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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에서2011'에 해당되는 글 1건
2011. 1. 1. 01:59

나의 가장 확실한 친구인 담배 한 가치와 함께 2011년을 시작한다. 사뭇 추운 이 곳에서 가끔 위로가 되는 것은 역시나 큰 창문이다. 창을 열고 담배연기를 내뿜을 때마다  하늘을 볼 수 있어 좋다. 별이 총총히 박혀있는 사이로 폭죽이 파열한다. 실로 오랜만에 이국에서 맞는 새해는 기대와 달리 꽤나 덥덥스럽다.
 
저녁시간을 예서 알게 된 한국인 석사 친구 셋과 중국인 친구들 다섯과 함께 음식을 해 먹으며 보냈던 까닭일까. 초대한 입장에서는 접대에 바쁜 2010년의 마지막 날이었음은 틀림없을 것이다. 다시 눈으로 별들을 하나 둘 스캔해 나간다. 문득 작년 봄 읽었던 책의 내용들이 어섬푸레 떠오른다.

"모든 별은 태어나서 존재하다가 죽는다. 그것이 별의 생리이자 운명이다. 인간의 몸을 이루는 모든 물질은 별로부터 왔다. 별들과 같은 생리와 운명을 배고 태어난 인간은 별들과 마찬가지로 존재하다가 죽는다. 다른 것은 생애의 길이뿐이다."

"별은 어떻게 태어나는가. 우리 은하와 같은 나선은하들의 원반에는 젊은 별들과 밝은 구름 덩어리들이 실들에 꿰어져 돌고 있는 듯한 모습의 나선팔들이 있다. 이 나선팔들에서 지금도 수많은 별들이 태어나고 있다. 이미 태어난 뜨거운 별에서 나오는 강한 빛이 주위의 물질을 밀어붙인다. 늙은 별이 터지며 나온 충격파가 주위에 있던 성간구름을 수축시킨다. 자극받은 성간구름은 계속 수축한다. 이 수축된 성간구름이 별이 되기 위해서는 구름의 질량이 일정한 값보다 커야 한다. 이것이 중력수축에 필요한 '진스의 임계질량'이다. 구름의 질량이 임계질량을 넘어서는 순간 별의 일생이 시작된다."

"하루 스물네 시간이 지구의 자전 주기라는 것을 새롭게 실감했다. 얼마나 놀라운 속력인가? 스물네 시간은 긴 시간이 아니다. 그러고 보면 지구는 그리 큰 별이 아니다. 밤에 하늘을 올려다보면 그 광활한 어둠에, 빠르게 팽창하며 서로에게서 멀어져가는 수십억 개의 별들에 가슴이 떨렸다. 외계의 생명체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지구는 아슬아슬한 우연으로 태어난 생명체들을 가진 단 하나뿐인 별일 수도 있다. 무섭고 외롭고 벅찼다. 12킬로미터 높이의 대류권과 그 너머의 성층권, 열권을 합한다 해도 대기권의 높이는 고작 450킬로미터, 서울에서 부산 가는 거리에 불과하다. 체육시간에 운동장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푸르고 환하고 납작한 대기 너머로 펼쳐져 있을 검은 우주 공간이 눈앞에 그려졌다."
* 한강, 『바람이 분다』, pp.18-20에서 발췌.(서울: 문학과 지성사, 2010)

"모든 도시들, 국경선과 흙과 바다, 숲과 골목과 시궁창, 무덤과 개들, 나무들, 연인들, 감옥, 전쟁터, 교실과 극장, 장례행렬, 덜컹거리는 지하철, 고함치는 노천 시장 들은 450킬로미터의 대기권 안쪽에 있다. 더러 융기하고 더러 가라앉은 지각 위에. 넓거나 좁은 무수한 도로들 틈에. 450킬로미터의 납작한 두께 안에 삶이 펼쳐져 있다. 납작함 속에서 치열하게, 납작함 속에서 안이하게, 납작함 속에서 웃고 말하고 병들고 춤춘다. 납작한 세계의 안쪽을 땀 흘리며 껴안는다. 죽음의 순간까지, 아니, 죽음 뒤에도 육체는 바깥으로 나가지 못한다. 다만 시선과 생각들, 의식들만이 이상한 생명처럼, 혼령처럼 성운 사이의 텅 빈 어둠 속을 헤엄쳐 다닌다."
* 한강, 위의 책, pp.38-39.


2011년, 나 역시 수없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의 점으로 생성하고 소멸을 거듭할 것이다. 삶의 터널에는 안전하게 통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터널등 따위란 없다. 뒤뚱뒤뚱  전후 좌우를 어설프게 짚어가며 '놀멍 쉬멍 걸으멍' 스텐레스 냉면 그릇에 반사된 빛과 같이 존재의 이마를 거침없이 드러내리라.

그러고는 2011년을 향해 퉷하고 침을 뱉고 작별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모든 흔적도 덮어질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소망하지 않기로 하며 이내 창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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