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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에 해당되는 글 2건
2013. 8. 15. 00:03

이제 페북에서 다시 블로그로 옮겨오기로 했다. 페북을 아예 하지 않을 것 같지는 않지만, 여러 가지 이유에서 최대한 자제하려고 한다.  


내게는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 말고 일반 사회생활을 하는 비슷한 연령대의 친구들과 후배들이 더 많은데, 그네들과의 교류에 있어서 한 가지 고민을 깊게 다루고 있는 중이다. 아까 전화로 친한 후배와 장시간 통화하다가 후배가 자신의 교육관을 피력한 바 있었는데, 거기에서 딱 그쳤으면 좋았을텐데 끊고 나서 무슨 마음에선가 카톡으로 내 관점의 이야기를 조금 했다. 그러다가 교육관에 관한 논점이 갑자기 정보의 독점 쪽으로 새는 바람에 이야기가 잘 되지 않았다. 문자로 주고받은 거라 후배가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형은 형이 생각하는대로 살고 나는 나대로 살겠다는 느낌을 살짝 받았다. 


내가 고민스러운 부분은 딱 이 지점이다. 요즘은 유사한 분야를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할 때는 큰 어려움이 없는데, 다른 사회생활을 하는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는 뭔가 핀트가 안 맞는다는 느낌이다. 그게 아마도 내 대화의 방식이 무언가 가르치려는 느낌을 줄 수도 있겠고, 또 대화와 토론에 있어서 훈련을 받지 않은 경우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내 방식을 강요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러면 그런 그룹의 친구들과 나는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가란 고민이 자연스레 생길 수 밖에 없다. 내 처음 의도는 절대 누군가를 가르치려는 마음도 없지만, 자꾸 그런 방식으로 가게 된다는 것은 위험하다. 그건 상대방만 탓할 수도 없고, 나에게도 문제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사람으로서의 특성상 직업적으로 끝까지 물고 늘어져 토론하고 관점의 차이를 명확히 하는 것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해야 하는 이야기인데, 나는 자꾸 이것을 혼동하는 것 같다. 나한테는 이미 일상이 된 일들이라 말할 때 아무런 느낌을 갖지 못하고는 했다. 그리고 그런 것을 느꼈을 때 스스로 주의하자는 다짐도 한 지 꽤 오래 됐다. 


그런데 불쑥불쑥 이런 문제들이 튀어 나온다. 해결방법은 단순하다. 그저 오랜 세월 속에서 오는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는 내 직업적 대화방식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얘기를 잠자코 들어주는 방식이 가장 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네들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져온 생각과 고정관념이란 것이 있다. 때문에 내가 관점의 차이라는 것을 명확히 그들에게 설명하지 않거나 그들이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을 때 '오해'라는 것이 생기고 '불화'가 발생하게 되는 것 같다. 


최근까지는 왜 그들은 나의 순수한 의도를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것일까에만 열중했는데, 이제는 그게 아니라 내가 어떻게 그들의 말을 들어주며 내 견해를 인내해야 하는가에 열중해야 될 때가 아닌가 싶다. 


어렵다. 그래도 최대한 하고 싶은 말을 줄이는 것이 오랜 벗들을 잃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 내 입을 꼬매 보자!        

2013. 8. 3. 22:59

올해 4월 초, 북핵문제가 한창 이슈이던 즈음 시사IN의 남문희 기자가 김정은의 이복누이이자 김정일이 총애했던 '김설송'을 집중 조명했던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 이 기사의 논점은 장성택이 실제 권력에서 배제된 지 오래이고, 현재 북한의 권력을 이끌고 있는 것은 바로 김경희-김설송-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라인이라는 것이다. 이 기사의 진위여부와 관련해서도 이런저런 설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번역을 하고 있는 책이 하나 있는데, 그 가운데 이 문제의 김설송의 존재에 대해 설명한 대목이 있어 그것을 여기에 옮겨본다. 북한과 북핵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참고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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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할 수 있는 것은 김정일에게는 김설송이라는 또 한 명의 딸이 있고, 그녀가 김정일 곁에서 일한다는 것이다. 

그녀의 모친은 도대체 누구인가? 갖가지 추측과 분석이 있다. 비교적 주류적인 견해는 김설송이 김영숙의 소생이란 것이다. 고영희 다음에 김정일은 그보다 22살 어린 네 번째 부인 김영숙을 맞았다. 김영숙은 1964년에 태어나 평양음악무용대학을 졸업하였고, 전공은 피아노였다. 1980년대 초반부터 그녀는 김정일 옆에서 서기 업무를 담당하며 김정일이 국정 처리하는 것을 보좌했다. 김정일이 외국을 방문할 때 김영숙은 조선국방위원회 과장의 이름으로 따라갔다. 2000년 10월,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김정일 특사로 미국에 방문했을 때, 김영숙은 특별한 명령을 받고 국방위원회 과장으로 미국에 동행했다. 2005년 7월 김정일이 한국의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을 접견할 때에도 그녀는 참석했다. 2006년 1월, 김정일이 중국에 방문했을 때 김영숙은 국방위 과장으로 수행했다. 한 연회에서 북한 측 인사들이 중국 측 인사들에게 이 분은 과장이자 부인이라며 특별히 인사를 시키기도 했다. 

김정일은 1973년 김영숙과 결혼했고, 다음 해 김설송을 낳았다. 김설송을 만나본 사람들은 그녀가 북한의 다른 일반여성과는 달랐다고 말한다. 머리를 매우 많이 길렀다. 아버지 김정일은 긴 머리는 북한의 전통미에 부합하지 않고, 외국자본주의의 나쁜 관습이라고 말한 적이 있지만 자신의 딸 머리카락 단속에 있어서는 거의 방법이 없었다. 김설송의 키는 165센티미터로 김정일보다 컸다. 얼굴형은 갸름하고 큰 눈에 생기가 돌았고, 우아한 품격과 쾌활한 성격으로 어렸을 때부터 김정일이 애지중지했다. 그녀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점잖고 예의 발랐으며, 특정장소에서 공개적으로 나선 적이 없다. 늘 아버지 뒤에서 멀찌감치 따르거나 종종 손에 든 작은 가방에서 아버지의 안경집과 전용 컵을 꺼내 아버지가 필요할 때 사용하도록 도왔다. 많은 사람들은 줄곧 그녀가 김정일의 수행간호사이거나 여성 수행경호원으로 생각했지만 나중에 김정일의 딸임이 확인됐다. 

김설송은 김일성종합대학의 경제학계열 정치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이후 당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로 보내져 문학 분야의 업무를 맡았다. 선전선동부에 올라온 문학작품 가운데 김정일 서명이 있는 것은 모두 김설송이 대신 한 것이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예술에 대한 이해력이 높고 감성이 풍부하며 문학적 소양이 도드라졌다. 1990년대 말부터는 김정일의 경호업무와 일정관리업무를 총괄하기 시작했다. 김정일이 현장지도 혹은 군대시찰 등의 활동 시에 그녀가 모두 수행했다. 아울러 신변안전의 보호와 일정준비 등 분야의 최종적인 검사와 관리업무도 책임졌다. 

김설송이 김정일의 외부행사를 따라갈 때에는 인민군 복장에다 중령의 견장을 달았다. 한 번은 김정일이 공장 현장지도를 나갔는데 그가 공장 간부들과 악수를 하고 나서 몸을 돌리자마자 김설송이 차에서 내려 이미 소독된 손수건으로 김정일의 손을 닦을 수 있도록 했다. 김정일이 2002년 8월 러시아 극동지역을 방문했을 때도 김설송이 따라갔다. 김정일 총서기는 여러 차례 이와 같이 말했다.

“나는 설송을 유달리 좋아하는데, 그녀는 두뇌가 좋고 능력이 있으며 나를 아주 많이 닮았다.”

출처: 江迅,『朝鲜是个谜』,(홍콩:明报출판사,2012년 6월),pp.304-306. (2015년  1월 에쎄에서 번역출판 됨, 북한이라는 수수께끼, 에쎄(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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