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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8. 25.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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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http://oktimes.cafe24.com/ ('사진관'에서)


촛불문화제도 벌써 한 달째, 18차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거리로 나간지도 오늘로 3일 째 접어들었다. 이를 두고 '비폭력'과 '평화'를 상징하는 촛불문화제에 집시법을 위반하는 가두행진이 적절한 것인가라는 적지않은 반론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한 달간의 촛불문화제를 통한 평화시위는 우리가 '국가'와 전혀 소통되지 못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졸속협상의 결과로 발동된 촛불문화제를 두고 오늘 난 두 가지를 얘기하고자 한다.


우선 '국가'와 '사회'의 관계에 있어서 '국가'를 유일하게 견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것은 '사회'이다. 이론상으로는 사회는 국가가 행하는 독단적 정책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가졌다 할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국가가 행하는 정책에 적극 협력할 의무를 가진 것도 바로 이 사회이다. 이렇게 적절한 선에서의 견제와 협력은 하나의 민주주의 국가를 건전하게 살찌우는 근본적 동력임은 말할나위 없다. 이렇듯 권한과 의무를 적절히 행사하는 사회를 우리는 흔히 '시민사회'라고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 대한민국의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다. 아니 오히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절대절명의 위기가 도래했다고 해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다. 이는 대한민국의 시민사회가 미처 성숙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그 성장이 정체되는 지점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민사회가 제대로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되고 있는 까닭은 바로 한국사회에 이미 깊숙히 침투해버린 '자본'이 막강한 힘을 본격적으로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건전한 시민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다양한 개인의 스펙트럼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나는 그 실질적인 예로 한 달째 지속되고 있지만 그 힘이 하나의 방향으로 응축된 힘을 갖지 못하고 있는 촛불문화제를 거론하고자 한다. 쇠고기 졸속협상에 따라 장관고시를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 국민 대다수는 그 잘못된 정책에 성토를 하고 공감하면서 정책방향의 근본적 수정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지만 국정운영의 최고책임자인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그 주변 책임자들은 '꼼수'를 통해 이 위기를 적당히 넘어가고자 하는 모션을 취하고 있다.


물론 촛불문화제를 비롯한 인터넷세계에 들끓는 비판여론은 일정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예컨대 장관고시의 잇따른 연기라던가), 지극히 온라인적인 인터넷과 모든 집시법을 제자리에서 지켜가면서 열리는 촛불문화제로는 이제 더이상 현 정부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지극히 합법적이고 일정한 바운더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저항은 충분히 통제하고 일정한 시점이 지나면 이 정도의 국면 정도야 얼마든지 넘어갈 수 있다는 정부의 자신감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솔직히 토로하자면 촛불문화제가 그동안 거행되면서 나는 오늘까지 네 차례에 걸쳐 직접 참여를 한 바 있다. 그러나 아직도 얼굴을 들 수 없다. 혹여나 부끄러운 내 자신을 감싸기 위한 형식적인 도구로 사용하였고 사용하려는 것은 아니었을까란 생각에 미치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더군다나 지난 3일 동안의 가두행진에는 적극 참여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개인의 의견과 결정이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회의 과정은 어느 정도 부단히 진행되어 왔다고 할 수 있지만 '무한경쟁'을 생산수단으로 하는 다른 한 면의 이 사회에서 나는 그 경쟁에 뛰어든 한 개인으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해온 탓이었던지, 건전한 시민사회 형성을 위한 개인적 '용기'와 '연대'에는 너무나 소심해 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너무 튀어서도 안 된다." 어느새 나는 내가 지켜야 할 경제적, 개인적 가치들에 포섭되어 '용기'와 '연대'로  디자인되어야 하는 건전한 시민사회가 아닌, '자본'과 '경쟁'으로 이미 디자인된 불량 '자본사회'의 적극적인 일원으로 복무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근대국가가 세워지고 그 틀 안에서 '자유'와 '민주'라는 절대적 가치를 쟁취하기 위해 이루어진 일련의 모든 행위들은 사실 '불법'이었고, 그 불법을 탄압하고 강제했던 것은 늘 '합법'이었다. 사회와 소통하지 않으려 하는 국가에 대해서 좀 더 적극적인 저항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반드시 '비폭력'과 '평화'를 상징하는 지금의 촛불문화제는 지속되어야 하지만 이제 우리는 거리로 한 발짝 더 발걸음을 떼는 '용기'와 '연대'를 필요로 한다.


촛불문화제에 참가하지 않았다고 해서 하등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형식'과 '내용'이 있다면 누구나 내용이 보다 중요한 것이라 말할 것이다. 촛불문화제에 참가유무로 형식적인 '용기'와 '연대'를 판단하기 보다는 어떤 곳에 있던 우리를 대신하여 실천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고마워할 줄 알고, 또한 같이 하지 못함을 솔직하게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 나처럼 형식적으로 거리에 나앉아 있는 사람보다는 백만배 낫다.


물론 실천적인 차원에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가 힘을 보태는 것이 절실히 요구되지만, 부득이 시공간적 이유로 말미암아 그리 하지 못한다면 광화문에, 그리고 전국의 많은 도시에서 거행되는 촛불문화제에 '용기'와 '연대'라는 진정한 '마음'을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


이 마음들이 실질적으로 집합될 수만 있다면 우리 사회는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을 수 있다고 나는 여전히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 모두 '촛불문화제'에 '용기'라는 마음을 보내자."


2008. 5.27 화

비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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