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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스의 노래'에 해당되는 글 1건
2010. 5. 15. 04:17
몸은 끝내 이틀을 버티지 못한다. 방안에 틀어박혀 있는 일상이 못내 지겨운 저녁, 영화시간표를 뒤적거려 근처 극장을 단촐히 찾았다. 상영시간이 임박하여 매표소에 선 나를 위해 남은 표 달랑 한 장. 임상수 감독의 '하녀'를 먼저 관람하였다. 카타르시스가 없다. 홍보물에서는 '서스펜스'를 언급했는데, 그마저도 그저 그렇다. 출연진이 화려하니 연기력이야 두 말할 필요없다. 다만 이정재와 서우의 딸 나미의 함초롬한 표정과 눈망울만이 남았다. 재기발랄하지만 그래도 선겁다. 

종영 후, 남는 30분동안 인근 분식점을 찾아 주린 배를 채웠다. 줄담배를 성급히 피우고, 캔커피 하나 사서 다시 극장에 진입. 이번에는 이창동 감독의 '시'를 보기로 한다. 연달아 본 두 영화에 대한 느낌을 굳이 표현하자면 '비일상'과 '일상'의 대결이라고 할까. 결국 일상이 승리하는 형국이다.

미자 분의 윤정희가 김용탁 분의 김용택에게 묻는다. "어떻게 하면 시를 쓸 수 있나요?", "아무리 시상을 떠올리려 해도 떠오르지 않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에게는 그 말들이 이렇게 들린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나요?", "아무리 행복해지려 해도 그렇지 않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김용탁은 말한다. "시가 죽은 시대입니다." 정작 현실에서도 영화에서도 그는 시를 쓰는 시인이다.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영화는 "꽃처럼 살고 싶은데, 일상을 일상처럼 살고 싶은데... 그러하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자는 문화원 강좌 수강생 중에 유일하게 시를 써서 제출하는 유일한 사람이 된다. 시와 다른 일상이 펼쳐졌는데 시를 쓰고야 말다니...

마지막 심야영화였던지라 나와 함께 관람한 관객이라고는 달랑 5명. 극장에서 내려오는 엘레베이터 안에서 그들 중 두 명이 말한다. "지루해서 죽는 줄 알았는데 왜 걔는 별점 다섯 개란 말을 했어." 일면 일리있는 말이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대중적이진 못하지만, 이처럼 대중적인 영화가 흔할까 싶다.

우리 주위에 널리고 널린 일상을 놓치고, 영화 전반에 흐르는 강물을 놓친 탓이란 생각을 했다. 차를 몰고 집에 돌아오는 한적한 도심. 지하차도를 통과하며 올라오는 길에 환한 가로등이 시야에 들어오고, 이내 앞 차량들의 후미등도 눈을 자극한다. 순간의 밝음에 가려 나머지를 보지 못한다.

일상이란 이와 같다.

몇 가지 더 흥미로운 사실. 윤정희의 본명이 손미자라는 점. 그리고 다음 검색에서 잡히는 윤정희의 주연 출연작만 232편이라는 것. '시'의 평점은 최고점을 향해 달리고 '하녀'의 평점은 혹독하다. 주목받는 '하녀'에 대한 소식은 인터넷에서 흔히 접할 수 있지만, '시'에 대해서는 유달리 심드렁하다. 별점주는 것은 꽤나 무의미한 일이라 생각하는 편인데, 굳이 준다면 4.5를 주고 싶다. 나머지 0.5개는 이창동 감독의 이후 영화들에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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