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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공부할게요'에 해당되는 글 1건
2010. 11. 13. 06:32

언젠가부터 '일하듯 공부하기'라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쉽게 풀이하자면 요즘 근로추세에 맞춰 1일 8시간, 주 40시간은 최소한 공부를 해줘야 한다는 개념이다. 물론 이 시간 안에는 학기 중의 수업시간도 포함되어 있다. 수업이 있는 날은 그만큼 공부량이 줄 수도 있겠지만, 수업시간에 비례해서 또한 그만큼의 야근시간(?)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것이야 주중에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 푹 쉬어주는 뭐 이런 형태겠지만...^^;


사실 공부에 욕심을 가지게 되다보면 1일 8시간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오전 9시부터 하루를 시작한다고 가정하자. 학기 중이라면 평균 1일 2~3시간의 수업이 잡혀 있을 터(이것도 모두 오전이라 가정해 보자), 이 시간을 제외하면 점심 먹고 오후의 댓 시간 남짓 한 시간이 남는다. 저녁을 먹고, 야근을(?) 두 세시간 정도 해 주고 퇴근한다 하자. 그럼 9시~10시가 훌쩍 넘는다. 집에 와서 인터넷 질도 좀 하고, 티비도 좀 봐 주고 그러다 보면 잠 잘 시간도 부족해지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고시생이 아닌 이상(고시생은 정말 물리적인 시간과의 싸움이라 할 수 있다.), 충분한 수면량까지 조절할 필요는 없다. 개인 차에 따라 6~8시간은 충분히 자야 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


시간에 맞춰 수업에 참석해야 한다는 것 이외에는 학생만큼 자기 시간 조절 가능한 직종이라고는 이들을 가르치는 선생 밖에 없다. 물론 선생들도 학생과 비슷한 패턴으로 살아야 한다. 강의하는 시간 이외에는 수업 준비와 자기 공부를 해야 할테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우리가 학생이란 것에 너무나 쉽게 면죄부를 준다. 그리하여 여기서 사귄 친구들과의 관계도 돈독히 해야 하고, 또 인터넷을 통해 요즘 유행한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인맥관리도 해야 한다. 또 각종 경조사(해외 유학생은 여기에서 일정한 해방을 누림)도 챙겨야 하고, 한국에 있는 친구, 가족도 챙겨야 한다. 아. 연애도 해야 하지. 또 생활에 필요한 이런저런 잡일도 해야 한다.


이렇게 열거하고 나니 '학생'이 참 바쁜 직종이다. 이렇게 바쁜 직종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가 발급 면죄부에 의한 괴로움이 시작된다. "아~ 나 이렇게 놀아도 되는 것일까. 뭐 하루 쯤이야 어때.^^; 남들도 나랑 비슷하지 않겠어! 오늘은 컨디션이 그닥 좋지 않으니 좀 쉬고 내일부터는 열심히 아자아자~" 이런 날들이 축적되는 어느 날에는 이제 두 가지 길 뿐이다. 하나는 내가 학생인지 백수인지 모를 정도의 '목적 상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뭔가 스스로 괴롭긴 한데 당최 이유를 알 수 없는 '심적 고통'이다.


반면 미친듯이 공부하는 사람들에게서도 문제가 발견된다. 매일매일 많은 것을 놓아가며, 공부를 함에도 불구하고 뭔가 알 수 없는 불안감은 점차 커져만 간다. 성공, 취업, 인정, 중층적인 여타 욕망들. 나름대로의 반듯한 목적이 있음에도 허전한 것은 공부가 결국 그 어떤 수단에 됨에 있다.


"지식인의 사유는 끊임없이 사유 그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식인의 사유는 이 되돌아봄을 통해서 언제나 사유 그 자신을 특이한 보편성으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무리 어린 시절부터 주입된 계급의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이미 보편적인 것을 획득했다고 스스로 믿는다고 할지라도, 지식인의 사유는 바로 이 되돌아봄을 통해서 사유 그 자신을 이 계급의 편견에 의해 은밀하게 특이화된 보편성으로 파악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사르트르, 지식인을 위한 변명, 박정태 역, 63)


선배 형의 블로그에 인용된 글귀를 나 역시 인용해 본다. 엉아는 '선비는 없고 영혼없는 테크니션들만 들끓는 현실'을 비판하기 위한 글이지만, 난 뭐 아직 테크니션도 아니니 비판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적극 동의한다. '성찰'없는 공부란 있을 수도 없고, 기계적인 공부에도 '성찰'이 개입되지 않는다면 바로 무의미한 것이 되어 버린다.


그렇다. 난 '목적'과 '성찰'의 변증법적 관계에 주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는 '가치'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가치란 것은 관점에 따라 가차없이 재단되어 버리는 것에 불과할 지 모르겠지만... 고스톱은 고와 스톱을 얼마나 적시에 잘 활용하느냐에 결정적이겠지만 공부에는 스톱이 없다. 일단 시작하면 끝까지 '고'일 뿐이다. 다만 내가 고스톱(?)을 시작한 동기와 가치에 대한 반성이 요구될 뿐이다. 소싯 적부터 고스톱을 즐긴 까닭은 같이 즐기기 위함이었다. 공부도 이와 마찬가지다. 열심히 해야 같이 즐길 수 있고, 또한 즐길 수 없다면 열심히 한 보람도 없을 것이다.        


참... 이야기가 샛길로 빠졌는데 공부하는 것에는 물리적 시간만큼 사유의 시간(아마도 노는 것?)도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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