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ffee break

어찌할 수 없는 소문

비디아 2010. 12. 11. 22:36
요즘은 주말만 되었다 하면 내 자신을 못내 가누기 어렵다. 그래서 그저 놔 버린다. 아무런 사소한 대책도 없이. 그렇게 주말이 또 가고 있다. 발가벗은 몸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찌할 수 없는 소문
                                   심보선, 슬픔이 없는 십오 초, pp.68-69, (서울: 문학과 지성사, 2008)

나는 나에 대한 소문이다 죽음이 삶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불길한 낱말이다 나는 전전긍긍 살아간다
나의 태도는 칠흑같이 어둡다

오지 않을 것 같은데 매번 오고야 마는 것이 미래
다 미래는 원숭이처럼 아무 데서나 불쑥 나타나 악수
를 권한다 불쾌하기 그지없다 다만 피하고 싶다

오래전 나의 마음을 비켜간 것들 어디 한데 모여
동그랗고 환한 국가를 이루었을 것만 같다 거기서는
산책과 햇볕과 노래와 달빛이 좋은 금실로 맺어져 있
을 것이다 모두들 기린에게서 선사받은 우아한 그림
자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쉽고 투명한 말로만 대화할
것이다 엄살이 유일한 비극적 상황일 것이다

살짝만 눌러도 뻥튀기처럼 파삭 부서질 생의 연약
한 하늘 아래 내가 낳아 먹여주고 키워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정말 아무것도 없다 이 불쌍한 사물들은
어찌하다 이름을 얻게 됐는가

그렇다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이 살아 있음을.
내 귀 언저리에 맴돌며, 웅웅거리며, 끊이지 않는 이
소문을, 도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청춘
                 심보선, 슬픔이 없는 십오 초, p.107. (서울: 문학과 지성사, 2008)

거울 속 제 얼굴에 위악의 침을 뱉고서 크게 웃었
을 때 자랑처럼 산발을 하고 그녀를 앞질러 뛰어갔을
때 분노에 북받쳐 아버지 멱살을 잡았다가 공포에 떨
며 바로 놓았을 때 강 건너 모르는 사람들 뚫어지게
노려보며 숱한 결심들을 남발했을 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을 즐겨 제발 욕해달라고 친구에게
빌었을 때 가장 자신 있는 정신의 일부를 떼어내어
완벽한 몸을 빚으려 했을 때 매일 밤 치욕을 우유처
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잠들면 꿈의 키가 쑥쑥 자랐을
때 그림자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에서 그 그림자들 거느리고 일생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을 때 사랑한다는 것과 완전히 무너진다는 것
이 같은 말이었을 때 솔직히 말하자면 아프지 않고
멀쩡한 생을 남몰래 흠모했을 때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때 꽃피는 푸르른 봄이라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이라
는 청춘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