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삶의 대부분을 불안정이란 녀석과 동거해왔다. 불안정은 나의 친구였고, 애인이었으며, 삶의 동반자였다. 대체로 안정된 삶을 영위하는 것을 '행복'이라 가정할 때, 내 삶은 어쩌면 행복과는 다소 동떨어진 행보를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행복이란 것은 언제나 개별적인 판단과 잠시간의 심리적 상태에 의존하는 것이라 했을 때 행복이란 것이 과연 무엇인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살면서 겪는 불안정의 행태는 각양각색이다. 불투명한 자신의 미래에 대한 걱정, 그리고 사랑으로 인한 알 수 없는 불안정, 불안정한 경제적 상황, 그리고 끊임없는 자아와의 충돌 등이다. 결국 불안정은 격퇴시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또 다른 안정을 위하여.
이를 위한 수단 역시 각양각색이다. 초기에 진화하는 방식, 일정한 시간이 흐른 다음에 치유하려는 방식, 그리고 마지막까지 자신을 몰아가는 방식. 나는 세 번째 형태의 사람이다. 언제나 내 자신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가는 것이 나만의 방식이자 또한 나만의 치유법이었다. 현실적으로 현명한 방법은 초기 진화 방식이다. 일찍이 이를 인지하여 진압하는 방식은 현실적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는데, 나는 늘 그렇지 못했다. 언제나 한 가지 문제점에 직면하면 내 자신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간다. 이른바 '바닥론'이라 할 수 있는데 바닥을 치고 나면 치유가 된다고 믿었다. 그런데 과연 그랬을까. 또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모든 것이 서서히 치유되고 제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오늘은 도리어 그렇지 않은 것이란 생각이 문득 든다. 아니 어쩌면 진정성의 문제로 환언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나 스스로 나는 진정으로 진실되었노라고 주문을 외는 것이었을지도, 혹은 진정성을 가진 것이라 스스로 최면을 걸었을지도 모른다고.
이 글을 적는 지금에도 나는 조금도 진실되지 않다. 무엇이 나를 진실되게 하지 않는 것인지, 그리고 과연 무엇이 나를 진정으로 진실되게 만들 수 있는 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그리고 알 수 없겠지만 끝내는 알고 싶다. 당신들의 진실은 무엇이고, 감추는 것은 무엇인지. 한낱 글 따위로 감추는 것은 어디까지인지. 나의 블로그를 통해 묻는다. 어디까지 진실인지를. (정말로 진실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다 한다면 말이다.)
'불안정'은 나를 만든다고 했었다. 하지만 '불안정'은 나를 삭제시키기도 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 삶은 아직 엷디 엷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