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이백 네 번째 날: 루구후(泸沽湖) 가던 길
우리네 인생에서 사랑에 대한 정의만큼 다채로운 것은 없지만, 이에 필적할 만한 것을 굳이 꼽는다면 ‘여행(旅行)’이 아닐까 싶다. 어느 누구 하나 이에 대해 정의를 내리지 않은 적이 없을 정도다. 게다가 우리가 일컫는 여행은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이지만, 떠나는 자와 남는 자 모두 그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복기하는 것은 쉽사리 목도된다. 그만큼 여행이란 것의 삶에 대한 영향력만을 두고 보면 대단한 권력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는 이런 생각을 과도한 해석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이 엄청난 권력은 때로는 우리의 삶을 뿌리 채 흔들기도 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는 타당성이 있는 얘기라 주장하고 싶다. 여하튼 이번 행로는 일면 보통의 여행의 목적에는 부합하지 않지만, 떠나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현재 시각 저녁 8시 31분, 아직 어느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아 아무도 내가 외국인이라는 걸 모른다. 옆 침대 칸의 아저씨들은 중국식 포커에 빠져 있고, 우리 칸 맨 아래 샤푸(下铺:上,中,下铺로 낮은 칸이 가장 가격이 비쌈. 예전에는 5위안 정도의 차이였는데, 지금은 각 10위안 이상 차이가 난다. 역시 큰 차이는 아님.) 내 침대는 중푸(中铺) 자리이지만, 두 시간이 넘는 동안 아직 침대로 올라가지 않고 통로의 간이의자에 앉아 있다. 여기서 저녁을 대충 때웠고, 잠시 밖으로 나가 담배도 두 세 가치를 태운 다음 컴퓨터를 켜서 이 글을 쓰는 중이다.
상하이에서 쿤밍(昆明)까지 도합 37시간의 여정이다. 이제 곧 세 번째 정착역인 항저우 남역에 도착할 것이고, 앞으로 스무 개의 역을 더 거쳐야 한다. 사실 고백하자면, 중국 여행자치고는 좀 부끄럽게도 이런 긴 여정은 처음이다. 13년 전 베이징-옌지 노선의 27시간은 정말이지 힘들었다. 이런 것을 감안하자면, 이 곳이 대국은 대국임을 인정해야 한다. 잘 모르는 한국 사람들은 37시간이란 얘기를 들으면 속으로 ‘헉’소리가 자연히 나온다. 그런데 십 몇 년을 중국을 지켜보며 살아온 나로서는 이제 조금은 이러한 시간 개념에 익숙해졌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서울-부산 간을 멀다고 하지만, 중국에만 오면 2~3시간은 그냥 가깝단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저 공간이 달라지는 것에서 오는 순응일 따름이다.
푸단에서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은 내가 윈난에 가서 방학을 보낼 것이라 했을 때 왜 비행기 타고 가지 않느냐고 했다. 그냥 속으로는 돈 없으니까 그러지 이 녀석들아 했다. 그러면서도 평범한 중국 동학들보다는 더 윤택하게 산다는 점에서는 이중적이다. 내가 아무리 공부하러 가는 것이라 강조해도 다들 떠나는 것을 부러워하는 것은 다를 바 없다. 이제 저녁 9시가 넘어가고 있다. 지금은 초반이라 체력도 좋은 편이고, 방금 지나가는 음료수 차에서 맥주 한 캔과 생수 한 병도 구입해서 챙겨놓고 있는 중이다. 오늘 밤은 맥주도 홀짝이고, 넷북의 남은 배터리로 외장하드에 저장해 뒀던 영화 한 편 정도는 골라 보고 잘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정작 문제는 오늘 밤을 보내고 난 내일 아침부터이다. 24시간을 더 견뎌야 할 텐데, 뾰족한 수가 없으면 두툼한 책 한 권 흔들흔들 하며 다 읽는 수 밖에……
옌지 가던 그 시절, 열차에서 만난 조선족 여학생이 떠오른다. 언젠가 선쩐으로 직장을 옮겨 갔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그녀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이번 여정에서는 어떤 인연들을 만나게 될 지 사뭇 기대된다. 중국어만 어느 정도 가능하다면 이것이 바로 중국여행의 묘미이다. 여행은 사람을 기대하게 만들고, 특별하게 만든다. 일상에서 이런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옆으로는 미쏀(过桥米线: 운남성 특산 면요리.)을 파는 차가 지나가고 있고, 그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다시 군침이 돈다.
2011년 7월 23일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