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12 02:55
상하이에서 생활한 지 어느덧 1년 반이 훌쩍 가려고 한다. 앞으로 20시간이 채 안 된 시간에 한국에서 대학원 선후배들과 저녁을 먹고 한잔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11개월 만에 가는 한국이다. 나처럼 오랫동안 집에 가지 않는 유학생이 별로 없어서 어떤 느낌인지 물어볼 기회가 없었는데... 사실 잘 모르겠다. 한국에 간다는 실감도 잘 나지 않는다. 1년 전 한국에 갔을 적에는 6개월 만에 갔었다. 아마도 생활의 중심이 확실히 이곳으로 옮겨진 탓일지 모르겠다. 그도 아니면 한국에 가서 해야 할 숙제와 학위논문에 대한 고민이 많이 쌓여 있다는 것, 처리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3학기가 끝났음에도 3학기가 끝난 것 같지 않다. 올해는 작년보다 체류일자가 더 길 것으로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작년처럼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쉬었다 오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 하나는 위로가 된다. 부모님은 늘 걱정 뿐이지만, 뵙고 잘 지내고 있음을 가식적이라도 보여드려야 또 1년을 잘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몇몇 정말 보고 싶은 사람들. 1년 만에 가니까 그래도 좀 반가워해주진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다.
3학기에 대한 소회를 정보로 남겨야 이 곳에 유학 올 특정 후학들에게 도움이 될텐데 오늘은 살짝 술 한잔 걸치고 들어온 것이라 길게 남길 수는 없다. 그저 한 마디 보태자면 1년 6개월 정도가 되면 정말 일상 속에 잠재되어 막상 꺼내보기가 두려운 고독에 친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학기에 처음으로 몇몇 한국 사람들과 꽤 친해지기도 했지만, 대부분 이 곳을 떠나고 결국 남는 사람만 쓸쓸할 뿐이다. 어차피 이 곳에서 많은 인연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이 곳에서 내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한 두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나 역시 나와 친해지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거리를 둔 적도 많으니까... 그래도 막상 갈 때가 되니까 소소하게 즐거운 일들이 많다. 지난 주에 이어 오늘은 상해2공업대학 2학년 친구들에게 선물보다 더 소중한 수많은 편지들을 받았고, 같이 사진도 찍었다. 이 곳에 올려줘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오늘은 못할 것 같다. 좀 늦어지는 것 미안함을 전한다. 그리고 내 소중한 중국 통쉐들도 고맙다. 구체적으로 표현은 하지 않지만, 이것저것 나에 대한 걱정과 격려가 느껴진다. 국외에 있으나 국내에 있으나 사람 사는 건 다 마찬가지다. 내가 얼마나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서느냐가 중요하다. 13년 전 어학연수 때 깨달었던 진실이다. 어설픈 내 자랑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고, 문득 다시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관계에 이익과 손해계산이 들어가면 언제나 진정된 관계는 요원할 뿐이다. 나도 아직은 가식적인 부분이 많아서, 앞으로도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사는 양태만 다를 뿐, 사는 건 다 비슷비슷하다. 모두 자신의 삶이 더 치열하다고 착각할 뿐.
3학기에 대한 소회를 정보로 남겨야 이 곳에 유학 올 특정 후학들에게 도움이 될텐데 오늘은 살짝 술 한잔 걸치고 들어온 것이라 길게 남길 수는 없다. 그저 한 마디 보태자면 1년 6개월 정도가 되면 정말 일상 속에 잠재되어 막상 꺼내보기가 두려운 고독에 친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학기에 처음으로 몇몇 한국 사람들과 꽤 친해지기도 했지만, 대부분 이 곳을 떠나고 결국 남는 사람만 쓸쓸할 뿐이다. 어차피 이 곳에서 많은 인연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이 곳에서 내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한 두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나 역시 나와 친해지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거리를 둔 적도 많으니까... 그래도 막상 갈 때가 되니까 소소하게 즐거운 일들이 많다. 지난 주에 이어 오늘은 상해2공업대학 2학년 친구들에게 선물보다 더 소중한 수많은 편지들을 받았고, 같이 사진도 찍었다. 이 곳에 올려줘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오늘은 못할 것 같다. 좀 늦어지는 것 미안함을 전한다. 그리고 내 소중한 중국 통쉐들도 고맙다. 구체적으로 표현은 하지 않지만, 이것저것 나에 대한 걱정과 격려가 느껴진다. 국외에 있으나 국내에 있으나 사람 사는 건 다 마찬가지다. 내가 얼마나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서느냐가 중요하다. 13년 전 어학연수 때 깨달었던 진실이다. 어설픈 내 자랑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고, 문득 다시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관계에 이익과 손해계산이 들어가면 언제나 진정된 관계는 요원할 뿐이다. 나도 아직은 가식적인 부분이 많아서, 앞으로도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사는 양태만 다를 뿐, 사는 건 다 비슷비슷하다. 모두 자신의 삶이 더 치열하다고 착각할 뿐.
2012/01/07 03:15
1.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적 조건에 더 이상 번민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여전히 진행형이지만,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이 사실이다. 본질적으로는 어떤 것도 나를 혹은 내 삶을 종속시킬 수는 없다.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해 왔던 것도 사실이며, 부는 바람에 때로 흔들렸던 것도 부정하진 않는다. 단 하나의 예외조항이 있다면 그건 '자발적 종속'이다. 앞으로도 학력이 한 단계 높아지고, 지식이 아무리 쌓여간다 해도 나는 고상한 척 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또 언행이 부박한 사람도 아니었음은 자부한다. 그저 내가 아끼고, 나를 아껴주는 몇몇의 사람들과 '대화로 산을 쌓아가며 투박한 생활의 정을 나누는 정도'가 내가 꿈꾸는 가장 인간적인 가치일 뿐이다. 한 가지 더 보태자면 그런 내 삶의 소소한 부분들이 사회적 역할까지 발휘될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거니 하는 정도다. 내가 이처럼 절대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우리'이다. 내 블로그명도 그런 차원에서 생겨났던 것이다. 그러나 사고의 차이에서 공교롭게도 오인까지 발생하기 때문에 수많은 '나'들이 '우리'로 발전하는 데 그토록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내가 공부를 하고 그 안에서 좌초를 하는 때가 와도, 늘 씨익~하고 썩소 한 번 날려줄 수 있는 것도 그에 대한 열망이 아직은 식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험론 철학을 완성한 계몽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내 생각에 나는 좁은 강어귀를 지나며 많은 여울에 부딪히면서 가까스로 난파를 모면하고 나서도, 여전히 비바람에 시달려 물이 새는 똑같은 배를 타고 무모하게 바다로 나아가려는 사람과 같다. 심지어 이 사람은 이러한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지구를 횡단해보겠다는 드넓은 야심을 지니고 있다." 멋진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우리'라는 자각이 누락되어 있다. 내 개인적인 경험만 반추하더라도 열망이 주는 위대한 힘을 자각하게 된다. 허나 이 열망 속에 오욕칠정의 괴로움이 어김없이 자리할 것이다. 나는 타인에 대한 나의 피상적인 이해에서 비롯되는 오해를 하지 않기 위한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가급적이면 그네의 이면을 보고자 한다. 물론 타인도 나에 대해 그리했으면 좋겠다는 소망 역시 감추지는 못하겠다. 쓰다 보니 어려운 말을 이어가며 어느새 고상한 척 하는 부류가 되어 버렸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금까지 쓴 열 몇 줄의 문장은 사실 한 두줄로 얼마든 압축해 말할 수 있었다. 나는 왜 그랬을까. 이에 대한 설명을 언젠가 할 기회가 있으리라 믿는다. 이 곳에 마실 오는 몇몇 지인들도 그 때는 내 단절되고 불온한 새해다짐을 이해할 것이다.
2. 지난 일 년간 스스로 알바라고 폄훼하였던 상해제2공업대학 한국어과 강의가 다음 주 수요일 두 과목의 시험만 치르면 끝이 난다. 그렇게 알바라고 불렀던 것이 못내 정이 드는 것이 싫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에게는 내가 첫 외국인 교수라 신기했었을 것이다. 난 한국에서 강의경력이 1년 있었지만, 중국인을 대상으로 가르쳤던 것이 처음이라 신기했다. 그렇게 어설프게 우리의 관계는 시작되었고, 이렇게 끝이 난다. 물론 한 학기가 지나 내가 다시 2공대에 강의를 나가게 된다면 1,2학년 학생들은 한 학년 진급한 채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다만 아래 사진 속에 등장하는 가장 정이 많이 들었던 3학년 학생들은 졸업 때문에 다시 보진 못할 것이다. 이 중 절반 조금 안 되는 인원이 3월에 한림대학교로 연수를 가게 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학생들은 실습(인턴)들을 나가게 될 것이다. 아직 어린 나이에 사회에 진출한다는 것이 나로서는 좀 애달프다. 수업시간에 떠들고 공부는 안해도 내 말을 잘 경청해주던 그들이 그리울 것이다. 아래 사진 속 엽서에 멘트가 등장할테지만, 내 중국어 실력 증진 3분의 1은 그들의 덕이다. 그들의 한국어보다는 내 중국어가 더 늘은 것 같으니... 어제 같이 사진을 찍고 돌아오면서 내가 그들을 어느덧 사랑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사랑은 언제나 한 걸음 늦다. 당분간 내 일상도 팍팍하기에 만나긴 힘들겠지만,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에게 있어 기회란 단어는 단순히 찾는 것이 아닌 실천을 전제로 한다. 그들의 청춘에 지지를 보낸다.
추억자료: 2012년 1월 4일 수요일 함께 찍은 사진과 학생들이 내게 준 고마운 선물들
2. 지난 일 년간 스스로 알바라고 폄훼하였던 상해제2공업대학 한국어과 강의가 다음 주 수요일 두 과목의 시험만 치르면 끝이 난다. 그렇게 알바라고 불렀던 것이 못내 정이 드는 것이 싫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에게는 내가 첫 외국인 교수라 신기했었을 것이다. 난 한국에서 강의경력이 1년 있었지만, 중국인을 대상으로 가르쳤던 것이 처음이라 신기했다. 그렇게 어설프게 우리의 관계는 시작되었고, 이렇게 끝이 난다. 물론 한 학기가 지나 내가 다시 2공대에 강의를 나가게 된다면 1,2학년 학생들은 한 학년 진급한 채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다만 아래 사진 속에 등장하는 가장 정이 많이 들었던 3학년 학생들은 졸업 때문에 다시 보진 못할 것이다. 이 중 절반 조금 안 되는 인원이 3월에 한림대학교로 연수를 가게 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학생들은 실습(인턴)들을 나가게 될 것이다. 아직 어린 나이에 사회에 진출한다는 것이 나로서는 좀 애달프다. 수업시간에 떠들고 공부는 안해도 내 말을 잘 경청해주던 그들이 그리울 것이다. 아래 사진 속 엽서에 멘트가 등장할테지만, 내 중국어 실력 증진 3분의 1은 그들의 덕이다. 그들의 한국어보다는 내 중국어가 더 늘은 것 같으니... 어제 같이 사진을 찍고 돌아오면서 내가 그들을 어느덧 사랑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사랑은 언제나 한 걸음 늦다. 당분간 내 일상도 팍팍하기에 만나긴 힘들겠지만,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에게 있어 기회란 단어는 단순히 찾는 것이 아닌 실천을 전제로 한다. 그들의 청춘에 지지를 보낸다.
추억자료: 2012년 1월 4일 수요일 함께 찍은 사진과 학생들이 내게 준 고마운 선물들
2011/12/31 23:58
정확히 1년 전 "다시는 소망하지 않기로 하며 창을 닫았었다." 그러나 나는 끊임없이 소망했다. 인간사에서 송년과 새해맞이처럼 모순적인 것도 없을테다. 사실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음에도 고작 별거 아닌 숫자에 우리는 너무나 민감하다. 모두 생성에 대한 환상과 소멸에 대한 공포에서 파생되는 것일테지만... '새해가 뭐 별거야'라며 제 아무리 쿨한 척 한다 해도 사회 안에서 똬리를 틀고 살아가는 인간은 다 거기서 거기다. 2011년의 내 삶은 2010년과 마찬가지로 비루했다. 2009년에도 그랬고, 2008년에도, 그 전에도 계속 그랬다. 시간을 보니 한국은 이제 2012년을 12분 전이라는 숫자에 기대어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이 곳은 1시간 12분에 기대고 있을 것이다. 좀 있다 몇몇 사람들이 내 방에 모이긴 할 것 같은데 맥주 한 모금이 마시고 싶어서 매점에서 맥주 두 병을 먼저 사서 홀짝이고 있는 중이다. 왠지 맥주 두 잔에 벌써 불콰해지는 느낌이다. 2012년도 역시 제 아무리 용을 쓴다 해도 비루하고 남루함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다만 이 비루함과 남루함마저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내 생을 용기있게 마주 대할 수 있을까.
너에게
마음은 바람보다 쉽게 흐른다.
너의 가지 끝을 어루만지다가
어느새 나는 네 심장 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죽지 않는 태풍의 눈이 되고 싶다.
최승자, 『이 時代의 사랑 』, 문학과지성사, 1981.
너에게
마음은 바람보다 쉽게 흐른다.
너의 가지 끝을 어루만지다가
어느새 나는 네 심장 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죽지 않는 태풍의 눈이 되고 싶다.
최승자, 『이 時代의 사랑 』, 문학과지성사, 1981.


