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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강사'에 해당되는 글 3건
2015. 3. 18. 16:12

대학 시간강사를 하다가 이번 학기 강의 미배정으로 실업급여를 신청하게 되었고, 오늘 교육(3월 18일)을 받고 3월 11일부터 오늘까지 우선 8일간의 실업급여를 내일 날짜로 지급받고, 이후 28일마다 4개월(30세 이상이라 3개월)을 지급받게 된다. 기본적으로 이같은 실직으로 실업급여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강사의 경우 계약기간이 끝나는 방학기간에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대다수의 강사들이 모르고 있기 때문에 이를 위해 기록을 남긴다. 앞으로 시스템의 변화나 고용센터 지역에 따라 아래 소개되는 내용이 다소 상이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시기 바란다. 



1. 시간강사 실업급여 대상: 고용보험 180일 이상 가입


1) 대학강사(4년제 기준)는 통상 15주나 16주 강의이기 때문에 한 학기 강의만으로는 실업급여 대상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최소 2학기 정도의 강의를 해야 실업급여 대상이 된다. 이 점은 신청 직전 고용보험 전국콜센터에 전화해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2) 본인이 출강하는 대학에서 지급되는 강사료 중에 고용보험이 납부되고 있는지 여부를 미리 확인한다. 참고로 두 개 이상의 학교에 출강하는 경우 고용보험이 이중납부되는 경우가 많은데 강사의 보험료는 매달 4,000~5,000원 수준이기 때문에 1년에 30,000~40,000원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고용보험 이중납부는 2~3년에 한 번씩 따로 청구하여 환불받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나도 이 부분은 아직 해보질 못해서 좀 더 알아봐야 하지만 센터 방문시 들었던 이야기라 생각나 적어둔다. 



2. 유선상으로 이런 절차를 마친 다음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나의 경험을 토대로 적는 것이 실질적인 도움이 될듯 싶다.


1) 작년 1년간 두 학교에 강의를 나갔다. 한 곳은 국립대, 한 곳은 사립대이다. 작년 2학기 강사계약서를 보면 국립대는 2015년 2월 28일까지를 계약기간으로 명시(급여가 지급되지 않는 방학까지 포함)해 놓았고, 사립대는 2014년 12월 31일까지로 되어 있었다. 



2) 급여가 지급되지 않는 방학이 인정되지 않을거라 판단해 1월 초 대전고용센터를 방문했으나 보기좋게 거절당함. 이유는 국립대 계약기간이 2월 말까지로 되어 있었다는 점 때문이다.



3) 따라서 강사들은 본인이 출강하는 학교들의 모든 계약서를 봐서 계약기간이 언제 종료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운이 좋아 출강대학 모두 같은 날짜에 계약이 종료된다면 보다 빠른 신청이 가능할 것이다. 만약 나처럼 국립대 강의를 하게 된다면 특히 이 계약기간을 살펴서 내가 출강하던 학교처럼 방학까지 계약기간을 포함한다면 방학기간을 이용한 실업급여 신청이 불가능할 수 있다. 요컨대 12월 31일 종료 또는 6월 30일 종료가 실업급여 신청에 있어 최상이라 할 수 있다.



4) 방학을 이용한 실업급여 신청은 매년 겨울이나 여름방학 중 하나를 선택해 신청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아래 나의 구체적인 사례를 보시라.


3. 나의 실업급여 신청 사례


1) 계약기간이 상이한 문제 때문에 3월 초에 다시 방문하라는 소리를 듣고 2개월 가까이를 기다렸다가 3월 3일(화)에 고용센터에 재방문했다. 1월 달과 마찬가지로 초기상담을 받고, 작은 안내문(워크넷 가입 후 구직 등록 및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등 탑재, 고용보험 사이트에서 동영상강의 수강(약40~50분 정도로 기억됨)을 요구)을 받고 당일 저녁 이 두 가지를 실행했다.



2) 별도로 고용센터에서는 고용보험상실신고서와 이직확인서를 출강대학 전체에서 두 개 학기 모두 제출하도록 하라는 이야기를 해줬다. 이 고용보험상실신고서와 이직확인서는 학교 본부의 몫이다. 고용보험사이트에 미리 가입해서 보면 고용보험상실신고는 매 학기 계약기간 종료후 바로 학교에 의해 신고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만 이직확인서의 경우는 당사자가 요구할 때 보통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강사 본인이 대학본부 고용보험 담당자에게 직접 전화해 빠른 처리를 부탁하는 것이 좋다. 그러니까 매년 12월 31일이나 6월 30일 계약 종료 전 미리 학교에 전화해 고용보험상실신고서와 이직확인서(강조)를 고용센터에 제출해 줄 것을 요청하는 것이 좋다. 



3) 3월 3일(화) 첫 방문에 이어 3월 4일(수)에 두 번째 방문을 하게 되면 워크넷 구직등록과 동영상 수강여부를 확인 후 취업희망카드를 내게 발급하고, 2주 후(3월 18일 수)에 교육을 받으러 오라 했다. 이 기간 구직활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4) 3월 18일(수) 오늘 지정시간 오전 9시 20분에 센터에 세 번째 방문을 하니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신분증을 보여주고 몇 장의 종이를 배부받고 자리에 착석하니 한 시간 정도를 교육했다(대전의 경우이지만 타 지역은 이 시간이 좀 더 길어질 수 있다). 



5) 나의 경우 배부받은 종이 가운데 "고용보험수급자격증"이 있었는데 학교의 이직확인서 처리가 늦어져(학교에서는 3월 5일에 공문으로 처리했다고 하는데 고용보험 사이트에서 계속 조회가 되지 않았다. 통상 학교의 처리 후 1주일이면 고용보험사이트에서 이직확인서 처리여부를 조회할 수 있다. 하지만 내 경우 오늘 뭐가 문제였나 봤더니 학교 측 공문에서 연도 오타가 발생해 고용센터에서 처리를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또 별도로 처리할 게 많아서라고도 말한다. 따라서 이직확인서가 오늘 3차 방문 전 처리가 됐는지 여부를 온라인으로 확인해두는 것이 좋다.) 이 수급자격증에 구직급여 일액(쉽게 말해 일당)이 적혀 있질 않았다. 교육 중에 이런 사람들은 교육 종료 후 다시 담당 창구로 가서 확인을 받으라고 해 두 개 창구에 다시 가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없었다.



6) 여튼 처리가 됐는데 구직급여 일액 기준은 국립대와 사립대 가운데 강사료의 차이나 학점의 많고적음에 상관없이 월 총액이 많은 쪽인 사립대 쪽으로 되었다. 내 경우 국립대(3학점)와 사립대(6학점)의 월총액 강사료는 2만 몇 천원 정도 차이에 불과했는데 그래도 많은 쪽이 주사업장으로 잡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여튼 12월 31일로 계약이 종료된 사립대의 기준으로 구직급여일액이 정해지게 됐다.



7) 구직급여 일액은 최저임금으로 계산된다. 시간강사의 경우 25학점 이상을 하지 않는 한(25/5일=5시간) 그 이하의 학점은 모두 일 4시간 노동으로 계산된다. 따라서 일 4시간 최저임금 곱하기 30일 하면 본인이 수급하는 실업급여액이 된다. 



8) 나는 2014년 12월 31일 퇴직으로 잡혔기 때문에 2014년 최저임금 적용을 받았다. 2014년 최저임금을 찾아보니 5,210원이었다. 4시간으로 계산하니 1일 20,840원으로 나오는데 어찌된 일인지 고용보험 사이트에 등재된 구직급여일액은 20,088원이다. 한 달에 2만원 남짓 차이이다. 이를 왜 이렇게 책정이 되는지 전국콜센터로 전화해 다시 문의할 생각이다. 



9) 여튼 20,088원 곱하기 3을 해보자. 30일은 602,640원, 전체 수급기간 120일을 곱하면 2,410,560원이 나왔다. 



10) 만약 방학기간만을 이용해 수급을 받는다면 대충 올해 여름방학 시작을 기점으로 이렇게 계산해 보면 될 것 같다.  2015년 6월 30일(화) 출강대학 전체 계약종료이 종료되고 발빠르게 움직인다면 7월 1일(수) 1차 방문(방문 후 동영상 강의 시청 및 워크넷 구직등록), 7월 2일(목) 2차방문(확인 및 취업희망카드 수령), 7월 16일(목) 3차 방문(교육)이 될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받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아까 언급을 하지 못했는데 내 실업급여 계산 시작일은 3월 11일(수)이다. 보니까 2차 방문일 7일 후부터 계산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름방학 기간을 이용 신청한다면 7월 9일(목)부터 계산되어 7월분 23일, 8월분 31일을 합쳐 최대 54일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내 기준은 2014년 기준이기 때문에 올해 여름방학에 신청하시는 분은 2015년 최저임금을 적용받는다. 따라서 최저임금 5,580 곱하기 4시간을 하면 1일 22,320원, 54일 1,205,280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개개인에 따라 몇 만원의 오차가 있을 수 있다.) 겨울방학을 이용한다면 2월이 대체로 28일까지이므로 31일이 두 번인 여름방학이 며칠이라도 더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바로바로 발품을 팔아야 한다는 것이고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그만큼 실업급여지급일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11) 요컨대 겨울이든 여름이든 방학기간을 이용할 경우 적어도 50일 정도는 수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절차가 좀 번거롭더라도 방학기간 동안 1,100,000원 전후의 수급액을 받으려면 움직이는 것이 좋다. 110만원이 아쉽지 않은 강사라면 물론 그냥 실업급여 따위는 잊으시면 된다.



4. 기타


1) 방학기간에 소득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전업강사가 아닌 겸직을 하고 있으면 실업급여를 역시 받을 수 없고 계절학기를 하는 것도 불가하다. 하지만 계절학기가 끝나고 그 계약종료일부터 30일 정도는 또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 아래 사진을 보면 오늘이 1차 지급기간으로 우선 총 8일치가 지급이 된다. 오늘 수요일 센터에 방문하면 통상 내일(목)에 계좌에 입금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구직활동 요건 등은 사진을 참고하시라. 





3) 위 사진에서 보듯 여러 번 가야 하는데 인터넷 활용이 가능하다면 고용보험사이트에 공인인증서 등록을 해 2차, 3차의 경우 센터에 출석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구직활동을 인정받으면 된다. 이건 향후에 숙지해도 될 사항이니 아래 사진을 참고만 하시라. 




4) 내 경우 계약기간 상이 등으로 말미암아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몇 차례 고용센터에 찾아가는 일이 반복되어 무척 번거로웠다. 실업급여 신청 자체는 어렵지 않다. 다만 번거로움이 따를 뿐이다. 이런 번거로움이 타 강사의 경우 나처럼 많지 않기를 바란다.



5) 일주일에 6학점, 9학점, 12학점, 20학점을 해도 1일 4시간 밖에 인정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목도하면서 시간강사의 비참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강의에 필요한 준비시간 등도 앞으로 반영이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강사처우 개선이 사전에 이뤄져야 하지만 말이다. 교수가 되겠다고 공부를 시작한 강사들도 있겠고, 많이 벌지 못해도 최소한 연구와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라도 됐으면 하는 강사들도 있을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홀몸인 강사의 경우 월 200만원, 가족이 있는 경우 300만원 정도라도 좋으니 방학기간까지 꾸준하게 수입만 발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런 제도가 생긴다면 아마 더욱 더 소속 학과에 종속되는 상황도 연출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진퇴양난'의 강사시대를 살아간다. 



잠을 제대로 못자고 아침에 나가느라 정신이 혼미해 제대로 정리를 했는지 모르겠다. 이 점 양해하시기 바란다.

          

 

필수 사이트(신청 직전 가입해 두시는 게 좋다.): 

http://www.ei.go.kr

http://www.work.go.kr/

 


  

2014. 1. 11. 02:06

모교에서 이번 학기 강의가 지난 학기 6학점에서 3학점으로 줄었다는 이야기를 과사무실에 갔다가 조교로부터 전해 들었다. 강사법 유예의 충격과 학과의 내부사정 변화 등으로 어쩌면 담당 과목에 변동이 있겠다는 생각을 안 했던 것은 아니다. 마무리 지어야 할 일들도 많아서 올해까지는 강의 많이 맡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강했지만 그래도 모교에서의 학점 축소는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다음 학기 지역 내 타 대학에서 6학점을 맡았다는 것이 소문이 돌았던 것인지, 아니면 박사논문을 마무리하라는 선생님들의 순수한 배려인지, 그도 아니면 강사법 유예나 학과 전환 등의 다른 구조적 이유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겠거니 하는 추측을 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큰 변화가 동반되지 않는 이상 강사들끼리 칼을 빼 들고 싸우게 될 것이고, 인맥이 상대적으로 약한 강사들의 유혈이 낭자한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그래도 모교가 국립인 탓(1시간 8만 원)에 지난 학기 6학점 강의에 4주 192만 원(세전)을 받았다. 다음 학기에도 3학점으로 줄긴 했어도 타 대학에서 6학점을 받은 덕에 9학점으로 지난 학기 수입 비슷하게 그냥저냥 유지할 듯싶다. 물론 한 학기 15주라는 점과 고용보험, 소득세 등을 빼면 6개월 기준으로 110만 원(세후) 조금 넘는 정도밖에 안 되는 박봉이다. 아마 시간강사들이 대부분 비슷비슷할 것이다. 강사료가 1시간에 4만 원 정도 하는 사립대학 3곳 정도를 뛰어 15학점 정도 한다더라도, 160만 원(방학 포함) 정도가 고작일 것이다. 강사들의 수입도 천차만별이지만, 무튼 연구교수나 한국연구재단에서 별도의 지원을 받지 않는 이상 이렇게 저축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수입이 고작일 것이다.



일찍이 국비 조교를 해봐서 강사들의 삶이 어떤지 익히 알고 있었고, 훗날 내가 이런 모습이 되어 있을 것이란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학위취득 이후 시간이 조금 지나면 형편이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도 여전히 있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무력감을 감출 수 없다. 학위논문을 제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는 박사과정생의 시간도 아쉽고, 학위논문 이후에는 정말 얼마나 선택의 폭이 넓어질까 하는 의구심도 생긴다. 어느 정도 예측되는 미래를 조금이라도 조정하기 위해서는 순응과 침묵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한국사회에서(적어도 학계나 학교에서는) 돌부리처럼 튀어나온 인물이 되어서도 안 되고, 체제에 불응하는 반골이 되어서도 안 된다. 빼어난 실력으로 돌부리처럼 튀어나올 인물도 아니고 체제에 불응하는 반골이 되지도 않았지만, 나는 앞으로 이 불합리함에 되려 돌부리가 되어가고 반골이 되어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미치자 얕은 한숨이 나왔다.

 


일상적 생활을 하기에도 힘든 이 시기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20대 후반을 관통하는 시기에 정치사회에 온통 무관심했던 시절이 있었다. 경제적 삶이 피폐했고, 나 자신 하나 돌보기도 힘들었던 때였다. 그때만큼 절박하진 않겠지만, 당시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다. "나는 학생들 밥이나 술을 제대로 사줄 수도 없고, 어떤 부조리함에도 발언을 해서는 안 되는 강사이다." 이제 당분간 이런 주문을 스스로 외우기로 한다. 이제 현실이 그다지 슬프지도 않은 40대가 된 것이 더 억울하다.         

  

2008. 8. 25. 05:56

지난 밤, 당분간 같이 지내고 있는 친구를 호출해 같은 버스에서 만나 늦은 귀가를 하던 중에 출출하다는 의견의 합의에 따라 옆 동네 경희대 부근에서 하차하여 참치집을 찾아 들어가 배도 채우고 주님 1병씩을 격파하고 들어와 잠이 들었다. 그래서 모처럼의 숙취로 인한 갈증 때문에 채 박명의 시간에 일어나게 되었다. 생수를 벌컥벌컥 마시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지만 누우면서 떠오른 생각 탓이었는지, 아니면 연가를 내면서까지 해야 할 가족의 일 처리가 있다는 압박감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컴퓨터를 켜고 포스트를 쓰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사실 생활에 있어 권력관계의 일을 고백한다는 것은 나 자신까지 까발리는 일이기에 글로 옮기기는 쉽지 않지만 오늘은 이 얘기를 털어놓을까 한다.


사전 이해를 돕기 위해 우선 내 전공에 대한 얘기를 하겠다. 내 학부전공은 ‘중국어’이고, 석사부터의 전공은 이른바 중국학(이 학문의 범위를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잠시 설명을 하자면 한국에 있어서 ‘지역학’은 한 지역의 현대 정치, 경제, 사회문화를 포괄적으로 공부하는데 그 가운데에서 세부전공으로 ‘중국정치’방면으로 공부를 하고 있음을 밝혀둔다.)이다. (어문학 쪽으로는 영 소질이 없었고, 뒤늦게 사회과학 방면에 눈을 뜨게 된 것이라 이렇게 되었다. 아울러 학부는 대전의 지방 국립대를 졸업하였고, 대학원부터는 서울의 이문동에 위치한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음도 밝혀둔다.)


각설하고, 박사과정 진학과 동시에 현재 몸을 담고 있는 위원회에 들어와 경제적 생활을 돌보면서 어렵지 않게 작년 1학기가 시작되기 전, 3학기를 마치고 수료를 남겨두면서 생각했던 계획에 따라 휴학을 단행하였다. 그리고 아는 사람은 다 알다시피 올해 초, 석사과정 이후의 세부전공에서 다소 벗어난 어학 방면으로 첫 강사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부터 떠드는 이야기는 바로 이 강사생활 시작과 관련된 몇 가지 비하인드 스토리라고 할 수 있겠다. 아직 숙취로 인해 두통이 좀 있어 이야기를 잘 풀어갈 수 있을지, 또한 지금부터 한 시간 이내에 관련된 이야기를 끝마칠 수 있을지 약간 우려되는 바가 있지만 이어서라도 계속 쓸 생각이기 때문에 중간에 삼천포로 수시로 빠지는 것에 대해 양해를 좀 해주셨으면 한다.


환언하여 작년 휴학을 하면서 나는 직장생활로 소홀해진 공부에 대한 자극이 스스로 요구되었다는 점, 서른셋이라는 나이면 될테지라는 세속적인 이유, 답답한 직장생활의 탈출구가 필요했다라는 점, 학생들을 하루빨리 만나고 싶다라는 순수한 동기 등 여러 가지 이유에서 강사생활 시작에 대한 집착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대학 시간강사는 기본적으로 모교를 중심으로 첫 시작을 하게 되는 것이고, 그와 관련된 학회에서의 정치적(?) 활동, 그리고 학번에 따른 서열과 아울러 대학 전임교수들 간의 이해관계 등 여러 가지 제반사항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면서 강의하는 학교의 외연을 확장하게 되는 것이 전공에 관계없는 전반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모교에서 스타트를 끊지 못한다면 연구자로서나 강사로서 이 바닥에서 제대로 생활을 영위하기에는 애초에 글러먹는 시스템이 바로 한국적 시스템이기에, 그런 관습에 의거하여 나 역시 모교에서 스타트를 끊어야 하는 처지였던 것이다. 그래서 첫 시작은 전적으로 스승들의 배려와 하사에 의해 이루어지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그 시스템을 깨려는 행위는 어떠한 의미에서는 이적행위 아니 어쩌면 전복행위에 더 가까운 일이 될 수 있다.


어찌됐든 나는 위에서 언급했던 강사생활에 대한 욕구로 인해 스승이 생각났을 때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강의가 아닌 모교의 문을 인위적으로 두드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또 거만하게도 모교의 전공에서 내가 첫 학번이라는 점, 중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동기 녀석 둘을 포함해 가장 먼저 석박사과정에 진입한 선구적인(?) 케이스라 이 정도면 당연한 대접이라 생각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서울권 메이저대학의 경우는 이와 다르게 위에 먼저 공부를 시작한 선배들이 줄을 서 있는지라 이른 나이에 모교에서 강사를 한다는 것은 조교를 한다거나 모종의 사유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서열이 떨어지는 타대학이나 지방대학에서 시작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어쩌면 강사로서 우위적인 위치에 서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역시나 염려했던 대로 본론은 시작도 못하면서 이야기를 질질 끌어가고 있음이 선명해진다.  모교에는 현재 6명의 전임이 있는데 그 중 다섯 분은 모두 스승이고, 석사시절 생활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대전에 내려갔을 때 2년간 국립대 조교로서 일할 수 있는 배려를 해주기도 하였다. 국립대 조교는 계약직이긴 해도 대체로 공무원 7급에 해당하는 대우를 받는데다 교육직렬이라 일반직 공무원이나 사립대학 조교, 그리고 웬만한 시간강사는 따라잡을 수 없는 정도의 보수를 받는다. 지금은 내가 그만 둔지도 4년이 넘어 정확히 산출할 수는 없지만 석사학위 이수 등 약간의 경력을 인정받는다면 이런저런 수당을 합쳐 적어도 세전 3,200 이상의 보수를 받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런 고액연봉의 조교를 한다는 것은 전국적으로 통틀어 얼마 되지 않는 까닭에 나는 당시의 어려운 민생을 2년간 해결할 수 있었고, 이후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에 들어오게 되었던 간접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던 터라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기실 스승들에게 엎드려 절이라도 해야 하는 입장이다.


아무튼 나는 작년 1학기 어느 날에 대전행을 감행하게 되었다. 모교의 경우 한 분을 제외한 4명의 전임이 연배로 40대인데, 그 중에서도 7살 차이의 술자리도 종종 같이 하는 가장 친한 스승을 제외한 당시 학과장을 맡고 있던 사람을 찾아가서 이제 강의를 하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하게 된다. 물론 일언지하에 거절당한다. 지나고 생각해보면 얼마나 내가 선생에게 우습게 보였을까란 생각에 웃음이 난다. 메이저대학 출신의 똑똑한 두뇌를 가지지도 못한 내가 스승이 먼저 강의를 맡지 않겠냐고 제안을 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먼저 찾아가 강의를 주셨으면 한다라고 했으니 얼마나 기도 차지 않는 일이 되었겠는가. 물론 당시 직접적인 거절의 의사보다는 공부를 우선 다 마쳐야 하지 않겠냐는 간접적인 표현을 듣기는 했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사실 직접적인 거절의사보다 더 마음이 좋지 못했다.


그렇게 씁쓸하게 서울에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장 친하다는 선생님과 술자리를 하게 되면서 강의를 맡게 되는 자격에 대한 입씨름을 하게 되었다. 그 선생님의 논리는 대학 시간강사도 이제는 원칙적으로 ‘박사취득 이상의 자’라는 것이었는데 그 말에 나는 기분이 많이 상해 이렇게 대꾸했었다.


“그럼 선생님들의 모교에서 오는 박사과정 1학기를 겨우 마친 후배들의 경우는 뭐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까?”


나는 이와 같이 당시 제자라는 이유와 더불어 모교 전임들 간의 권력관계 등에 의해 강사로 첫 발을 내딛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항의가 있었던 탓이었는지 올해 1학기 특정 과목을 맡았던 시간강사 선생님이 모 대학 전임으로 가게 되면서 그 자리를 메꿀 수가 있었는데 강의가 배정된 것은 아직 젊기 때문에 그 과목을 가장 효율적으로 가르칠 수 있고,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좋은 자극을 줄 수 있으며, 갑자기 다른 강사를 구하기도 힘들다는 등의 사유를 적은 내용으로, 해가 바뀌면서 새 학과장이 된 그 친한 스승님의 타 교수들에 대한 이메일을 통한 의견 조회가 이루어지면서 이전의 스스로 조성한 어수선한 상황이 비교적 수월하게 정리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한 학기 강의를 마쳤고, 학생들에 대한 미안함과 진실로 노력하지 못했음에 부끄러움만 남게 되었지만 그래도 다음에는 좀 더  잘해보자는 마음을 먹게 되었는데 그 동기는 지난 5월 무렵 어느 지인의 결혼식에 갔을 때 잠시 뵙게 되었던 바로 그 추천해주신 분을 만나 다음 학기 안식년을 떠나는 선생님의 강의과목 중 하나인 시사중국어를 맡기겠다라는 얘기를 직접 들은 것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적어도 난 확정적이진 않더라도 추진해보겠다라는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한 학기가 마무리될 무렵이면 다음학기 강의시간표가 짜여지면서 대략의 강사진도 꾸려지는 것이 기본적인 틀이었고, 기본적으로 타지에서 오는 강사에게 요일을 정하는 선택권을 주는 비교적 민주적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사중국어는 강사가 미정인 채로 금요일로 편성된 것을 알게 되었다. 조교에게 문의한 결과 눈치로는 강사가 정해졌다라고만 하는데 그게 나인지 다른 사람인지 전혀 짐작을 할 수 없었다. 만약 나를 감안한 것이었다면 사전에 직장을 다니는 내게 편의를 제공하는 차원에서 언질이 있었을 터인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한다면 현재 상황은 지극히 불투명한 것이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의사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오해가 일정하게 있을 수 있겠지만은...

 

여기까지가 지루하게도 사전 정황에 대한 설명이다. 사실 장광설인 서론에 비하면 말하고 싶은 본론은 그리 길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진즉 대학원에 들어가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부터 끝까지 한 번 가보겠다라는 마음이었고, 또 시간강사로 생활을 영위한다는 것이 결코 녹록한 일이 되지 않을 것도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와 관련된 어느 정도의 고초와 부조리는 견디겠다라는 마음가짐은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막상 그런 상황에 진입하고 보니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겠다.

 

이는 단순히 강의 하나를 연장해서 맡으면서 강사 타이틀을 유지하겠다라는 욕심보다는 스승들에 대한 인간적인 섭섭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스로 견지하려고 하는 원칙에 대한 원론적인 문제제기가 더 크다고 할 수 있겠다.

 

괴테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인간은 보이는 대로 대접하면 결국 그보다 못한 사람을 만들지만, 잠재력대로 대접하면  그보다 큰 사람이 된다' 내 생각에는 지금 나를 길러낸 스승들이 나를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대로 대접하고 있다라는 결론에 이르고 있고, 또 무엇보다도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런 일련의 상황들이 진리를 규명하고 좀 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를 하고 싶다는 나의 원칙을 느슨한 상태라도 해체하고 파괴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기적인 수입이 있는 상황에서 굳이 이런 모험까지 감행했던 것이 전적인 나의 책임으로 돌아와야 할테고 또 책을 읽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한 판에 학계의 부조리한 권력구조 속으로 미리부터 편입되어 들어가려는 나의 행태는 자기바판을 받아 마땅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견딜만하고 내 모든 것을 잃지 않은 상황이라 이미 그 구조 속으로 깊숙히 편입해 들어가 복무하고 있는 다른 선배들에 비해 나은 형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난 여전히 두렵다. 지금은 이렇듯 일정한 '자기검열'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만 향후 이러한 자기검열마저 무시하면서 전적으로 생활의 전선으로 뛰어들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 말이다. 스승들에게 감사한 것은 감사한 것이고, 역시 섭섭한 것은 섭섭한 것이다. 그러나 공부를 하는 사람으로서 난 내가 견지해 나가야 할 원칙이 있는 것이고 그 용납 가능한 최후의 보루를 포기한다는 것은 나는 '영혼을 파는 행위'라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전혀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다.

 

오늘 이렇게 장문의 글을 쓰는 까닭도 앞으로 이러한 속상함이 심화된다면 내 자신이 모교를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를 잃지 않겠다라는 의지 때문이었지만, 결국은 현실의 불만 표출과 지지리 궁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겠다.  

 

   참.. 내 제자들이 이 글을 볼 수도 있겠는데 혹여나 보는 사람이 있다면 못 본척 해주었으면 하는 희망만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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