세대 이상 단절되었다. 아마 양국 국민들의 첫 세대 정도는 청나라가 조선에 가지고 있던 권력(현대적인 관점의 하드파워)이 사라졌다고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세대는 제국주의의 침략 아래 신음하느라 아무런 정신이 없었던 것이 비참한 현실이었다. 마지막 네 번째 세대는 냉전의 대립 속에서 서로를 인식할 틈조차 없게 되면서 소프트파워도 상실했다. 마지막에는 한반도에 살던 사람이 스스로 인정했던 중국의 권위는 아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와 동시에 미국은 일제의 항복과 더불어 한국에 진출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조선 사람에게 미국은 그저 서방국가의 피부색이 다른 신기한 인종이었을 따름이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미국의 하드파워는 초콜릿으로부터 시작됐다. 전쟁의 상처와 가난 속에서 신음하던 한국인들은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던 초콜릿과 식량으로부터 미국의 하드파워를 인지하게 됐다. 이후에는 미국의 대중음악과 할리우드 영화 등을 통해 소프트파워를 전파 당했다(?). 그러나 미국의 권위는 미국 스스로가 만든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한국과 한국인이 만들어냈다.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 모두가 절정기에 접어들면서 스스로 미국이라는 권위를 인정하게 된 것이다.


국제정치에서는 흔히 A국가가 B국가에 가지는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의 정도가 바로 그 나라의 패권을 상징하는 지표라고 말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가장 마지막에 오는 것은 언어와 문화패권이라 생각한다. 그 나라의 ‘언어’가 타 국가의 생활 속에서 상용화되고, 문화가 한 국가의 국민들을 지배할 때 패권은 완성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중국은 짜장면이라는 유산을 통해 한반도에 단절을 남겼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1992년 한중수교가 이뤄지면서 단절됐던 가장 가까운 이웃인 중국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1990년대 대학가에서는 중국어와 관련된 학과가 많이 신설됐고, 보잘 것 없던 중국어 교재의 숫자도 대폭 증가했다. 또 타이완으로 유학을 가는 사람은 매우 적어지고, 대륙으로 유학을 떠나는 젊은이들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이런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중국의 음식 또한 유입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산물이 바로 ‘양꼬치’와 ‘칭다오맥주’이다. 수년 전 한 희극인 정상훈이 ‘양꼬치엔칭다오’라는 말을 유행시키고 이와 관련한 TV광고까지 출연한 것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https://youtu.be/6O_5jH3bUA0

동영상출처: 2018칭따오 스페셜 에디션 복맥무비/유튜브

1903년 한 독일인과 영국인에 의해 칭다오에 설립된 것이 칭다오맥주다. 반식민지 시기 열강들에 의해 만들어진 맥주공장이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세계로 다시 나아가고 있다. 그 특유의 풍미와 상쾌한 맛, 그리고 발음하고 외우기 쉬운 명칭으로 한국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2000년대 양꼬치에는 칭다오맥주를 마셔야지 하는 선입견을 먼저 만들어낸 이후 칭다오맥주는 중국맥주를 대표하는 대명사가 됐다. 이에 따라 칭다오맥주는 한국시장에서 3년 전부터 일본의 아사히, 네덜란드의 하이네캔 등을 제치고 수입맥주 시장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위 동영상의 조회 수는 250만회를 넘기면서 중독성 있는 광고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중국유학을 경험한 이들에 의해 중국의 하얼빈맥주와 쉐화맥주도 한국시장에 연이어 진입하면서 중국맥주의 한국시장 저변은 점차 넓어질 전망이다. 특히나 폭염이 시작된 요즘 각 가정에서 칭다오맥주를 친근하게 마시면서 소비한다는 것은 향후 한중관계가 큰 변화로 이어질 수 있는 문화적 조짐으로 읽을 수 있다.

사진출처: <카드뉴스> 대한민국 강타한 ‘마라 열풍’/매경이코노미/2019년 5월 23일.


한편 수년 전부터 조짐은 있었지만,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올해 열풍이 불기 시작한 ‘마라’ 역시 대륙에서 건너온 음식문화의 산물이다. 혀가 마비될 정도로 맵고 얼얼한 맛을 의미하는 ‘마라(麻辣)’는 매운 것을 사랑하는 한국인들의 정서와 잘 맞아 떨어졌다. 물론 현재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마라’의 맛은 쓰촨 정통의 맛이라 단언하기는 어렵다. 한국시장에 진입하면서 판매자들이 그 마라의 정도를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게 변형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불고 있는 마라 열풍은 세 가지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첫 번째 점심이나 저녁식사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마라탕을 대표로 한 ‘외식업’의 대폭 증가이다. 이는 중국에서 한국인유학생들이 즐겨먹던 대표적인 음식이기도 했다. 따라서 마라탕의 한국 상륙은 시기의 문제였지, 결코 우연히 온 것은 아니라 볼 수 있다. 현재 강남역 상권에 마라탕 전문점이 18곳이 영업을 하고 있고 전국의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도심지역에 그 체인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라화쿵푸’, ‘라메이즈’, ‘탕화쿵푸’, ‘라공방’ 등 그 체인 역시 다양해 경쟁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마라탕과 더불어 외식업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훠궈’, ‘마라샹궈’와 ‘마라롱샤’, ‘마라새우’ 등이다. 심지어 인터넷에서는 마라탕을 갈구하는 새로운 표현들도 유행하고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마라탕 이후의 대표주자는 ‘훠궈’와 ‘마라샹궈’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부산에서는 ‘쫜쫜훠궈’라는 1인 훠궈 전문점도 2018년에 생겨나 인기를 얻었고, ‘라라관’이라는 마라소고기전골을 전문 판매하는 음식점도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엄청난 파급력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출처: <카드뉴스> 대한민국 강타한 ‘마라 열풍’/매경이코노미/2019년 5월 23일.


두 번째, 편의점에서 부는 마라열풍이다. 아직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일단 맛보면 계속 먹게 된다는 마라는 편의점에서도 연일 신제품을 내놓으며 각축전을 펼치고 있다. GS25, CU, 세븐일레븐, 이마트24 등 거의 모든 편의점에서 마라와 관련된 신제품을 쏟아내고 있어서 정신을 못차릴 정도다. 편의점에서 내놓는 상품들의 이름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사진출처: Allure잡지 http://www.allurekorea.com/2019/07/30/%ed%8e%b8%ec%9d%98%ec%a0%90-%eb%a7%88%eb%9d%bc%eb%8c%80%ec%a0%84/

‘중화풍마라제육삼각김밥’, ‘꽐라돼지마라’, ‘마라닭발’, ‘마라볶음면’, ‘마라만두’, ‘마라탕면스낵’, ‘마라볶음 쌀국수’, ‘마라핫치킨도시락’, ‘마라닭강정’, ‘마라볶음삼각김밥’, ‘마라족발’ 등등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마라와 관련된 제품이 나오고 있지만, ‘혈중마라농도’, ‘마라권’, ‘마라위크’등의 유행어를 봤을 때 ‘마라’의 한국 연착륙과 정착은 기정사실로 봐야 할 것이다.


세 번째, ‘마라칸 치킨’, ‘마라볼케이노’ 등을 비롯한 치킨 배달업계 음식과 ‘포기하지 마라탕면’을 대표로 한 라면업계에서도 한동안 마라열풍이 불 것으로 보인다. ‘마라칸치킨’의 경우 인터넷에서 그 맛의 호불호와 관련해 극딜을 받고 있지만, 마라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한 번쯤은 먹어볼 계획을 가지고 있다. 또 ‘포기하지 마라탕면’같은 제품은 프로야구팀 가운데 하나인 한화이글스의 최근 성적과 맞물려 콜라보 제품으로 나온 사례로 한화이글스 팬들의 경기관람을 잠정 중단시키고 먹방계로 입문해 잠시 마음을 정화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익’을 내야 하는 입장에서는 ‘열풍’이 중요하고 ‘트렌드’가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음식문화적 현상의 이면에 좀 더 주목하고 있다. 이 너머에는 또 어떤 관점의 전환이 생겨날 것인지 사뭇 궁금해지는 여름밤이다. 이번 8월은 한국과 중국이 교류를 시작한 지 이미 만 27년이 되는 달이다. 27살의 ‘한중이’는 어느덧 어엿한 젊은이가 됐고, 그는 칭다오맥주와 마라에 빠져 있다. 하지만 그 두 가지가 한중이의 삶을 지배하지는 못할 것이다. 한중이의 40살, 50살, 그리고 60살을 장기적으로 관찰해야 한다. 중국의 음식문화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침투하면서 궁극적으로 중국의 대한반도 영향력이 얼마나 확장될 것인지 살펴보는 것은 한중관계의 미래를 예측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겨진다. 내 삶은 한중관계의 27년과 함께 해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정작 오늘밤의 현실 고민은 열대야가 지속되는 지금 이 기고를 마무리하고 중국산 칭다오 맥주느님과 한국산 삼겹느님의 은총을 받아야 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무더운 여름 노상과 작은 양꼬치 매장에서 수없이 먹었던 ‘꼬치’들이 그리워지는 밤이다.

젊었기에 더 맛있었던 그것들.

2018. 8. 30. 19:33

며칠 전 홀로 자취하는 집의 실내 형광등 세 개 가운데 두 개가 갑자기 깜빡이기 시작했다. 왜 이럴까 하고 보니 형광등 가장 자리가 새까맣게 돼 있었다. 그래서 형광등을 교체할 때가 됐구나 여기고 무심코 동네 마트에 들러 50W 미색형광을 두 개를 구입했다. 집에 들어와 형광등을 갈아 끼우고 이제 문제없이 살 수 있겠다 했지만, 그것은 나의 오산이었다. 분명 새 것인데 다시 '명멸'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관리사무실을 찾아 상황을 설명하니 당연하다는 듯이 "안정기가 문제인 것 같은데요."라는 답변을 받았다. 기억을 더듬었다. 작년에 분명 안정기를 교체했었는데 불과 1년 사이에 벌써 문제가 생겼단 말인가. 다시 생각해 보니 안정기를 하나만 교체했던 것이고, 교체된 안정기에는 교체 연도와 날짜가 적혀져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교체 날짜가 적혀 있지 않던 것이 탈이 난 것이 분명하다. 부산에서 살다보니 배운 사투리 가운데 하나가 '천지삐까리(많다. 넓은 범위로 널려 있다는 의미)'. 일상에서 생겨나는 사소한 문제들은 그야말로 천지삐까리다. 정말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역설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북중 관계'에 대한 글을 쓰기로 해놓고 한동안 무엇을 써야 하나 싶었다. 무엇보다도 현재의 북중 관계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세간에 잘 알려진 '오컴의 면도날'이라는 원칙이 있다. 어떤 현상과 사실에 대한 설명 중 논리적으로 가장 단순한 것이 진실일 것이라는 원칙을 의미한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는 이를 두고 '건전한 추론을 위한 방법론으로서, 단순성의 원칙 또는 논리절약의 원칙으로도 지칭된다고 풀이한다. 즉 동일한 현상을 설명하는 두 개의 주장 가운데 가정이 많은 쪽을 피하라는 것이다.

 

 

 

 

 

 

 

사진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집에서 명멸하던 형광등처럼 작금의 북한과 중국 간의 관계는 바로 '명멸하는 관계'라 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중국과 북한의 관계를 '순망치한'의 관계, 전통적인 우방 또는 혈맹관계, 또 정상국가와 정상국가간의 관계 등의 관점에서 이해를 도모했다. 일면 맞는 표현이다. 북한이 붕괴해 미국과 직접 마주치게 되는 것은 중국에게 영 불편한 일이다. 중국은 이러한 미래를 방지하기 위해 북한을 전략적인 안전판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역으로 북한은 핵과 중국을 활용해 미국에 대응하고자 한다. 또 한국전쟁에 함께 피를 나누면서 시작된 관계, 그리고 사회주의를 함께 실천했던 우방의 관계 역시 역사적 사실이다. 1992824일 한중수교와 1990년대 중후반 김일성과 덩샤오핑의 연이은 사망과 시대적 변화는 또 중국과 북한 간 관계를 정상국가간의 관계로 전환하게 하는 요소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두 국가 간의 관계를 전통적인 관점에만 의존해 판단해야 할 시기는 지났다고 봐야 적절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북한과 중국은 깜빡이는 관계인 것인가 설명이 돼야 한다.

 

 

한반도가 분단되고 냉전이 고착화됐을 때는 그저 북한과 중국은 우리의 명확한 '적'일 따름이었다. 하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환경은 크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북중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동하고 새롭게 재편된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중국의 개혁개방'이다. 중국은 개혁개방을 통해 전통적인 사회주의 노선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올해는 개혁개방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얼마 전 휴가 기간 중국에 여행 갔을 때 어떤 친구가 "나는 마오쩌둥이 좋아요."라고 했다. 순간 이 친구가 정치에 관심이 많구나 했지만 이 역시 나의 오해였다. 그 친구가 얘기한 것은 바로 마오쩌둥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100위안짜리 지폐였던 것이다. '사회주의'는 '사회주의시장경제'로 이행하다가 '자본주의'로 변질됐다. 중국사회는 급변했고, 중국인들의 시각도 나날이 변했다. 자본주의화 되고 개방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중국인들의 시각에서는 북한은 3대 세습 독재국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특히 2011년 말 김정일이 사망하고, 김정은이 그 뒤를 이으면서 중국의 온라인을 중심으로 북한을 희화화하는 여러 표현과 패러디가 유행했다. 라오바이싱(인민)을 대체적인 정서가 이러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중국 영도자들도 북한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북한의 연이은 핵개발과 미사일 도발만이 중국인들의 정서를 변화시키게 만들었던 것은 아니다. 중국 자체의 사회변화와 맞물린 자연스런 조정이었다. 김정은이 집권 이후 2017년까지 중국을 한 번도 공식방문하지 못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둘째, '한중관계의 시작과 발전'이다. 잘 알려져 있듯 중국이 한국과 수교했을 당시 북한은 중국에게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못했다. 이후 북한은 고난의 행군시기를 겪었고, 미국에 의해 스러져 가는 몇몇 독재자들의 말로를 두 눈으로 분명히 지켜봤다. 우리는 결코 그렇게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북한의 자각이었다. 핵과 미사일의 개발은 이로부터 기인했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시대적 변화 앞에서 북한의 체제를 보장받기 위해 가장 손쉬운 길이었다. 중국은 한국과 북한 양자 사이에서 미묘한 줄타기를 거듭했다. 한국의 중국에 대한 의존도, 또 중국의 한국에 대한 접점은 더욱 커져만 갔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중국을 결코 신뢰해서는 안 된다'라는 표현은 북한 지도부에게 현실로 다가왔을 것이다. 사회주의와는 고별하고 이제 두 나라 사이에는 '국가이익'만 남았다. 상호간 국가이익을 위해 서로를 활용하는 것만이 이제 시대적 사명이 된 것이다.            

 

 

셋째, '미중간의 관계에 의한 구조적 변화'다. 냉전시기 미국은 공동의 적이었다. 하지만 미중수교와 중국의 개혁개방 등으로 인해 미국은 중국의 친구이자 경쟁자로 그 역할이 변모되었다. 아니 사업 지분을 나눠 갖는 비즈니스 관계로 가고 있다는 것이 더욱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중국이 부상하면서 세계를 움직이는 두 국가 간 관계는 동북아 지역에서 고착화되고 구조화되어 가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국은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영향력 상실을 우려하고, 중국은 적어도 동아시아 지역에서만큼은 미국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지역강국으로서 거듭나기를 희망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북한의 지나친 도발은 매우 위험하다. 중국으로서는 북한의 도발을 억제해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존재한다.  하지만 최근 북한과 미국이 역사상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등 비핵화 문제의 급진전으로 미국과 북한이 너무 가까워지는 것 역시 달갑지 않다. 올해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을 세 차례나 방문하고 북한에 한 번도 가지 않았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방북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것에는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대목이 존재한다.

      

 

 

누가 더 잘 웃나 속에 감춰진 비밀은?

사진출처: 신화망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시대적 변화는 북중 관계를 보다 본질적으로 전환하게 만들었다. 중국이 북한을 포기할 것이다, 또는 중국이 북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리의 전통적 시각을 버려야 한다. 북중 간의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기 위해서는 북중 관계는 변화해 왔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모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2018년은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 변화가 그야말로 숨 가쁜 일정으로 이어졌던 해로 기억될 것이다. 김정은 세 차례 방중, 곧 있을 시진핑의 방북,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두 번의 만남과 앞으로 세 번째 정상회담도 예상된다. 아울러 트럼프와 김정은의 2차 정상회담 여부도 관전포인트다. 수많은 만남 속에서 그 어떤 결실을 맺어야 한다. '정전협정'과 '한반도 비핵화', 그리고 '한반도 평화협정 구축'이 의미 없는 만남이 되지 않을 수 있게 할 성과다.     

 

 

한반도에서 진정한 평화의 기운이 싹틀 때 북중 관계는 더 이상 명멸하지 않을 것이다. 평창에서 쏘아 올린 작은 공을 평양에서 발견하게 될 그 날을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 관리사무소 기사님이 휴가를 가신 관계로 안정기 문제는 며칠 더 기다려야 해 형광등 하나로 버티고 있다.)

 

 

동서중국 웹진 제2호 게재 원고.

2014. 12. 1. 23:30

일상을 에워싼 복잡한 개인사가 이어지는 와중에 한파가 몰아닥쳤다. 12월 1일, 눈과 함께 찾아온 추위를 뚫고 야간 강의실에 들어갔다. 지난 수업에서 발표하지 못한 4명의 학우가 발표가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지고 쉬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부터 시험 범위에서 제외한 '현대중국경제' 분야를 강의해야 한다. 2주간의 짧은 시간으로 말미암아 핵심만 짚어주겠다고 이야기하면서 몇몇 키워드를 칠판에 판서한 뒤 설명했다. PPT를 활용한 강의도 이어졌다. 



발표시간에 발표자 이외에 관심을 가지는 학우는 별로 없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학생, 넋놓는 학생, 자기 할 일 하면서 때때로 힐끔 발표자나 화면을 쳐다보는 학생, 나는 발표자의 지루한 발표(?)를 들으면서 동시에 학생들을 관찰하며 생각한다. 내 수업은 얼마나 관심이 있을까. 다행히 발표하는 학생보다는 준비를 더 하고 경험이 더 있어서인지 학생들의 발표 때보다는 내 수업의 집중도가 높다. 그래도 관심 없는 사람은 여전하다.



수업을 끝내고 나오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알량한 처지 또는 상황과 관계없이 어느덧 일정한 '영향력'이란 것을 내가 가지게 됐구나.' 비록 시간강사의 신분으로 하는 강의라고 하더라도 난 더 열심히 살아야 할 존재일 수밖에 없고 어찌 보면 덧없는 내 이야기를 듣는 몇몇 학생들도 있다. 이제 밤이 깊었고, 2014년의 12월도 시작됐다. 3주 후 나는 학생들에게 한 학기에 예닐곱 명의 선생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잊힐 것이다. 나도 이 학생들을 기억하고 잊을 것이다. 



이제 헤어지고 나면 매서운 추위 속에서 저마다 추위를 견뎌내며 봄이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왠지 올겨울은 상당히 추울 것 같다.   

2014. 11. 17. 05:42

차가운 겨울이 찾아오면서 엄청난 무력감을 느끼게 된 사건이 발생했다. 하루는 정신이 없었고, 다른 하루는 학교행사와 뒷풀이에 가서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결과적으로 이틀은 술로 기억을 '삭제(delete)'한 셈이다. 물론 속도 매우 좋지 않다.


오늘은 어떻게든 마감기한을 넘긴 일들을 넘겨야 해서 일단 꾸역꾸역 해서 넘기고는 넋을 놓고 있는 중이다. 뭘 하긴 했는데 제대로 한 건지 조차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어떻게든 가볍게 생각하며 스스로를 잘 다독여야 하는 시기인데 여기서 자칫 잘못 발을 내딛을 경우 한 학기를 통째로 또 날려버릴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두려움도 엄습한다. 


진짜 한파가 몰아닥칠 무렵에는 조금은 괜찮아질 수 있을까. 아니 당장 내일은, 또는 모레는 어떻게 지내야 할까 싶을 정도로 내가 염려되고 걱정된다. 계절의 매서운 추위보다 더 혹독한 마음의 시베리아를 온몸으로 맞이해야겠다. 똑바로 응시하고 두 눈을 질끈 감아서도 안되며, 모든 것이 순리임을 인정하면 좀 더 편해질 것으로 믿는다. 이렇게 쓰면 뭔가 엄청나게 토해낼 줄 알았는데 기진맥진한 탓인지, 아니면 자기검열 때문인지 막상 써지는 것도 별로 없다. 글을 써서 얻어지는 '해소(解消)'도 없을 줄이야...  


이 별의 일

너와의 이별은 도무지 이 별의 일이 아닌 것 같다.
멸망을 기다리고 있다.
그다음에 이별하자.
어디쯤 왔는가, 멸망이여.



심보선, 『눈앞에 없는 사람』,(서울: 문학과지성사, 2011), p.65.   

2014. 1. 11. 02:06

모교에서 이번 학기 강의가 지난 학기 6학점에서 3학점으로 줄었다는 이야기를 과사무실에 갔다가 조교로부터 전해 들었다. 강사법 유예의 충격과 학과의 내부사정 변화 등으로 어쩌면 담당 과목에 변동이 있겠다는 생각을 안 했던 것은 아니다. 마무리 지어야 할 일들도 많아서 올해까지는 강의 많이 맡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강했지만 그래도 모교에서의 학점 축소는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다음 학기 지역 내 타 대학에서 6학점을 맡았다는 것이 소문이 돌았던 것인지, 아니면 박사논문을 마무리하라는 선생님들의 순수한 배려인지, 그도 아니면 강사법 유예나 학과 전환 등의 다른 구조적 이유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겠거니 하는 추측을 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큰 변화가 동반되지 않는 이상 강사들끼리 칼을 빼 들고 싸우게 될 것이고, 인맥이 상대적으로 약한 강사들의 유혈이 낭자한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그래도 모교가 국립인 탓(1시간 8만 원)에 지난 학기 6학점 강의에 4주 192만 원(세전)을 받았다. 다음 학기에도 3학점으로 줄긴 했어도 타 대학에서 6학점을 받은 덕에 9학점으로 지난 학기 수입 비슷하게 그냥저냥 유지할 듯싶다. 물론 한 학기 15주라는 점과 고용보험, 소득세 등을 빼면 6개월 기준으로 110만 원(세후) 조금 넘는 정도밖에 안 되는 박봉이다. 아마 시간강사들이 대부분 비슷비슷할 것이다. 강사료가 1시간에 4만 원 정도 하는 사립대학 3곳 정도를 뛰어 15학점 정도 한다더라도, 160만 원(방학 포함) 정도가 고작일 것이다. 강사들의 수입도 천차만별이지만, 무튼 연구교수나 한국연구재단에서 별도의 지원을 받지 않는 이상 이렇게 저축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수입이 고작일 것이다.



일찍이 국비 조교를 해봐서 강사들의 삶이 어떤지 익히 알고 있었고, 훗날 내가 이런 모습이 되어 있을 것이란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학위취득 이후 시간이 조금 지나면 형편이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도 여전히 있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무력감을 감출 수 없다. 학위논문을 제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는 박사과정생의 시간도 아쉽고, 학위논문 이후에는 정말 얼마나 선택의 폭이 넓어질까 하는 의구심도 생긴다. 어느 정도 예측되는 미래를 조금이라도 조정하기 위해서는 순응과 침묵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한국사회에서(적어도 학계나 학교에서는) 돌부리처럼 튀어나온 인물이 되어서도 안 되고, 체제에 불응하는 반골이 되어서도 안 된다. 빼어난 실력으로 돌부리처럼 튀어나올 인물도 아니고 체제에 불응하는 반골이 되지도 않았지만, 나는 앞으로 이 불합리함에 되려 돌부리가 되어가고 반골이 되어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미치자 얕은 한숨이 나왔다.

 


일상적 생활을 하기에도 힘든 이 시기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20대 후반을 관통하는 시기에 정치사회에 온통 무관심했던 시절이 있었다. 경제적 삶이 피폐했고, 나 자신 하나 돌보기도 힘들었던 때였다. 그때만큼 절박하진 않겠지만, 당시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다. "나는 학생들 밥이나 술을 제대로 사줄 수도 없고, 어떤 부조리함에도 발언을 해서는 안 되는 강사이다." 이제 당분간 이런 주문을 스스로 외우기로 한다. 이제 현실이 그다지 슬프지도 않은 40대가 된 것이 더 억울하다.         

  

2013. 10. 15. 17:02

이번 학기에 중국의 사회와 문화(2) 주야간반을 맡아 58명의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고 있다. 다음주가 중간고사 기간이긴 한데, 한 주 당겨서 이번 주에 휴강하기로 했다. 중간고사를 치르지 않는 대신 휴강하고 다른 과목 시험준비 등을 하라는 취지이다. 

어제 야간반 휴강을 하면서 겸사겸사 시간되는 주야간반의 친구들과 저녁도 먹고 술도 마셨다. 수업듣는 학생들이 14명 정도 왔고, 수업을 듣지 않지만 온 친구들이 대여섯 됐는데 3차까지 같이 놀았다. 그런데 앞으로는 이렇게 중간고사 때 날을 정해 술을 마시면서 알아가는 것보다는, 틈틈이 그룹별로 밥 한끼씩 같이 먹고 시간되면 커피 한 잔 마시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다. 왜냐면 술이야 내가 좋아서 날짜 정해 마시는 거니 내 편의대로라는 생각이 문득 스쳐서다.

기왕이면 학식이나 도시락가게를 벗어나 삼겹살이나 좀 더 맛있는 찌개백반이면 좋겠다. 나도 돈이 없어 집에서 가져오라는 생활비도 이번 달에는 눈을 감아야겠지만, 학생들은 더 돈이 없다. 그리고 선생들과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는 것이 처음이라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주 '중국음식에는 계급이 있다'는 다큐를 보여주었더니 여태 수업시간 가운데 학생들이 가장 집중력 있게 보더라. 한국음식에는 적어도 세대별로 계급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심청아 배고파'에서 먹는 5,200원짜리 '대패삼겹살' 보다는 '삼거리식당'에서 먹는 10,000원짜리 '생삼겹살' 사줄 수 있을 정도로는 돈 더 벌고 싶다. 강사 중에 그나마 젤 부르주아계급이니 할 수 있는 소리다.

2013. 4. 5. 01:54

본 학원은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서 합의가 이루어졌고, 일본의 무조건 항복 이후 동아시아 한반도지역에 개설되었습니다. 본 학원은 한반도를 무대로 하여 냉전의 역사적 산물을 조성함으로써, 당초 미소간 이데올로기 경쟁과 군사력을 비교하고 힘의 대결을 연구하고 실증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됐습니다. 학원설립 후 45년간의 냉전을 통해 각종 최첨단무기를 효과적으로 전시하고 판매하였습니다. 북한지역은 본래 구소련과 중국이 공동 관리해왔으나, 중도에 중소분쟁 등으로 인해 일시적으로는 독자적 노선을 걷기도 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중국이 공동대표에 취임해 일하고 있습니다.

1990년 냉전체제가 해체되고, 1994년 제네바합의가 이루어지면서 북한과 미국의 수교를 통한 한반도에도 평화가 찾아올 것이냐는 장밋빛 전망도 잠시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1년 9.11사태가 일어나면서 부시행정부는 북한을 3대테러국(이란, 이라크, 북한)으로 지정 후 제네바합의를 파기했습니다. 한편, 미국은 중동지역에서 끝내 발견되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를 찾는다면서 이라크를 침공했고, 그 와중에 중동 제2의 산지인 이라크의 석유를 갈취하는 등의 효과를 거두기도 했으나 이슬람근본주의자들과 투쟁에 휘말리면서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이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등을 거쳐 구보의 행군시기로 돌입한 북한은 한때 햇볕정책을 내세운 남한정권과 처음으로 두 차례에 걸친 정상회담을 치루는 등 사이좋은 시기를 보내는 듯 했습니다.

그 후 21세기 마지막 제국 미국에 최초의 흑인대통령인 오바마가 취임하면서, 이전 정권에서 중동지역에 싼 똥을 치우는 중차대한 임무를 맡게 됩니다. 아울러 이 기간에도 북한은 끊임없이 미국에게 구애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미국은 '내 코가 석자야.' 라고 하며 '전략적 인내'라는 그럴싸한 표현으로 외면했습니다. 미국의 거듭된 거절로 북한은 중단했던 핵개발을 서둘렀고, 이 문제를 관리하기 위한 6자회담이 개최되었습니다. 북핵을 관리하기 위한 수석위원장 자리에는 중국이 새롭게 취임하며, 책임대국의 면모를 보여주겠다며 의욕적인 모습을 적극적으로 보입니다. 몇 년째 계속된 이 회담에서는 ‘한반도 비핵화, 미국의 대북 불가침 의사 확인’등을 주 골자로 하는 2005년 9.19공동성명이 발표되기도 했고, 후속으로 2.13합의와 10.3합의 등이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세부적인 사항과 후속조치에서 상당한 난항을 거듭하였고,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북한은 미국의 한층 더 미지근한 태도에 실망,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다시 핵개발과 더불어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합니다. 이후 한반도에는 연평도포격사건과 천안함침몰사건이 벌어지면서 그 배후로 북한이 지목되었고, 미국 대신 한반도를 관리하겠다는 이명박정부의 호언장담에 의한 5.24조치 등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 조치로 그나마 있던 남북교류도 개성공단을 남겨둔 채 거의 끊기게 되었고, 북한은 더욱 더 곤궁해짐에도 불구하고 핵과 미사일개발에 모든 판돈을 다 걸게 됩니다.

한편, 2011년 북한을 2대째 세습하던 김정일이 사망하고, 그의 아들 김정은이 그 자리를 물려받게 됩니다. 너무나 젊은 나이에 최고의 자리에 앉은 김정은의 자리는 꽤 불안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아바이 동지가 물려주신 유산을 토대로 김정은은 꽤 높은 수준의 핵실험과 미사일기술을 획득하였고 선군정치의 완결을 선포하고, 이제는 선경정치의 길로 가겠다며 다시 한 번 주변강대국과 한국에 손을 내밉니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는 ‘평화발전’하겠다는 중국을 주목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G2와 차이메리카(Chimerica)라는 이름을 선사하며, 중국을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심장으로 추대하는 일련의 움직임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의 표현처럼 국가는 부강하지만, 국민은 아직 소강사회에도 이르지 못했다는 ‘발전중국가’인 중국은 이에 난색을 표하는 한편, 전 세계 지식인들은 중국을 둘러싼 각종 논쟁을 본격적으로 벌이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구태한 중국위협론과 중국기회론이 다시 횡행하기 시작했고, 이를 가만히 지켜보던 미국은 언제 떠난 적도 없는 아시아태평양 복귀전략을 실행하겠다면 설레발을 치기 시작합니다. 그 가운데 앞서 언급한 북한의 미사일 성공발사와 3차 핵실험은 미국의 이러한 대전략에 꽃놀이패를 안겨주는 부수적인 효과를 가져다주게 됩니다. 아울러 북한의 독자적 행동으로 대북한 영향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받고 있는 중국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시진핑 시대의 출발과 더불어 표정관리에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가급적 간략하게 소개했지만, 본원의 목적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관리’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본원에 소속된 남한과 북한의 속내도 각각 다릅니다. 남한지역은 오랜 군사독재와 민주화의 시기를 거쳐 진보와 보수정권이 연이어 들어섰고, 한때 어려웠던 IMF를 극복하고 어느새 중견국가에 들어섰다는 대내외적인 평가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냉전시기 오랜 군사독재와 87년체제 이후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영향으로 사회내부는 각종 격론과 담론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또한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민중은 한층 심각한 양극화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지역은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3대세습에 성공하였지만, 지난 20여 년간 그렇게도 바라던 미국과의 수교는 여전히 한낱 유토피아에 불과하고, 그나마 있던 남북교류도 중단되면서 북중경협에서 나오는 푼돈을 받으며 사회통제를 근근히 이뤄나가는 중입니다. 김정은과 그 충성세력은 비자금으로 잘 먹고 살고 있지만, 이제 그도 유엔의 제재 등으로 힘든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곧 위대하신 김일성 주석의 생신이신 태양절도 다가옵니다. 민중은 신음하고 있지만, 대부분 그게 신음인지도 모릅니다.

북한과 한반도를 둘러싸고많은 담론과 소문, 루머들이 다시 횡행합니다. 한편, 남북한 민중들이 어렸을 때부터 듣고 배우며 자랐던 ‘통일’은 요원하기만 합니다. 또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괴이한 소문도 다시 돌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한반도에서는 이와 같은 일들이 비일비재했습니다. 하지만 본원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본원의 대주주에는 간혹 변동이 있었지만, 현재 실질적 권한과 의사결정은 어디까지나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양대 강대국에 있습니다. 재차 강조드리지만, 우리학원의 설립목적은 ‘영원한 관리’에 있습니다. 관리를 통해서 발생하는 각종 수익은 모두 대표를 맡고 있는 강대국에 귀속됩니다. 7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한반도관리학원에서 정규직 경리를 담당하는 남한과 한시계약직 감독을 맡고 있는 북한정부의 권력층과 기득권계층도 우리의 이 원대한 목표에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줄 것이라 믿습니다. 만에 하나 계약직이라는 대우에 불만을 품은 북한정권의 반란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러한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본원은 일시 폐업될 수도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러나 본원은 남북한 민중의 땀과 노력을 다시금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사용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본 학원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지속적인 성원 부탁드립니다.

2013년 봄, 한반도관리학원 공동대표 올림.

2012. 6. 16. 02:34

예전에도 그렇게 느꼈지만, 다시 봐도 참으로 오만한 詩이다.  그래도 대단한 흡입력의 도입부와 종반부를 가진 시. 이 시를 kbs 드라마스페셜 연작시리즈 '아모레미오'에서 정웅인이 암송했다고 해서 흥미삼아 봤는데, 생각보다 은근 수작이다. 80년대 중반 운동권 무대를  배경으로 가짜대학생과 프락치 사건을 중심으로 사건이 벌어지긴 하는데, 사실 25년간의 과거와 현재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4부작이라 좀 길긴 한데 재미있으니, 기회되면 꼭 보시라~


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

Thou art more lovely and more temperate:

Rough winds do shake the darling buds of May,

And summer's lease hath all too short a date:

Sometime too hot the eye of heaven shines,

And often is his gold complexion dimm'd;

And every fair from fair sometime declines,

By chance, or nature's changing course untrimm'd;

But thy eternal summer shall not fade,

Nor lose possession of that fair thou ow'st,

Nor shall death brag thou wander'st in his shade,

When in eternal lines to time thou grow'st;

So long as men can breathe, or eyes can see,

So long lives this, and this gives life to thee.


제가 당신을 여름날에 비교해 볼까요?

당신이 더 사랑스럽고 온화해요.

강한 바람이 오월의 귀여운 꽃봉오리를 흔들고

여름의 정한 시간은 너무 짧아요

가끔 태양이 너무 뜨겁게 작열하고 

자주 태양의 황금빛깔이 흐려져요

모든 아름다움은 언젠가는 기우는데 

불행이나 어쩔 수 없는 자연의 변덕 때문이에요

그러나 당신의 영원한 여름은 스러지지 않고

당신이 소유한 아름다움도 없어지지 않을 거예요

죽음은 당신이 자신의 그늘에서 방황한다고 뽐내지 못하고

이 시의 영원한 구절들 때문에 당신은 불멸이에요

사람이 숨을 쉬고 있는 한, 눈이 볼 수 있는 한

이 시가 존재하는 한 당신은 영원히 기억 되어요



-영원한 여름 : 아름다움  

-Sonnet 18, 'Sonnets' by Shakespeare


*sonnet: 14행의 짧은 시로 이루어진 서양 시가. 각 행을 10음절로 구성하며, 복잡한 운(韻)과 세련된 기교를 사용한다. 13세기에 이탈리아에서 발생하여 단테와 페트라르카에 의하여 완성되었고, 셰익스피어, 밀턴, 스펜서 등의 작품이 유명하다. 




점차 채도를 잃어가는 초어스름의 기숙사 앞 전경

[출처] Sonnet 18|작성자 은아

[출처] Sonnet 18|작성자 은아

2012. 5. 26. 19:10

나만의 인생 

                                                        -하재연

내 눈동자는 나의 것
눈썹을 깜박이는 것도 나의 의지입니다
고개를 돌려 당신을 바라보는 것도 나의 의지
내 손의 나의 것
담배를 피우거나
비벼 끄는 것은 나의 의지입니다
연기가 피어올라 공중으로 사라져가듯,
나의 말은 나에게서 나와
당신에게로 흘러들어갑니다
당신이 나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면
그것은 내 뜻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어느 날 당신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
거리에 불이 켜지면
나는 거리로 나갑니다
어느 날 가로등들이 꺼졌다 켜졌다 하듯이
당신은 누군가를 만나게 되고
나는 쏟아지는 불빛을 거리에서 맞습니다

나의 의지는 나만의 것이지만,



요즘 종종 마실가는 어느 커뮤니티에서 발견한 시다. 글을 쓴 사람은 '소통'의 슬픈 실패를 용기있게 담아낸 시라고 표현하였다. 이에 매우 동의한다. 내가 살아온 20대와 30대 전체를 관통하는 서사는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지금 어느 지점에 위태롭게 서 있을까란 생각에 이르자 순간 또 먹먹해지고 만다. 


위의 시를 아래처럼 바꿔보면 어떨까. 다른 느낌이 물씬하다.


당신만의 인생 



당신의 눈동자는 당신의 것
눈썹을 깜박이는 것도 당신의 의지입니다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것도 당신의 의지
당신 손의 당신의 것
담배를 피우거나
비벼 끄는 것은 당신의 의지입니다
연기가 피어올라 공중으로 사라져가듯,
당신의 말은 당신에게서 나와
나에게로 흘러들어옵니다
내가 당신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면
그것은 당신의 뜻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어느 날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
거리에 불이 켜지면
당신은 거리로 나갑니다
어느 날 가로등들이 꺼졌다 켜졌다 하듯이
나는 누군가를 만나게 되고
당신은 쏟아지는 불빛을 거리에서 맞습니다

당신의 의지는 당신만의 것이지만,



2012. 4. 12. 03:51

예상보다 마음이 담담했다. 하지만 이건 분명 내 덕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길지 않은 기간에 너무 많은 일들이 폭풍처럼 일상을 휩쓸고 간다. 그 안에서 많은 것들을 발견했고, 현재와 미래를 추동하는 강력한 힘이 될 것이다. 그래도 조금 심란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피곤한데도 잠이 쉬이 오질 않는 걸 보면... 최상이 아닌 최선이라 생각했지만, 그것 역시 틀릴 수 있다. 공부할 때 반론할 수 없는 정상적이라 여겼던 것에 대한 부단한 의문과 반박의 견지는 학문적 깊이를 더해준다. 사실 올해 내 새해 소원은 생활을 이처럼 살 것이란 것이었다. 우리의 삶을 감싸는 곤혹스러운 기류와 권태의 트라이앵글을 넘어 오늘을 기억한다.  

2012. 4. 8. 22:24

교수님! 건강하게 지내시죠? 한 2년 있으면 대학 입학한 지도 20주년이 되네요. 마음은 늘 대학생인데 몸은 벌써 이렇게 되어버렸네요. 가끔은 멈춰서서 이 세월이 어떤 의미였는지 곰곰히 생각해봐야겠네요. 여기서는 페북이 막혀 우회접속해야 하는데, 친구목록을 보다 딱 멈춰져서 이런 버릇없는(?) 글 남기고 갑니다. 환절기인데 감기 늘 조심하시구요!

페북을 잠깐 했는데 윗 글은 학부 은사의 페북에 방금 남긴 글이다. 정말 2년 있으면 대학에 들어온 지도 20년, 그 분도 정직으로서 출발을 한지도 20년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일종의 동기 사이라 규정할 수 있겠다. 어느덧 내가 잠시 가르쳤던 학생들이 그 분과 같이 겹치게 되었다. 18년의 세월이 제자의 제자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렇듯 가끔 관계가 오래된 사람들을 볼 때마다 지난 날을 돌아보게 된다. 지금 내가 처한 시공간적 영향이 전연 없다고 한다면 거짓이겠지만, 여튼 좀 먹먹해진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람들은 가끔씩 멈춰서 산다는 게 무엇인지, 내가 살아온 길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하고 되짚어 볼 것이다. 근데 딱 거기까지다. 절대 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아갈 생각은 쉽게 하지 못한다. 앞으로 살아갈 더 많은 날들, 즉 미래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서일까, 아니면  모든 것을 벗어 던지고 지난 날로 투항할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일까. 속도와 전진만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 결국 중요한 것은 '방향'이라는 것을 모두 인지하고 있다. 허나 결코 좌회전을 하기 위해 속도를 줄일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마 도처에 잠복해 있다 불시에 들이닥치는 그 의외의 '사고'가 우리를 멈추게 만들것이다. 평생을 달리고 연습해도 우리는 언제나 초보운전.

※ 총선이 다가오네요. 저는 지지난주 금요일에 예서 재외국민 투표했어요. 잊지 말고 투표하세욧~ 

2012. 3. 23. 05:05
현우: "은결인 엄마를 좋아했니?"
은결: "음. 어려선 미운 적도 많았는데 커선 좋아하게 됐어요.
        돌아가실 땐 무지 슬퍼서 또 무지 미웠구요.
        지금은 그냥 그리워요."
현우: "좋아했단 거구나."
은결: "엄마는 외톨이에 외골수에 고집쟁이였어요."
현우: "그건 니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어."
         "외톨이에 외골수에..."
은결: "고집쟁이요."
현우: "그래, 고집쟁이."
은결: "실은 저도 그래요."
현우: "그렇겠지."
은결: "우리집 식구 피가 다 그렇구나."
        "근데 그게 뭐 그렇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현우: "아니지."

내 30대의 영화 가운데 하나: 오래된 정원, 2007, 아빠 현우(지진희 분)와 딸 은결(이은성 분)의 엔딩 대사 가운데.


얼마 전부터 다시 보려고 생각만 하다 오늘에서야 다시 봤다. 중국에서는 여기서 봤는데 한국에서는 아마 열리지 않겠지?
http://www.letv.com/ptv/vplay/1366682.html
중국어제목은 古老的庭院이고,소설은 故园이란 제목으로 중국에서 번역출판된 바 있다.
영화보다는 1,2권으로 되어 있는 소설이 훨 먹먹한 것은 사실이다.
'이은성', 내가 최근 가장 좋아하는 배우 가운데 하나인데, 국가대표 출연 이후 아예 자취를 감추었다. 아마 은결이란 이름 순우리말인 '은결들다'에서 따온 말인 듯... 뜬금없지만 굳이 외톨이에 외골수에 고집쟁이가 되지 않더라도 능히 삶의 벼리를 엮어나갈 수 있는 시대였으면 좋겠단 생각을 해본다.



한윤희: "당신은 그 안에서, 나는 이쪽 바깥에서 이 한 세상을 다 보냈네요. 정말 힘들었죠? 하지만 이제 우리 이 모든 나날들과 화해해요. 네? 흉하죠?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네요. 현우씨, 사람의 몸이란 게 이렇네요... 내게 당신은 언제나 가물가물한 흔적일 뿐이었어요. 그치만 죽음을 앞에 둔 지금 내 인생에는 당신 뿐이었다는 걸 느껴요. 여보, 사랑해요."

- 한윤희(염정아 분)가 오현우에게 보내는 마지막 대사(편지) 가운데.-
2011. 8. 31. 02:20
살아가면서 버려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 수많은 사적 언급들이 있어 왔다.
그 중에서도 과연 우리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버리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스스로 바르다고 생각하는 가치와 사회적 기치와 관념을 버리지 말아야 하는 것으로 상정한다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것들을 과감히 버려야 하는 순간도 결국은 오고야 만다.
난 이 둘을 관통하는 '우리'라고 생각한다.
나를 위해 우리를 지켜야 하고, 더불어 우리를 위해 나를 버려야 한다. 
이 둘이 교차할 때 진정한 소통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2011. 7. 2. 06:41
일본어 시험이 끝나고, 하루가 지났다. 목요일 밤에 술 마시고 새벽에 깨어 혼자 놀다가 아침에 잠이 들었고 대낮에 깨었다. 다음 주에 기말논문 쓰기 전에 무작정 쉬어볼까 해서 하루 종일 거의 누웠다 앉았다 하며 컴퓨터로 영화를 실컷 봤다. 저녁 사러 한 번 나가면서 담배 사고, 음료수를 산 거 이외에는 누구랑 대화 한 번 변변히 하지 않은 하루였다. 심심했지만, 외롭지는 않았다. 영화를 세 편 보고, 이제 낮잠이란 영화를 뒤늦게 보려고 한다.

틈틈이 인터넷을 하다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제도권을 벗어날 수 없는가.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제도권에 들어가는 선택을 했지만, 정작 제도권 안에서의 공부는 점차 틀에 갇혀 있다. 독창성이란 것도 결국 형식과 제도 내에서는 다 거기서 거기다. 조금 다르게 포장한 것을 두고 독창성 있고 창조적이라고 이야기하는 세상이다. 결국 이 안에 있으려면 입맛에 맞는 어떤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데, 그게 과연 내가 맞는 일인가 싶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기 위한다는 변명으로 제도권에 있지만, 그 변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내가 있어야 한다. 결국 별 욕심이 없다 말하지만, 정작 헤아려 보면 현 제도권에서 가지를 쳐서 나온 다른 권력에의 참여일 뿐이다. 난 정말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가. 

다시 여름, 열대야는 시작되었다.
2011. 6. 25. 03:58
불쑥 서로의 삶에 깊숙하게 혹은 얕게 개입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이것은 비록 얕고 깊음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언제나 상호적이다. 개입에는 개인적 이익이 전제되기도 하지만, 순전히 책임(도덕적인 혹은 여타 다른 어떤 것)에 의한 것도 있다. 이익이 우선시 될 때는 일반적으로 파탄에 이르게 되고, 책임이 우선시 될 때는 상생의 길을 도모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적어도 타인의 삶에 대해서 만큼은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2011. 5. 13. 22:17

근대에 대해서는 수없이 많은 논쟁이 있어왔다. 언제부터 근대로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시작하여  근대의 성격에 대한 각론들을 비롯해 '근대'에 대한 소문은 풍성하기 그지없다. 이 서구가 만들어 낸 가장 큰 불량품이 '자본주의적 근대'라고 할 수 있겠지만, 요즘은 이보다 더 불량품은 국가란 이름으로 자행되어 왔던 '폭력의 근대'가 아닐까 싶다. 문명과 문명이 만났던 지점부터 문명에서 비문명지역에 이르기까지 폭력은 늘 우리 곁에 살아 숨쉬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발전해가는 '과학적 근대'에 현대인들은 매몰되어 있다. 깨어 있는 지식인이라고 다를 바 있겠는가. '진보와 보수의 근대'라는 것도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빈 라덴의 사살을 기점으로 소위 세계의 보안관 미국이 정의의 승리를 위한 축배를 들고 있다고 한다. 9.11테러의 주범으로 지목된 자를 사살했으니 정의가 승리했다는 것이다. 불과 몇 년전 흑인으로 처음 미국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세계적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버락 오바마의 책임 하에 말이다. 

오바마 당선 당시는 어떠했는가. 다른 나라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의 경우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민주주의의 발전에 대해 긍정적 평가와 더불어 개인적 기대가 만연했다. 게다가 부시 아저씨에게 질렸던 시대를 종식하고 이른바 진보라 하는 민주당 출신의 대통령의 시작이니 세계 도처에서 진보라 스스로 자임하는 사람들의 기대는 정말 대단했으리라. 

그런 기대조차도 돌이켜 보면 서구가 만들어 낸 '근대'의 정형돈식 늪에 빠져 허우적댄 것이 아닌가. 복수를 했어도 진보이니 눈감아 줄 수 있다? 혹은 우리 나라에서 벌어진 일도 아니고 우리의 생활과는 밀접한 관련이 없으니 수수방관해도 좋다?

나는 근대가 만들어 낸 국가의 폭력을 혐오하고, 자본주의로 인해 고유한 인간사회의 이성이 말살되어가는 것도 증오스럽다. 하지만 '진보'와 '보수'놀이를 하는 정치적 인간들은 더더욱 싫다. 아울러 종교를 이용해 장난치는 자들도 짜증난다. 이것에 대한 근거는 가까운 역사를 보면 이런 것들은 충분히 드러난다. 

이토 히로부미, 처칠, 히틀러, 마오쩌둥, 사담 후세인, 체게바라, 박정희, 전두환 등 지금 떠오르는 근대의 몇몇 인물만 봐도 그렇다. 이 가운데 겉으로는 평화를 이야기했던 사람도 있지만 비폭력을 실천했던 사람은 오로지 '간디'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결국은 대체로 '이상향'에 대한 설득력 있는 주장이었다 하더라도 투쟁이란 이름 하의 다른 형태의 폭력이었을 뿐, 비폭력이나 평화를 위한 제대로 된 실천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시대적 맥락에 비춰 보았을 때, 이상실현을 위한 폭력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 이해하듯 말한다. 난 이 역시도 서구가 만들어 낸 '정당한 폭력의 근대'의 덫에 빠진 것이라 본다.   

난시통쉬에. 일본어 시간에 본 "甜甜私房猫 "(한국에서는 '치즈 스위트 홈'이란 제목이더구만)란 만화인데, 무척 재미있더라구. 한 편이 모두 3분 이내라 끊어서 보기도 편하고, '한 가족과 길냥이의 성장기'라고 할까. 유빈이가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영상 보면 좋아할 거 같아. 뽀로로 대통령만 봐서는 안 되잖아? 한국에서 구현이 잘 될려나 모르겠다. 한국 사이트에도 검색해 보면 영상이 있는 거 같더라구... http://www.youku.com/playlist_show/id_1573226_ascending_1_mode_pic_page_2.html



2011. 4. 6. 02:10

토요일 이후 지독히도 누워 있었던 관계로 이제는 출타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기는 내일이 기다려지는 한편, 기다려지지 않는다. 네 시간 가량은 책을 읽었고, 영화를 이십 여 분 보다 말았다. 빨래를 개었고, 세탁한 운동화의 끈을 매었다. 내일의 끈을 매기 위함은 아니었고, 단순한 가사의 사소함이었다. 냉동실에 얼려 두었던 밥을 전자렌지에 돌려 두 끼니를 먹었는데, 침대에 앉아 김치찌게와 어묵볶음을 차례로 먹으면서 렌지에 돌린 밥알의 일부가 굳어 버리는 현상에 궁금증이 일었으나 더 이상의 추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좀 쉬었다는 결과로 밀린 일에 대한 적지 않은 압력을 스스로에게 주고 받고 있다. 아프던 다리에 파스를 두 번 붙였다가 떼었는데 오히려 가려움증 때문에 지금은 벌겋게 일어난 상태이다. 어쩔까 고민을 하다 걷지 않으니 통증이 사라져 다시 일 주일 정도 경과를 보기로 했다.

담배를 한 대 물어 피웠다. 그제부터 삼분의 일 정도 흡연량을 줄였다. 담배 몇 대 줄이는 것도 은근히 금연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냥 이미지에 불과한 것이지만, 소화가 잘 되지 않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 더 흡연하고 싶다는 자가최면이다. 현관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우게 되면 1층 현관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종종 목도하게 된다. 젊은 남녀인데 옷차림이나 얼굴의 생김새 등을 보고는 중국 사람일까 한국 사람일까 의미없는 유추 놀이를 하였다. 결론음 금세 나기 마련이지만, 담배를 피우는 짧은 시간 동안에 내가 곧잘 하는 놀이가 되었음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 순간 공간적 혼동이 다시금 나를 흔들어 깨운다. 집안이라는 아주 작은 공간이라던가 학교라는 단층적 공간에 있을 적에는 나의 공간의식은 비교적 선명한 편이다. 그런데 간혹 이 밖의 공간에 있을 때 가끔 이 곳이 어디인가 하는 혼란이 발생하고는 한다. 며칠 전 3호선 지하철 역에 오래된 일본 친구를 바래다 주고 그 밑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우적우적 입 안에 넣던 그 시각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고, 또 그 전에도 몇 차례 이런 경험들이 있었다. 과연 공간적인 문제일까. 아니면 어느 미묘한 시간적 교차가 만들어 내는 환상인지도 모르겠다.

은희경의 『새의 선물』을 보면 이런 문장이 나온다. "삶도 그런 것이다.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405쪽.) 이 표현에 꽤나 공감을 표했지만, 오늘은 그러기 싫다. 난 오늘을 우연도 미필적 고의도 아닌 필연적인 생활을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냉소적인 사람은 삶에 성실하다. 삶에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언제나 자기 삶에 불평을 품으며 불성실하다."(251쪽)란 문장에도 반박을 하고 싶다. 삶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현실에서 목에 가득 힘을 주며 살아가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란 생각에 이르자 내가 앞으로 어떤 결과를 내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다시 머리를 쳐든다. '왜'라는 것, '무엇 때문에', '설명을 하는 이유' 에 대한 모든 것들이 사실 현실적 결과를 위해서이다. 삶이 이렇게 현실적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인가란 의문이 들자 나오는 얕은 한숨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때로는 심상한 하루가 심상치 않은 모든 것을 생산하기도 할 것이다.      

2010. 12. 20. 07:32

나는 편의점에 간다. 많게는 하루에 몇번, 적게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나는 편의점에 간다. 그러므로 그 사이, 내겐 반드시 무언가 필요해진다.

(.........)

큐마트에 다니면서 내가 한 가장 큰 착각은 푸른 조끼의 청년과 사적인 말을 하지 않으므로 내 사생활이 전혀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데 있었다. 내가 아는 큐마트는 '어서 오세요'와 '감사합니다'의 세계였다. 그의 관심은 그가 파는 물건에 나의 관심은 내가 사는 물건에 있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큐마트를 오래 다니다보니 나는 뜻밖에 의도하지도 원하지도 않은 내 정보들이 매일매일 그가 들고 있는 바코드 검색기에 찍혀나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컨대 그는 나의 식성을 안다. 대여섯 종류의 생수 중 내가 어떤 물을 가장 좋아하는지, 자주 사가는 요구르트가 딸기맛인지 사과맛인지, 흑미밥과 쌀밥 중 무엇을 더 선호하는지 등을 말이다. 원한다면 그는 내 방의 크기도 추측할 수 있다. 쓰레기봉투를 매번 10리터를 사가는 나는 결코 큰 방에 살고 있을 리 없다. 그는 나의 가족관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새벽마다 와서 햇반을 사가는 여자, 필수품을 스스로 사는 어린 여자, 젓가락은 한개만 가져가는 그 여자는 독신이리라. 그는 나의 고향을 안다. 편의점에 겨울옷을 정리한 택배를 부치러 갔을 때, 그는 수수료를 받으며 내 주소를 확인했다.

(........)

그는 나의 식생활에서 성생활에 이르기까지 모두 '보고'있다. 왜냐하면 편의점이란 모든 걸 파는 곳이기 때문이다. 큐마트는 나의 가장 오랜 단골이 된 덕에, 청년은 내게 한마디의 사적인 대화를 걸지 않고도, 나에 대해 그 어떤 편의점보다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나도 모르는 나의 습관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

나는 편의점에 간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나는 편의점에 간다. 그사이 그곳에선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큐마트의 푸른 조끼의 청년이 몇번 바뀌었으나 그곳의 남자들은 항상 푸른 조끼를 입고 있으므로 상관없다. 몇번 더 휴대폰을 충전하러 갔으나, 사장들은 충전기를 없애고, 일회용 배터리를 들여놓았다. 몇번의 폭설이, 장마가, 안개가 있었으나 그것은 원래 그런것이므로 상관없다. 이따금 '말'이 듣고 싶을 때 당신은 수다쟁이 사장이 있는 세븐일레븐으로 가라. 비디오방에서 서로를 안았던 어린 연인을 퇴학시킨 선생은 컵라면을 사 먹고, 아이를 지우게 한 남자는 목이 말라 맥주를 사러 왔고, 아직도 아버지께 꾸중 듣는 백수 청년은 오늘도 담배가 떨어졌을 것이다. 그리하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한 이 기록은 마침내 시시해진다.

한번도 휴일이 없었던 그곳에서 나는-나의 필요를 아는 척해주는 그곳에서 나는-그러므로 누구도 만나지 않았고, 누구도 껴안지 않았다. 내가 편의점에 갔던 그사이, 나는 이별을 했고, 찾아갔고, 내가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 거대한 관대가 하도 낯설어 나는 어디를 봐야 할지 몰라 서성이고 있다. 당신이 만약 편의점에 간다면 주위를 잘 살펴라. 당신 옆의 한 여자가 편의점에서 물을 살 때, 그것은 약을 먹기 위함이며, 당신뒤의 남자가 편의점에서 면도날을 살 때, 그것은 손을 긋기 위함이며, 당신 앞의 소년이 휴지를 살 때, 그것은 병든 노모의 밑을 닦기 위함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당신은 이따금 상기해도 좋고 아니래도 좋다. 큐마트, 세븐일레븐, 패밀리마트는 모른다. 편의점의 관심은 내가 아니라 물이다, 휴지다, 면도날이다. 그리하여 나는 편의점에 간다. 많게는 하루에 몇번, 적게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나는 편의점에 간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사이, 내겐 반드시 무언가 필요해진다.

출전: 『달려라 아비』, 창비 2005

문장의 문학집배원에서 가져옴. 동영상으로 낭송과 영상을 다시 보고들을 이는 아래를 클릭.

http://www.munjang.or.kr/mai_multi/djh/content.asp?pKind=05&pID=18

2010. 12. 15. 00:50

'가을, 잠시 빛났던 30대 고백'은 아래의 시 네 편의 제목을 조합한 것이다. 근래 시크릿가든이란 드라마를 보니 작가가 이와같은 작법으로 여러 소설집과 시집의 제목들을 모아 조금은 감성적인 글을 만들어 낸 것이 장안의 화제(?)라고 한단다. 글쎄, 내 생각에는 반댈세~라고 말하고 싶지만은 시크릿가든을 옹호하는 수많은 여성동지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싶지는 않다.

알바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시집을 뒤적거리다 문득 이 생각에 이르자 기존에 알고 있던 시 가운데 세 편을 골라내고 마침 가지고 있던 시집 가운데 하나의 제목을 조합하니 상기와 같은 문장이 만들어진다. 뭐 자료들과 약간의 감수성 정도만 있다면 누구나 쉽게 조합해 낼 수 있는 형태이다. 뭐 이런 조합방법에 대한 주절주절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뭐랄까. 일련의 갈피들이 결국 사람 사이의 '사랑'이란 단어로 귀결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칼끝을 내 자신에게 돌려 복기한다. 시들의 내용을 다시 더듬고 나니 더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사랑. 30대에 접어 들어 했던 사랑의 대상에 대한 그리움에는 얼만큼의 진정성을 띠고 있었을까. 나이에 쫓겨 혹은 외로움에 쫒기듯 고의적으로 찾았던 사랑은 아니었는지. 쉬임없이 흘러가는 하루의 무료함 속에 단지 '달콤함'으로 포장된 사랑이란 허상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한 때는 사랑에 대해 이론적으로나 실천적 측면에 있어 무지막지한 자신감(?)을 보유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 지금 여러 단편들을 꺼내어 재차 꿰맞추어 보고 나니 자신감의 상실 정도가 아니라 내가 이제 진정성을 가진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조차 의심스러워진다. 삼십대의 사랑이 아니, 머리가 굵어지고 하는 사랑이 대개 그런 것임을 머리로는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아직은 가슴은 받아들일 수 없다. 몸은 형편없이 낡아 버렸지만, 아직 한 가닥 청춘만은 남아 있다는 믿지못할 믿음의 발로 때문이다.

아직은 그리움의 전깃줄에 감전된 나를 원한다. 중층적 이미지로 승화된 완전한 시크릿가든식 사랑이 아니라 어리숙하지만 신열에 들뜬 사랑을. 무모한 감전을 꿈꾼다.


1. 가을

         -함민복-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2. 잠시 빛났던

              - 최승자-


(잠시 빛났던 어느 외재적 불빛

아스라하다)


쉬임없이 하루하루가 흘러간다

詩도 담배도 맛이 없다

세월아 하 짧아

詩 한 편, 담배 한 대에

한 인생이 흘러간다


(공허여, 허공이여)


3. 삼십대

        -심보선-


나 다 자랐다, 삼십대, 청춘은 껌처럼 씹고 버렸다. 가끔 눈물이 흘렀으나 그것을 기적이라 믿지 않았다.

다만 깜짝 놀라 친구들에게 전화질이나 해댈 뿐, 뭐 하고 사니, 산책은 나의 종교, 하품은 나의 기도문,

귀의할 곳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 공원에 나가 사진도 찍고 김밥도 먹었다, 평화로웠으나, 삼십대,

평화가 그리 믿을 만한 것이겠나, 비행운에 할퀴운 하늘이 순식간에 아무는 것을 잔디밭에 누워 바라보았다,

내 속 어딘가에 고여 있는 하얀 피, 꿈속에, 니가 나타났다, 다음 날 꿈에도, 같은 자리에 니가 서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너랑 닮은 새였다(제발 날아가지 마), 삼십대, 다 자랐는데 왜 사나, 사랑은 여전히 오는가,

여전히 아픈가, 여전히 신열에 몸 들뜨나, 산책에서 돌아오면 이 텅 빈 방, 누군가 잠시 들러 침만 뱉고 떠나도,

한 계절 따뜻하리, 음악을 고르고, 차를 끓이고, 책장을 넘기고, 화분에 물을 주고, 이것을 아늑한 휴일이라 부른다면,

뭐, 그렇다 치자, 창밖, 가을비 내린다, 삼십대, 나 흐르는 빗물 오래오래 바라보며, 사는 둥, 마는 둥, 살아간다

 

4. 고백

      -고정희-


너에게로 가는

그리움의 전깃줄에

나는

     


2010. 11. 27. 03:32
"바람이 분다.
마른 나뭇가지들이 허공을 할퀸다. 긴 코트 차림의 여자들이 길고 곧은 머리칼을 나부끼며 종종걸음 친다. 어디선가 날아온 흰 전단지가 택시 앞유리의 와이퍼에 걸려 세차게 퍼덕거리다 찢기며 다시 날아간다."
한강, 『바람이 분다, 가라』.(서울: 문학과 지성사, 2010), p.76.

상하이의 겨울바람은 유명하다. 아직 이곳은 겨울도 아닌 그렇다고 가을도 아닌 어정쩡한 날씨이다. 낮에는 상온 15도에서 18도까지 기온이 오르지만, 이렇게 바람이 부는 날에는 일기예보에서 말하는 최저온도인 8도 이하로 체감온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때문에 옷입기가 굉장히 난감한 날들이 지속되고 있다. 잠시 정도야 괜찮겠지 하고 창가에 나가 창을 활짝 열고 담배를 태웠다. 그게 화근이었을까, 두통으로 모든 신경이 몰리고 있다.

오늘은 이곳에 와서 알게 된 석사생 젊은 여자선배(?)와 저녁을 함께 하였다. 단언컨대 처음 와서 어렵사리 대학원 후배와 한 번 식사를 한 이후로는 처음 갖는 이성과의 식사자리였다. 이성과의 만남을 강조하려는 것 보다는 사실 이곳에 와서 누군가와 약속을 하고 식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희소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곳에 같이 왔고 집도 같이 얻었던 하우스메이트는 학교에서 같이 온 친구들이 많아 늘 바쁘고, 또 학교 형을 통해 소개받은 제법 젊은 남자친구는 도서관 친구로 발전되어 한동안 밥동무 겸 말동무 역할까지 충실히 되었지만, 최근 그 친구에게도 중국 친구들이 생겨 슬슬 만남의 횟수가 적어지고 있던 찰나였다.  물론 일주일 전 10학번 박사반 친구들과도 늦은 개강모임을 하면서부터 나 역시 사교의 폭(?)이 조금은 넓어지고 있기는 하다. 다만 기본적으로 박사생들은 각자 할 일들이 많아서인지는 수업 시간이 끝나면 으레 뿔뿔이 흩어지기 마련이라 아직 정기적으로 만나 '대화의 가뭄'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하물며 아직도 형편없는 중국어로 떠들어야 하는 관계로 내밀한 대화의 수준은 바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정말 대화가 가물었기 때문이었을까. 오늘 자리를 함께 한 친구는 아마도 나 때문에 꽤나 혼이 났을 법하다. 나이 들면 말이 많아지는 법인데, 외국에 있는 나이 든 사람이 하는 얘기가 좀 많았을까 싶다. 게다가 대화상대가 꽤나 친절하고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는 착한 성격의 소유자인 것 같아 마음이 좀 많이 풀렸던 것 같다. 술 한잔 하지 않고, 4시간 가까이 떠들었으니 오늘 나의 한국어 구사는 아마도 상해 정착 이래 최고의 양을 기록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날부터였다고 생각한다. 그 순간 당신이 내 손을 잡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손의 원소가 내 손의 원소와 같다는 것을 간절하게 실감했기 때문이라고. 아니, 모르겠다. 많은 시간이 흘러서가 아니다. 당신에 대한 기억은 어떻게도 단언할 수 없다. 모른다고밖에는. 모든 것이 덩어리로 다가왔다고밖에는. 스며들고 번져갔다고밖에는. 당신의 그림 속에 떨고 있던 모세혈관들처럼."
위의 책, p.62.

한 사람의 말을 받고, 또 나의 말을 상대방에게 준다는 것은 아주 용이한 것이지만, 그 말들이 상호간에 얼마나 온전히 흡수되느냐에 따라 인간관계의 폭이 결정된다. 그것은 위의 글에서 말하는 것처럼 실재하는 것이다. 한국보다 늦은 상하이의 겨울이 곧 찾아오게 되면 정말 추위와의 전쟁을 치뤄야 한다. 난방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전기장판 하나로 겨울나기를 시도해야 하는;; 또 손발 불어가며 타자도 쳐야 한다니, 아~ 안 그래도 겨울이 끔찍한 나에게는 정말 그저 쉽게 흘려 들을 수 없는 현실이다.

헤어지고 집에 들어와 한국사람들끼리 주고받는 중국어 문자질을 생각해 봐라. 이 역시 조금은 재미있는 상황이다. 내가 예전부터 흔히 하는 농담 중에 하나가 별다른 운동 없이 호흡 운동 하나만으로 삶을 지탱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만큼 게으르고 운동 하지 않는 스스로의 삶을 비유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물리적인 호흡만을 뜻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만큼 중의적인 말이지만, 상호간 중국어 전달의 한계 탓인지 오늘 만난 그네는 '삶에 있어서 건강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니 건강에 주의했으면 좋겠다.'라는 덕담을 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그런 따뜻한 말을 해주는 사람도 처음이라 무척이나 감사한 일이다.  

역시나 유형적인 것보다는 무형적인 것들이 더 큰 효력을 발휘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바람이 불어 몸은 흔들리지만, 마음은 흔들리지 않는 밤이다. 오늘 함께 한 그 친구에게도 내 존재가 조금은 따뜻한 힘이 되었다면 좋겠지만, 역시나 말을 너무 많이 한 것은 아무래도 '미친 존재감'을 여실히 증명한 것이리라.  

한편, 말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줄어들면서 보수화 된다는 측면이 있다. 아~이것 역시 스스럼없이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인가. 


사족: 북측의 연평도 도발사건은 유학생들에게도 초미의 관심사이다. 중국 친구들도 사건이 발생한 다음 날에 바로 의견을 물어볼 정도로 역시 관심이 많은 상황이다. 조지워싱턴호의 서해행이 우려대로 최악의 수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울러 3~4일의 시간동안, 뉴스도 무척이나 관심깊게 지켜봤는데, 새 국방부 장관 낙점과 관련된 이 뉴스는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다. 연평도 포격도발에 대한 군의 대응을 보면서 MB가 군에 대한 불신을 자주 나타냈다니... 물타기도 이런 물타기가 또 있을까 싶다. 군의 통수권자는 바로 대통령 아니던가. 무릇 윗사람이라면 자신의 책임부터 통감해야 함은 자명한 사실일 터인데... 군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 우습다.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중지를 모아 위기를 넘어서야 하는 바로 이 순간에도, 자신의 말바꾸기를 옹호하기 위해 끊임없이 정치적 계산을 일삼고 있는 이를 어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외국에 나와 있는 사람 마음도 이와 같을지언대 고국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싶다.
2010. 11. 13. 06:32

언젠가부터 '일하듯 공부하기'라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쉽게 풀이하자면 요즘 근로추세에 맞춰 1일 8시간, 주 40시간은 최소한 공부를 해줘야 한다는 개념이다. 물론 이 시간 안에는 학기 중의 수업시간도 포함되어 있다. 수업이 있는 날은 그만큼 공부량이 줄 수도 있겠지만, 수업시간에 비례해서 또한 그만큼의 야근시간(?)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것이야 주중에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 푹 쉬어주는 뭐 이런 형태겠지만...^^;


사실 공부에 욕심을 가지게 되다보면 1일 8시간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오전 9시부터 하루를 시작한다고 가정하자. 학기 중이라면 평균 1일 2~3시간의 수업이 잡혀 있을 터(이것도 모두 오전이라 가정해 보자), 이 시간을 제외하면 점심 먹고 오후의 댓 시간 남짓 한 시간이 남는다. 저녁을 먹고, 야근을(?) 두 세시간 정도 해 주고 퇴근한다 하자. 그럼 9시~10시가 훌쩍 넘는다. 집에 와서 인터넷 질도 좀 하고, 티비도 좀 봐 주고 그러다 보면 잠 잘 시간도 부족해지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고시생이 아닌 이상(고시생은 정말 물리적인 시간과의 싸움이라 할 수 있다.), 충분한 수면량까지 조절할 필요는 없다. 개인 차에 따라 6~8시간은 충분히 자야 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


시간에 맞춰 수업에 참석해야 한다는 것 이외에는 학생만큼 자기 시간 조절 가능한 직종이라고는 이들을 가르치는 선생 밖에 없다. 물론 선생들도 학생과 비슷한 패턴으로 살아야 한다. 강의하는 시간 이외에는 수업 준비와 자기 공부를 해야 할테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우리가 학생이란 것에 너무나 쉽게 면죄부를 준다. 그리하여 여기서 사귄 친구들과의 관계도 돈독히 해야 하고, 또 인터넷을 통해 요즘 유행한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인맥관리도 해야 한다. 또 각종 경조사(해외 유학생은 여기에서 일정한 해방을 누림)도 챙겨야 하고, 한국에 있는 친구, 가족도 챙겨야 한다. 아. 연애도 해야 하지. 또 생활에 필요한 이런저런 잡일도 해야 한다.


이렇게 열거하고 나니 '학생'이 참 바쁜 직종이다. 이렇게 바쁜 직종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가 발급 면죄부에 의한 괴로움이 시작된다. "아~ 나 이렇게 놀아도 되는 것일까. 뭐 하루 쯤이야 어때.^^; 남들도 나랑 비슷하지 않겠어! 오늘은 컨디션이 그닥 좋지 않으니 좀 쉬고 내일부터는 열심히 아자아자~" 이런 날들이 축적되는 어느 날에는 이제 두 가지 길 뿐이다. 하나는 내가 학생인지 백수인지 모를 정도의 '목적 상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뭔가 스스로 괴롭긴 한데 당최 이유를 알 수 없는 '심적 고통'이다.


반면 미친듯이 공부하는 사람들에게서도 문제가 발견된다. 매일매일 많은 것을 놓아가며, 공부를 함에도 불구하고 뭔가 알 수 없는 불안감은 점차 커져만 간다. 성공, 취업, 인정, 중층적인 여타 욕망들. 나름대로의 반듯한 목적이 있음에도 허전한 것은 공부가 결국 그 어떤 수단에 됨에 있다.


"지식인의 사유는 끊임없이 사유 그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식인의 사유는 이 되돌아봄을 통해서 언제나 사유 그 자신을 특이한 보편성으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무리 어린 시절부터 주입된 계급의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이미 보편적인 것을 획득했다고 스스로 믿는다고 할지라도, 지식인의 사유는 바로 이 되돌아봄을 통해서 사유 그 자신을 이 계급의 편견에 의해 은밀하게 특이화된 보편성으로 파악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사르트르, 지식인을 위한 변명, 박정태 역, 63)


선배 형의 블로그에 인용된 글귀를 나 역시 인용해 본다. 엉아는 '선비는 없고 영혼없는 테크니션들만 들끓는 현실'을 비판하기 위한 글이지만, 난 뭐 아직 테크니션도 아니니 비판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적극 동의한다. '성찰'없는 공부란 있을 수도 없고, 기계적인 공부에도 '성찰'이 개입되지 않는다면 바로 무의미한 것이 되어 버린다.


그렇다. 난 '목적'과 '성찰'의 변증법적 관계에 주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는 '가치'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가치란 것은 관점에 따라 가차없이 재단되어 버리는 것에 불과할 지 모르겠지만... 고스톱은 고와 스톱을 얼마나 적시에 잘 활용하느냐에 결정적이겠지만 공부에는 스톱이 없다. 일단 시작하면 끝까지 '고'일 뿐이다. 다만 내가 고스톱(?)을 시작한 동기와 가치에 대한 반성이 요구될 뿐이다. 소싯 적부터 고스톱을 즐긴 까닭은 같이 즐기기 위함이었다. 공부도 이와 마찬가지다. 열심히 해야 같이 즐길 수 있고, 또한 즐길 수 없다면 열심히 한 보람도 없을 것이다.        


참... 이야기가 샛길로 빠졌는데 공부하는 것에는 물리적 시간만큼 사유의 시간(아마도 노는 것?)도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2010. 7. 4. 04:28

곧 세차게 내릴 것 같은 날씨임에도 장마기간은 그답지 못하고 소강상태에 있다. '기후변화'라는 말이 한창 각광을 받는 중이다. 알 수 없는 것이 날씨라고 하지만, 그동안 인간들의 꽤나 오랜 관찰 속에서 기후는 결국 일정한 법칙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목하 심각한 변환의 상황에 처해 있지만, 사람 마음처럼 그 파고의 고저가 심할까 싶다.

만 하루 넘게 심하게 너울치던 내 마음도 일시 소강상태에 접어 들었다. 가족과 내 일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는 주위의 관심 때문이다. 한없이 벼랑 밑으로 내던져진 기분도 별다른 말없이 식사를 챙겨주는 어머니와 몇 통의 전화를 통해 날 위무해 주었던 인생 선후배들의 몇 마디 덕에 한결 나아졌다.

인간이란 본디 고독한 존재임을 다시금 상기한다면 이는 물론 거짓으로 점철된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역할이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예정보다 다소 이른 목요일 오전에 중국 상해 복단대학으로부터 정식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3분의 1의 성공이란 말 밖에 할 수 없지만, 유학생활에 필수적인 학비, 거주비, 생활비 가운데 학비를 면제해 주겠다는 자그마한 문구는 불안 반, 희망 반의 하루를 보내게 해주었다. 다음 날 오후 늦게, 한국정부 국비유학생 합격자 발표가 있었던 탓이다. 허둥지둥 면접을 보고 난 직후에는 솔직히 많은 기대를 품었다. 그런 다음 짧지 않은 대기기간동안 점차 깊은 불안감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었지만 말이다. '탈락!' 기대가 컸던 만큼 상처도 급속도로 밀려 들었다.

자조 섞인, 그리고 애달픈 하루 반을 보냈다. 이 시각에 얼마의 사람들이 기쁜 일이 있었겠고, 얼마의 사람들은 또 좌절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사실 거짓말이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못했고, 온전히 나 하나를 간수하지 못했다. 마치 침 흘리는 어린아이의 해맑은 미소와 같았다면 혹시 모를 일이다. 허나 그런 것을 기대하기에는 내 자존이 참으로 영글지 못했다. 무참하고, 여러 가지 기시감에 시달렸다.

몇 단계를 거쳐 이내 소강상태. 이런 소강상태 끝에 잠시나마의 휴식기간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제 내가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을 하고 보니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좀 더 독립적인 여건을 조성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스스로의 원망이 다시 치솟는다. 그러나 거기 까지다.  또 내가 좀 더 잘 준비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자책으로 이어진다.

주위를 둘러본다. 결국 사람의 삶이란 것이 별다른 것이 있을까 싶다. 이제 30 후반을 바라보는 나이라 한다 해도 넘어지고 깨지는 일은 허다하다. 나로 인해 상처받고, 타인에 의해 더 깊어지고 치유받음을 반복한다. 꽤나 인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순 없다. 늘 착각하고 지내는 것에 불과하니까.

번민의 터널에 다시 진입하든, 혹은 소강상태가 한동안 지속된다 해도 마찬가지이다. 난 곧 하나의 선택을 하게 될 것이고, 그 길을 갈 것이다. 그 와중에 잠시 돌아갈 수도 있고, 많이 번거롭더라도 헤쳐 나갈 수도 있다. 언제나 결정적인 것은 '내가 걷던 길'에 대한 후회와 기쁨 뿐이니까 말이다.    

2010. 5. 15. 04:17
몸은 끝내 이틀을 버티지 못한다. 방안에 틀어박혀 있는 일상이 못내 지겨운 저녁, 영화시간표를 뒤적거려 근처 극장을 단촐히 찾았다. 상영시간이 임박하여 매표소에 선 나를 위해 남은 표 달랑 한 장. 임상수 감독의 '하녀'를 먼저 관람하였다. 카타르시스가 없다. 홍보물에서는 '서스펜스'를 언급했는데, 그마저도 그저 그렇다. 출연진이 화려하니 연기력이야 두 말할 필요없다. 다만 이정재와 서우의 딸 나미의 함초롬한 표정과 눈망울만이 남았다. 재기발랄하지만 그래도 선겁다. 

종영 후, 남는 30분동안 인근 분식점을 찾아 주린 배를 채웠다. 줄담배를 성급히 피우고, 캔커피 하나 사서 다시 극장에 진입. 이번에는 이창동 감독의 '시'를 보기로 한다. 연달아 본 두 영화에 대한 느낌을 굳이 표현하자면 '비일상'과 '일상'의 대결이라고 할까. 결국 일상이 승리하는 형국이다.

미자 분의 윤정희가 김용탁 분의 김용택에게 묻는다. "어떻게 하면 시를 쓸 수 있나요?", "아무리 시상을 떠올리려 해도 떠오르지 않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에게는 그 말들이 이렇게 들린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나요?", "아무리 행복해지려 해도 그렇지 않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김용탁은 말한다. "시가 죽은 시대입니다." 정작 현실에서도 영화에서도 그는 시를 쓰는 시인이다.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영화는 "꽃처럼 살고 싶은데, 일상을 일상처럼 살고 싶은데... 그러하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자는 문화원 강좌 수강생 중에 유일하게 시를 써서 제출하는 유일한 사람이 된다. 시와 다른 일상이 펼쳐졌는데 시를 쓰고야 말다니...

마지막 심야영화였던지라 나와 함께 관람한 관객이라고는 달랑 5명. 극장에서 내려오는 엘레베이터 안에서 그들 중 두 명이 말한다. "지루해서 죽는 줄 알았는데 왜 걔는 별점 다섯 개란 말을 했어." 일면 일리있는 말이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대중적이진 못하지만, 이처럼 대중적인 영화가 흔할까 싶다.

우리 주위에 널리고 널린 일상을 놓치고, 영화 전반에 흐르는 강물을 놓친 탓이란 생각을 했다. 차를 몰고 집에 돌아오는 한적한 도심. 지하차도를 통과하며 올라오는 길에 환한 가로등이 시야에 들어오고, 이내 앞 차량들의 후미등도 눈을 자극한다. 순간의 밝음에 가려 나머지를 보지 못한다.

일상이란 이와 같다.

몇 가지 더 흥미로운 사실. 윤정희의 본명이 손미자라는 점. 그리고 다음 검색에서 잡히는 윤정희의 주연 출연작만 232편이라는 것. '시'의 평점은 최고점을 향해 달리고 '하녀'의 평점은 혹독하다. 주목받는 '하녀'에 대한 소식은 인터넷에서 흔히 접할 수 있지만, '시'에 대해서는 유달리 심드렁하다. 별점주는 것은 꽤나 무의미한 일이라 생각하는 편인데, 굳이 준다면 4.5를 주고 싶다. 나머지 0.5개는 이창동 감독의 이후 영화들에 바친다.



2010. 4. 14. 03:18

돌이켜보면 삶의 대부분을 불안정이란 녀석과 동거해왔다. 불안정은 나의 친구였고, 애인이었으며, 삶의 동반자였다. 대체로 안정된 삶을 영위하는 것을 '행복'이라 가정할 때, 내 삶은 어쩌면 행복과는 다소 동떨어진 행보를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행복이란 것은 언제나 개별적인 판단과 잠시간의 심리적 상태에 의존하는 것이라 했을 때 행복이란 것이 과연 무엇인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살면서 겪는 불안정의 행태는 각양각색이다. 불투명한 자신의 미래에 대한 걱정, 그리고 사랑으로 인한 알 수 없는 불안정, 불안정한 경제적 상황, 그리고 끊임없는 자아와의 충돌 등이다. 결국 불안정은 격퇴시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또 다른 안정을 위하여.

이를 위한 수단 역시 각양각색이다. 초기에 진화하는 방식, 일정한 시간이 흐른 다음에 치유하려는 방식, 그리고 마지막까지 자신을 몰아가는 방식. 나는 세 번째 형태의 사람이다. 언제나 내 자신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가는 것이 나만의 방식이자 또한 나만의 치유법이었다. 현실적으로 현명한 방법은 초기 진화 방식이다. 일찍이 이를 인지하여 진압하는 방식은 현실적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는데, 나는 늘 그렇지 못했다. 언제나 한 가지 문제점에 직면하면 내 자신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간다. 이른바 '바닥론'이라 할 수 있는데 바닥을 치고 나면 치유가 된다고 믿었다. 그런데 과연 그랬을까. 또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모든 것이 서서히 치유되고 제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오늘은 도리어 그렇지 않은 것이란 생각이 문득 든다. 아니 어쩌면 진정성의 문제로 환언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나 스스로 나는 진정으로 진실되었노라고 주문을 외는 것이었을지도, 혹은 진정성을 가진 것이라 스스로 최면을 걸었을지도 모른다고.

이 글을 적는 지금에도 나는 조금도 진실되지 않다. 무엇이 나를 진실되게 하지 않는 것인지, 그리고 과연 무엇이 나를 진정으로 진실되게 만들 수 있는 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그리고 알 수 없겠지만 끝내는 알고 싶다. 당신들의 진실은 무엇이고, 감추는 것은 무엇인지. 한낱 글 따위로 감추는 것은 어디까지인지. 나의 블로그를 통해 묻는다. 어디까지 진실인지를. (정말로 진실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다 한다면 말이다.)

'불안정'은 나를 만든다고 했었다. 하지만 '불안정'은 나를 삭제시키기도 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 삶은 아직 엷디 엷다는 것이다.

2010. 3. 20. 01:04

1. “잠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잠시 멈췄으면 좋겠어요."


음악을 듣거나 영상 등을 볼 때 '일시정지'라는 편리한 기능이 있다. 우리가 원하는 바로 그 순간 일시정지할 수 있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이 매혹적이다. 허나 우리의 삶이나 사랑에는 '일시정지'란 것은 없다. 삶이나 사랑은 붙잡고 싶어도 하염없이 흘러가는 강물처럼 우리의 마음을 위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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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저씨 말대로 신분의 사다리를 한 칸이라도 올라가고 싶었어요. 또 언젠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그 사다리를 죽기살기로 올라가면 또 다른 누군가가 그 밑에 있겠구나. 결국 못 올라간 사람의 변명이지만...”


지붕뚫고 하이킥의 주인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신세경'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바로 우리 자신들이었음을 상징하는 대사이다. 올라가려고 해도 올라갈 수 없는 현실, 설령 올라간다 해도 느낄 수 밖에 없는 허탈함.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끝없이 주저하는 우리네 인생.  일찍이 김PD가 밝혔듯이, '빈부의 격차'를 소재로 한 한 소녀의 성장기가 될 것이라 하였다. 만약 준혁이와 세경이의 해피엔딩으로 끝났다면 시청자들이 공감했을까. 의사를 사랑한 가정부. 아니 가정부를 사랑한 주인집 아들(준혁)과의 연결이었다 하더라도 시트콤은 현실적 막장으로 치닫았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 지붕킥은 이런 현실적 조건을 모두 거부하고 '사랑'을 정면에서 다룬 무모함을 보여줬다. 만약 내 가족과 주위의 이야기라면 대체로 이들의 사랑을 부정하지 않겠는가.

  


3. “지금도 가끔 그런 부질없는 생각해. 그날 병원에 일이 생겨서 나한테 오지 않았더라면. 오더라도 어디선가 1초라도 지체를 했다면... 하필 세경씨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만났어도 바래다 주지 않았다면...”



언제나 과거의 편린들로 인해 고통받는 나와 너. 그리고 우리. 그렇지 않았더라면 하고 바라보지만, 언제나 그렇지 않은 삶의 '의외성'들.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이와 같은 '의외성'과 발가벗은 채로 대면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4. “그래도 마지막에도 이런 순간이 오네요. 아저씨한테 그동안 마음에 담아놓은 말들. 꼭 한 번 마음껏 하고 싶었는데. 이루어져서 행복해요. 앞으로 어떤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늘 지금 이 순간처럼 행복했음 좋겠어요.”


세경, 그녀의 소원대로 되었다. 나도 원했던 것이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바랄 것이다. 언제나 지금처럼 행복한 순간을... 그것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고, 또 언제나 오지 않을 수 있고, 시점이 다르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변하지 않는 사실은 그저 앞으로 다가 올 봄처럼 짧다라는 점이다. 


5. 인터넷 포털 Daum의 지붕킥 관련 기사에서 "지붕킥, 결말 어떻게 보셨나요?"라는 Poll이 진행중이다.
http://media.daum.net/entertain/view.html?cateid=1032&newsid=20100319202306535&p=newsen
(0시 24분 현재 3808명 참여, 10.03.19 ~ 진행중)
'색다른 마무리에 공감한다'가 666명으로 17.5%, '허무하고 아쉽다'라는 의견에 79.4%(3,024명)의 시청자가 동의를 표했다. 그리고 '의견보류'에 3.1%(118명)



나는 79.4%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 마음은 이해한다. 이 투표결과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여전히 왜곡된 사회의 모습을 외면하고, 해피엔딩을 바란다. 알면서도 이런 결과를 자초한다는 것에 이해를 표시하면서도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느낀다. 개인적인 생각이다. 세경과 준혁의 관계, 지훈과 정음의 관계는 현실의 눈에서 볼 때 '안정적인 관계'에 지나지 않았다. 세경은 자신의 마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현실에 반하는 '고백'을 하고 만다. 그렇게 고백만으로도 '사랑'은 충분할 때가 있다. 반면, 지훈이 진정 사랑하고 설렜던 사람은 누구일까. 시청자 각자의 판단에 맡겨야 할 문제지만. 난 결국 세경이었음을 얘기하고 싶다. 두 커플 모두 순조롭게 잘 되는 것을 시청자들은 원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기에 이와같은 불만을 토로하는 것일테고. 사랑은 현실적으로 엇갈리는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지붕킥의 엔딩은 공감 못할 것도 없다. 이 시트콤은 '이 시대의 사랑'과 '굴절된 이 사회'에 대한 예리한 시각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남을 것이다.        



6. 마지막 장면의 BGM, 레이첼 야마가타(Rachael Yamagata)의 'Duet'



마지막 장면에 흘러나온 곡이다. Oh, Lover, hold on. 'till I come back again. (오. 나의 사랑 그대로 있어줘요. 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으로 슬픈 음색과 멜로디로 시작된다. 레인 라몬테인(Ray Lamontagne)이란 가수와 함께 불렀고 그녀의 2집에 이 곡이 담겨져 있다. 하이킥이 '일시정지하'자 음악도 '정지'하였다. 그것은 영원한 정지인지, 그야말로 일시정지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지붕킥의 BGM 역시 매우 훌륭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티비를 통해 버려지는 시간이 참 많은데, 가끔은 버려지지 않는 순간도 있음을 느낀다.



이 글을 그동안 나에게 즐거움과 감수성을 되살려줬던 '지붕뚫고 하이킥'의 많은 제작진과 연기자들, 그리고 함께 공유하였던 또 무엇인가 공유하고 싶은 모든 사람들에게 바친다.  


2009. 8. 25. 00:59

"인연이 그런 것이란다, 억지로는 안 되어.
아무리 애가 타도 앞당겨 끄집어 올 수 없고,
아무리 서둘러서 다른 데로 가려 해도 달아날 수 없고잉.
지금 너한테로도 누가 먼 길 오고 있을 것이다.
와서는, 다리 아프다고 주저 앉겄지. 물 한 모금 달라고."

                                            -최명희의 혼불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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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용민의 그림마당」,『경향신문』, 2009년 8월 24일 월요일.
2009. 5. 23. 20:19
"비주류에서 비주류로 떠나간 그에게 우리는 모두 공범."

(나는 노 전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지자도, 반대자도 아님을 밝혀둔다.)


아침 10시경, 나가야 할 일이 있어 씻으며 노트북을 켰다가 포털 메인의 차마 믿을 수 없는 제목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이윽고 TV를 켜니 그 믿을 수 없는 기사의 확인. 밖에 나와 있으면서도 틈틈히 쏟아져 나오는 뉴스를 봤고, 방금 사무실에 잠깐 들어오면서도 특별호외를 읽었다. 먹먹하단 표현으로는 지금의 감정을 모두 표현할 수 없다.

인터넷과 언론의 여파를 익히 알고 있는터라, 또 누군가의 죽음을 화제거리로 삼는다는 것 자체가 망설여지기도 했었다. 박연차 게이트 이후 우리는 얼마나 많이 그에 대해 이야기했던가. 청와대, 정치권, 그리고 검찰은 검찰대로 정보를 흘리기 바빴고, 언론은 그것을 재생산하였으며, 또 우리 대중들은 확대재생산의 순환을 요구하였다. 일파만파. 나 역시 언론보도들을 보면서 피의자로서의 존엄이 지켜지길 원하면서도 또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에 대한 남은 실날같은 애정 역시 사그라지는 것이라 생각하고 주위 사람들과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

우리들의 끝없는 설화(屑話)와 설화(舌禍)는 결국 그를 투신자살로 이끌었고, '낡은 한국정치가 만들어 낸 비극'이라는 외신보도는 사태의 본질을 관통하는 제목이었다. 그의 솔직하고 직선적인 화법에 우리는 역시나 직선적인 지지철회로 돌려 주었고, 그는 모든 것에 대하여 '죽음'으로 답했다. 우리는 모두 고개 숙일 수 밖에 없다.
 
2002년, 그의 정치실험에 우리는 환호를 보냈다. 그러나 환호는 잠시였다. 정치개혁의 누적된 피로는 그에 대한 환호를 일순간에 거두게 만들었다. 그러나 과연 모든 것이 그의 탓이었던가. 그 자리가 대통령의 자리였기 때문이었지만 어찌 보면 우리의 인내심이 너무 부족했던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한동안 온 나라가 어수선할 것임이 자명하다. 그리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그의 죽음이 의미하는 바를 깨끗하게 망각할 것이다. 봉하마을과 지금 인터넷에 온통 가득한 부엉이 바위까지 모두 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주류'로 살다 갔지만, "삶과 죽음이 하나가 아니냐."는 유서의 내용은 비주류는 정작 우리 자신이었음을 깨닫게 해준다.

12시간도 안되는 짧은 시간동안 엄청난 분량의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가운데 그가 퇴임 직후 했던 한 마디가 내내 가슴을 친다.

"이 정도면 괜찮은 대통령인데, 국민이 영 눈이 높아 안쳐준다."

그에 대한 애도보다는 당분간 혼자 부끄러워 하며 지내겠다.    
2009. 5. 12.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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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이라는 것은 자유의지와의 연관성을 비롯한 다방면의 철학적인 테제들을 안겨준 바 있지만, 굳이 어려운 단어들을 꺼내지 않아도 인간이라면 누구든 언제나 이 문제에 직면하고는 한다. 오늘은 또 하나의 작은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패를 잡을 것인가 하는 문제로 같이 공부하는 친구에게 잠시 유선상으로 주절주절 털어놓았던 바가 있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다른 친구와 술을 마시면서도 이런 선택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그 친구나 나는 조언이 필요했던 것일까. 어쩌면 주위 사람들의 조언을 구하는 행위는 한 템포 쉬어가는 형태의 일종의 자기 숨고르기가 아닐까. 저기 저 너머 부유하고 있는 부유물들을 모두 건질 수 없다. 하지만 그 부유물들이 사라지기 전까지 무엇을 고를 것인가란 생각 정도는 할 수 있겠지. 그것이 조언을 구하는 과정이자 선택을 내리는 과정이기도 하다.


뻔한 얘기지만 선택이 때로는 너무 힘든 순간이 있다. 한 순간의 선택으로 가슴을 쥐어 뜯으며 통곡하는 이도 있고, 반면에 희열에 차 오르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선택의 중요성은 차치하고라도 그 결과의 파장은 예측가능한 범주를 이미 초월하는 것이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주말에 별세하신 서강대 장영희 교수의 기사들을 몇 토막 읽었다. 평생 목발에 의지해 살면서도 세 차례에 거친 암과의 투쟁. 결국 장영희 선생은 그 정해진(?) 운명을 거스를 수 없었다. 나보다 스물 두해를 더해야 하는 쉰 일곱해를 살아오면서 그녀는 얼마나 많은 선택을 해야 했을까. 아마도 그녀나 나나 각자가 살아 온 세월만큼 그 선택의 수량의 차는 그리 많이 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다만 그 처한 환경에서 중압감만은 차원이 달랐을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나와 같은 선택의 기로에서도 그녀는 언제나 나보다 더 무거운 길을 걸어가야 했을 것이고, 그런 길의 수없는 반복은 그녀의 자아를 더 없이 단단하게 만들었을테다.


나는 그녀만큼 씩씩하지도, 단단하지도 못하다. 여전히 내 자아는 한 손에 쥐면 순두부처럼 으스러질만큼 연약할 뿐이다. 그럼에도 순두부라고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그녀가 눈을 감기 전에 완성되었다는 두 번째 에세이집에 나오는 문장으로 끝맺음을 하던 신문기사는 단비가 세차게 내리는 5월 11일 저녁 퇴근길의 나를 더 세차게 뒤흔들었다.

안식년이던 지난해 하반기부터 다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한 그는 가족 이외의 다른 사람들 눈에 띄기를 싫어했다. 그러나 마지막 문장들은 여전히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지난 번보다 훨씬 강도 높은 항암제를 처음 맞는 날, 난 무서웠다. ... 순간 나는 침대가 흔들린다고 느꼈다. 악착같이 침대 난간을 꼭 붙잡았다. 마치 누군가 이 지구에서 나를 밀어내듯. 어디 흔들어 보라지. 내가 떨어지나. 난 완강하게 버텼다."
경향신문, 2009년 5월 11일 월요일, 21면 <사람과 사람>中.



결과론적이지만 이 기사로 난 선택이 더 쉬워졌다. 물론 마음 속으로는 이미 결정을 내리고 있었기도 했지만은... 도입 부분에서 선택은 자유의지와 관련이 있다는 초보적인인 철학적 해답을 언급했었는데 이렇게 수정하고 싶다.  "우리의 선택이란 것은 본래 '자유의지'보다는 실존으로서의 '희망' 혹은 '갈구'와 더 깊은 상관관계를 맺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2009. 4. 27. 17:57

  오늘 ‘중국으로 가는 길’을 수강하며 대학생활을 막 시작한 1학년 학생들과 ‘인터넷과 중국어’를 들으며 대학생활을 마감해 가고 있는 4학년 학생들이 함께 자리를 했습니다. 우리는 우주를, 그리고 별을 보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그렇지만 단순히 별을 보면서 놀기 위해 야외수업 자리를 마련한 것만은 아닙니다.
  여러분들 가슴 속에는 여러 다양한 것들이 자리 잡고 있겠지만, 공통된 것은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과연 일상 속에서 가슴에 품은 꿈을 얼마나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별을 본다는 것은 어떤 관점에서 우주를 산책하는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꿈을 가지고 실천을 견지해 나가는 것은 ‘영혼의 산책’이라 해도 무방합니다. 이 산책을 게을리 하지 않는 여러분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도 노력하겠습니다.

2009년 4월 29일 수요일
**시민천문대 야외수업에서
***, ***강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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