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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에 해당되는 글 1건
2010. 11. 27. 03:32
"바람이 분다.
마른 나뭇가지들이 허공을 할퀸다. 긴 코트 차림의 여자들이 길고 곧은 머리칼을 나부끼며 종종걸음 친다. 어디선가 날아온 흰 전단지가 택시 앞유리의 와이퍼에 걸려 세차게 퍼덕거리다 찢기며 다시 날아간다."
한강, 『바람이 분다, 가라』.(서울: 문학과 지성사, 2010), p.76.

상하이의 겨울바람은 유명하다. 아직 이곳은 겨울도 아닌 그렇다고 가을도 아닌 어정쩡한 날씨이다. 낮에는 상온 15도에서 18도까지 기온이 오르지만, 이렇게 바람이 부는 날에는 일기예보에서 말하는 최저온도인 8도 이하로 체감온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때문에 옷입기가 굉장히 난감한 날들이 지속되고 있다. 잠시 정도야 괜찮겠지 하고 창가에 나가 창을 활짝 열고 담배를 태웠다. 그게 화근이었을까, 두통으로 모든 신경이 몰리고 있다.

오늘은 이곳에 와서 알게 된 석사생 젊은 여자선배(?)와 저녁을 함께 하였다. 단언컨대 처음 와서 어렵사리 대학원 후배와 한 번 식사를 한 이후로는 처음 갖는 이성과의 식사자리였다. 이성과의 만남을 강조하려는 것 보다는 사실 이곳에 와서 누군가와 약속을 하고 식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희소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곳에 같이 왔고 집도 같이 얻었던 하우스메이트는 학교에서 같이 온 친구들이 많아 늘 바쁘고, 또 학교 형을 통해 소개받은 제법 젊은 남자친구는 도서관 친구로 발전되어 한동안 밥동무 겸 말동무 역할까지 충실히 되었지만, 최근 그 친구에게도 중국 친구들이 생겨 슬슬 만남의 횟수가 적어지고 있던 찰나였다.  물론 일주일 전 10학번 박사반 친구들과도 늦은 개강모임을 하면서부터 나 역시 사교의 폭(?)이 조금은 넓어지고 있기는 하다. 다만 기본적으로 박사생들은 각자 할 일들이 많아서인지는 수업 시간이 끝나면 으레 뿔뿔이 흩어지기 마련이라 아직 정기적으로 만나 '대화의 가뭄'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하물며 아직도 형편없는 중국어로 떠들어야 하는 관계로 내밀한 대화의 수준은 바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정말 대화가 가물었기 때문이었을까. 오늘 자리를 함께 한 친구는 아마도 나 때문에 꽤나 혼이 났을 법하다. 나이 들면 말이 많아지는 법인데, 외국에 있는 나이 든 사람이 하는 얘기가 좀 많았을까 싶다. 게다가 대화상대가 꽤나 친절하고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는 착한 성격의 소유자인 것 같아 마음이 좀 많이 풀렸던 것 같다. 술 한잔 하지 않고, 4시간 가까이 떠들었으니 오늘 나의 한국어 구사는 아마도 상해 정착 이래 최고의 양을 기록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날부터였다고 생각한다. 그 순간 당신이 내 손을 잡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손의 원소가 내 손의 원소와 같다는 것을 간절하게 실감했기 때문이라고. 아니, 모르겠다. 많은 시간이 흘러서가 아니다. 당신에 대한 기억은 어떻게도 단언할 수 없다. 모른다고밖에는. 모든 것이 덩어리로 다가왔다고밖에는. 스며들고 번져갔다고밖에는. 당신의 그림 속에 떨고 있던 모세혈관들처럼."
위의 책, p.62.

한 사람의 말을 받고, 또 나의 말을 상대방에게 준다는 것은 아주 용이한 것이지만, 그 말들이 상호간에 얼마나 온전히 흡수되느냐에 따라 인간관계의 폭이 결정된다. 그것은 위의 글에서 말하는 것처럼 실재하는 것이다. 한국보다 늦은 상하이의 겨울이 곧 찾아오게 되면 정말 추위와의 전쟁을 치뤄야 한다. 난방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전기장판 하나로 겨울나기를 시도해야 하는;; 또 손발 불어가며 타자도 쳐야 한다니, 아~ 안 그래도 겨울이 끔찍한 나에게는 정말 그저 쉽게 흘려 들을 수 없는 현실이다.

헤어지고 집에 들어와 한국사람들끼리 주고받는 중국어 문자질을 생각해 봐라. 이 역시 조금은 재미있는 상황이다. 내가 예전부터 흔히 하는 농담 중에 하나가 별다른 운동 없이 호흡 운동 하나만으로 삶을 지탱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만큼 게으르고 운동 하지 않는 스스로의 삶을 비유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물리적인 호흡만을 뜻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만큼 중의적인 말이지만, 상호간 중국어 전달의 한계 탓인지 오늘 만난 그네는 '삶에 있어서 건강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니 건강에 주의했으면 좋겠다.'라는 덕담을 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그런 따뜻한 말을 해주는 사람도 처음이라 무척이나 감사한 일이다.  

역시나 유형적인 것보다는 무형적인 것들이 더 큰 효력을 발휘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바람이 불어 몸은 흔들리지만, 마음은 흔들리지 않는 밤이다. 오늘 함께 한 그 친구에게도 내 존재가 조금은 따뜻한 힘이 되었다면 좋겠지만, 역시나 말을 너무 많이 한 것은 아무래도 '미친 존재감'을 여실히 증명한 것이리라.  

한편, 말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줄어들면서 보수화 된다는 측면이 있다. 아~이것 역시 스스럼없이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인가. 


사족: 북측의 연평도 도발사건은 유학생들에게도 초미의 관심사이다. 중국 친구들도 사건이 발생한 다음 날에 바로 의견을 물어볼 정도로 역시 관심이 많은 상황이다. 조지워싱턴호의 서해행이 우려대로 최악의 수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울러 3~4일의 시간동안, 뉴스도 무척이나 관심깊게 지켜봤는데, 새 국방부 장관 낙점과 관련된 이 뉴스는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다. 연평도 포격도발에 대한 군의 대응을 보면서 MB가 군에 대한 불신을 자주 나타냈다니... 물타기도 이런 물타기가 또 있을까 싶다. 군의 통수권자는 바로 대통령 아니던가. 무릇 윗사람이라면 자신의 책임부터 통감해야 함은 자명한 사실일 터인데... 군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 우습다.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중지를 모아 위기를 넘어서야 하는 바로 이 순간에도, 자신의 말바꾸기를 옹호하기 위해 끊임없이 정치적 계산을 일삼고 있는 이를 어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외국에 나와 있는 사람 마음도 이와 같을지언대 고국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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